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성장률 0%대 경고등…무작정 세출만 늘려선 안돼"

월요 인터뷰 -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반도체 감산은 성장에 '마이너스'
성장률 반등 예상보다 늦어질수도

전기료 인상 정치권 개입 말아야
통화정책처럼 분리가 해법

尹정부 근로시간 개편 핵심은 유연성
정치적 세력 개입하면서 본질 호도

국내 사립대는 진정한 사립 아냐
교육부 나눠먹기식 평가 근절돼야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지난 20일 한국경제신문·한국경제TV와의 공동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의 장기 침체를 막기 위해선 교육·노동·연금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경TV 제공
한국 경제 곳곳에 위기 신호가 커지고 있다. 수출은 이달까지 7개월 연속 뒷걸음질치고 있고 무역수지는 14개월째 적자가 확실시된다. 올해 경제 성장률은 1%대 중반 달성도 장담하기 어려운데 근원물가(농산물·석유류 제외 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4.8%로 여전히 5%에 육박한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고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을 뿐 아니라 미래 성장동력마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반도체 경기가 회복된 뒤에도 장기적으로 성장률이 크게 오르기 힘들다는 게 고민”이라며 당장의 경제지표보다 5년, 10년 뒤 성장률이 0%대로 주저앉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교육·노동·연금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일 세종시 집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한국경제TV와 한 공동 인터뷰에서다. 조 원장은 “정치권과 이익단체의 개입을 배제하고 오로지 국민 전체의 편익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예상대로 경기가 ‘상고하저’ 흐름을 보일까요.“쉽지 않습니다. 반도체 감산이 기업 입장에선 손실을 줄일 수 있겠지만 성장률엔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당초 예상보다 성장률 반등 시점이 조금 늦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경기 침체가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작습니다. 문제는 장기 성장률입니다. 반도체 경기가 회복된 이후에도 장기적으로 성장률이 크게 오르기 힘들다는 게 고민입니다. 당장 1%대 중반 성장률에 집착하기보다 향후 5년, 10년 뒤의 성장률이 어떻게 될지 주목해야 합니다.”

▷‘세수펑크’마저 우려됩니다.

“반도체 호황 덕분에 작년 세수가 예상보다 워낙 좋았습니다. 하지만 반도체가 꺾이고 주식·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는 등 경기 요인으로 올해는 세수가 제대로 걷히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이 세수펑크를 불러왔다는 정치적 주장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감세를 통한 세수 감소는 아무리 높여 잡아도 5조원이 넘지 않습니다.”▷올해 세수 결손이 얼마나 될까요.

“20조원을 넘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통상 재정당국은 세수 추계를 낙관적으로 잡지 않습니다. 올해도 보수적으로 잡았지만, 작년 이맘때 세수 추계를 했을 때 반도체가 이 정도까지 부진할 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겁니다.”

▷‘적자 국채’ 발행이 불가피할까요.“전체 세출 규모 측면에서 무리가 없다면 발행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세출 규모를 구조적으로 계속 늘려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세수 예상치에 세출을 연동해야 합니다. 무작정 세출만 늘리는 것을 용인해선 안 됩니다.”

▷정부가 국회에 낸 재정준칙의 법제화는 요원해 보입니다.

“정치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습니다. 세계에서 법제화가 안 된 나라가 거의 없는데 왜 한국만 못하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재정준칙 법제화는 당연히 추진해야 하는 사안입니다.”▷전기·가스요금 인상도 보류됐습니다.

“역시 정치적인 판단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전기요금 인상을 결정하는 독립위원회를 구성해 정치권 개입을 원천 차단해야 합니다. 작년처럼 원유 가격이 폭등하면 요금이 단계적으로 인상될 수 있도록 룰을 세워 독립위원회에서 결정하면 됩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준하는 독립이 필요합니다.”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할 방안은 뭐라고 봅니까.

“글로벌 경기 흐름보다도 국내 각 분야의 생산성 저하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교육·노동·연금 등 3대 개혁이 절실합니다. 우선 국내 사립대학은 진정한 사립대가 아닙니다. 등록금도 10년 이상 동결됐습니다. 교육부가 나눠먹기식으로 대학을 평가하면서 재정을 지원하니까 대학은 교육부 눈치만 봅니다. 교육부 공무원이 책상에서 마련한 대학 평가 기준도 지나치게 경직적입니다.”

