흔히 기업을 하다 망하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세가지뿐이라고 한다.

첫째는 해외로 도피하는 것.

둘째는 감옥에 들어가는 것.

세째는 자살을 택하는 것이란다.

올들어 이중 세번째 방법을 택한 중소기업자들이 참 많다.

지난달 25일 밤 서울 한남대교 북단에서 오인문사장(40)이 15m아래
한강으로투신했다.

오사장은 의류업체를 경영해오다 2억원의 빚더미에 올라선데다 빚보증을
섰던 형의 집이 가압류되자 강물에 뛰어들었다.

지난달 5일엔 부산 동백섬 최치원동상옆 숲속에서 중소기업사장인
정춘화씨(54)가 자살했고 이날김수태사장(49)도 동래온천의 한여관에서
목을 맸다.

서울 마포 오피스텔 화장실에서 변압기부품제조업체 사장이 지난 16일
목을 매 자살하기도 했다.

이 사건들은 기업을 하다 망하면 얼마나 큰 충격을 당하는지를 여실히
반영한다.

그런데 이런 비참한 경험을 무려 10번이나 당한 중소기업인이 있다.

서강기계의 이영식사장(62)이다.

그는 지난 40년간 중소기업을 해오면서10번이나 폐업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지만 그는 11번째 의연히 다시 일어섰다.

10전11기다.

이사장이 사업을 처음 시작한 것은 스무두살때.

철공소에서 일하다 지난 57년 한일공업사란 철공소를 낸 것이 첫사업
이었다.

그는 65년 동명목재 용당공장을 플랜트공사를 맡으면서 큰 돈을 벌었다.

30세에 벌써 남부럽지 않은 사장이 됐다.

그러나 1천만원짜리어음을 부도맞으면서 그는 첫실패를 맛본다.

여기서 그는 중고트럭 한대로 재기한다.

각종공구를 트럭에 싣고 다니며 공장기계수리등을 맡아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이어 두번째로 설립한 회사가 한진보일러.

이 회사는 계란형보일러로 떼돈을 번다.

하지만 이회사도 단한번의 사고로 물거품이 된다.

77년 3월24일의 일이다.

공장에서 시설설치작업을 하던중 물탱크가 넘어지는 바람에 2명의
직원이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하는 사고를 당한다.

이 사고로 공장허가가 취소되고 보상금및 치료비등 때문에 또 망하고
만다.

이 충격 때문인지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것마다 1~2년만에 계속 망했다.

그후 18년간 삼성보일러 한진기계 영신공업 창신열기 영신보일러등 7개
기업을 설립했다가 문닫았다.

10번째로 창업한 창신기계도 플라스틱 온수분배기가 팔리지 않자 지난
95년 폐업했다.

망할 때마다 그는 "자살밖에 길이 없다"라며 괴로워했으나 끝내는 마음을
고쳐먹고 새로 시작했다.

이사장이 이같이 재기하는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사장의 경우 세가지가 남다르다.

첫째 특허를 14개나 보유할 만큼 뛰어난 기술을 가졌다.

둘째 결코 당좌거래를 하지 않았다.

세째는 해묵은 빚이라도 꼭 갚았다.

지난해 그는 "이젠 마지막"이라며 20년전과 마찬가지로 트럭하나를 사서
그속에서 새우잠을 자며 플랜트건설공사장을 찾아다녔다.

이를 바탕으로 11번째 회사인 서강기계를 세웠다.

이 회사는 부산 대저1동에서 증류탑 이온탑등을 만든다.

삼협자원개발등 5개사의 플랜트공사를 맡으면서 다시 올라섰다.

자, 지금 자살위기에 몰려있는 중소기업인이라면 오똑이같은 이영식사장의
피나는 경험을 거듭 눈여겨 보자.

<중소기업 전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