▷등록금 규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사립대학이 각자 재정 상황에 맞춰 단계적으로 인상하면 됩니다. 만약 그에 상응하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면 학생들이 외면할 것입니다. 정부도 대학에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합니다. 대학이 연구와 교육에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데 교육부에만 잘 보이려고 혈안이 돼 있습니다.”

▷대학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뜻입니까.

“현재 대학은 교수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만 합니다. 학생들 덕분에 대학 학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들이 있어서 학과가 존재하는 대학이 적지 않습니다. 학교가 기업의 인재 채용 등 시장 수요에 탄력적으로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교육부의 경직적인 평가에 교수들의 기득권 지키기가 더해지면서 대학 경쟁력이 악화하고 있습니다.”

▷교육 재정 문제도 심각합니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교육청에 의무적으로 배정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넘쳐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는 채무가 수천억원인데, 해당 교육청은 쌓아 놓은 적립금만 수천억원입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학령인구 수에 맞춰 줄이는 게 정당한데도 직선제로 선출되는 현행 교육감 제도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노동시장 개혁도 지지부진합니다.

“개혁의 핵심은 유연성입니다. 통상 주 52시간씩 1년 일한다고 하면 연 근로 시간은 2400시간입니다. 이 안에서 노사 자율로 근로 시간을 결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정부는 240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을 규제하고 모니터링하면 됩니다. 기업마다 처한 사정이 다른데도 정부가 획일적 잣대로 규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근로시간 개편안의 핵심도 유연성입니다.”

▷‘주 69시간’ 논란 때문에 근로시간 개편안이 표류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마타도어에 불과합니다. 정책이 국민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정치적 세력이 개입하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버렸습니다. 상당수 국민이 ‘주 69시간’ 프레임에 휘말린 가장 큰 이유는 노조가 사측에 비해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대기업은 상황이 다르지만, 중소기업에선 이런 지적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정부가 국민에게 유연성을 앞세운 근로 시간 개편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노동개혁을 통한 저출산문제 해결이 가능할까요.

“여성이 출산하지 않는 이유는 출산의 기회비용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때 기회비용은 양육을 위한 경력 단절 등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입니다. 기회비용을 줄이기 위해선 육아 시설 등 인프라 확충이 필요합니다. 특히 여성들이 경력 단절이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해줘야 합니다. 적극적인 노동시간 유연화를 통해 여성에게 지속적인 일자리를 제공해 주는 것이 저출산 해법 중 하나입니다.”

▷연금 개혁은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요.

“지금 개혁 논의는 마치 산으로 가는 모양새입니다. 정치권도 이런저런 핑계로 일절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40%인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건 쉽지 않습니다. 보험료율을 올려야 합니다. 일본 정부는 20년에 걸쳐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해 공무원연금과 똑같은 수준까지 올렸습니다. 5년마다 단계적으로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기업 정책은 어떻게 봅니까.

“현재 한국 사회는 기업의 자유로운 진입과 퇴출을 막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업들의 탄생은 방해하는 반면 경쟁력이 없어진 기업들이 시장에서 퇴출당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업 정책이 정치화됐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국내 중소기업 대책의 상당 부분은 복지 정책입니다.”

▷각종 현안을 놓고 갈등도 여전한데요.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매수하도록 한) 양곡법과 (간호사 처우에 관한) 간호법 등 최근에 불거진 현안의 공통점은 정부가 이해단체들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책을 결정할 때 가장 앞세워야 할 건 국민경제의 증진, 이른바 소비자 후생 증가입니다. 그런데도 정책을 결정할 때 이해단체의 이익만 감안될 뿐 소비자 편익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해 관계자들의 이익만 늘어나는 방향으로 정책이 집행된다면 국가 경쟁력은 약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최고 거시경제 전문가…금통위원 시절 비둘기파 분류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국내 최고 수준의 거시경제 전문가로 꼽힌다. 1995년 KDI에 연구원으로 몸담은 이후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 수석이코노미스트를 거친 정통 ‘KDI맨’이다. 2016~2020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거쳐 지난해 12월 윤석열 정부의 첫 KDI 원장으로 취임했다. KDI 재직 시절,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과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금통위원 시절엔 기준금리 인하에 우호적인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 성향으로 분류됐다.△1961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경제학 석사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미국 텍사스A&M대 교수
△KDI 수석이코노미스트
△한은 금통위원

강경민/허세민 기자, 전민정 한경TV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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