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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색 실로 세상사를 엮는다...2025 프리즈가 주목한 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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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섭의 음미(美)하다]

    작가 이준 인터뷰
    실을 의미하는 한자 ‘사(糸)’는 실타래의 모습을 본뜬 문자다. 여러 가닥의 실을 쉽게 풀 수 있도록 뭉치거나 둥글게 감아 놓은 형상인데, 멀리서 보면 여러 실이 얽히고설킨 모습이기도 하다. 많은 예술가가 실을 소재로 ‘인연’, ’상처’, ‘집착’ 등을 표현한다. 간혹 시오타 치하루처럼 이 가느다란 소재로 거대한 조소를 펼쳐내는 작가도 있으며, 손인숙 작가처럼 다른 차원의 회화적 마티에르로 고양시키는 경우도 있다.

    시카고예술대학(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SAIC)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크랜브룩 예술 아카데미(Cranbrook Academy of Art, CAA)에서 섬유예술을 공부한 작가 이준은 실로 회화적이면서도 조소적인 작품을 만든다. 그는 주로 사람의 인체를 소재로 하여 사회적 관계의 단절, 상처, 트라우마 등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한다. 매일 같이 대상물에 실을 감아 다른 오브제로 재탄생 시키고, 그 오브제들의 상관관계를 구현한다. 형형색색의 실로 자신만의 세계를 퍼즐처럼 맞춰 나가고 있는 듯 하다.

    최근 '프리즈 커넥트'에서 'Bystander(방관자)' 시리즈로 컬렉터들의 좋은 반응을 얻어낸 그는 순수하게 실을 갖고 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만화, 동화, 그림, 캐릭터 등을 모티브로 한 전시를 기획했다. 갤러리 세빈 '사랑을 짓는 아이'에서는 동화 속 캐릭터를 실로 구현한 오브제들과 약 700여개의 인형으로 구성된 'Bystander'의 단편들과 아이 방을 재현한 듯한 장난감들을 볼 수 있다. 작가가 실로 어떤 시도와 표현을 하는지 엿볼 수 있는 전시다. 아름다운 색의 실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작가 이준을 만났다.
    <Bystander> 이준 작가. / 필자 제공
    <Bystander> 이준 작가. / 필자 제공

    ▷ 반갑습니다. 자신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본래의 형상을 실로 감아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재현하는 작가 이준입니다. 저는 주로 인체를 만들고 있고, 더 나아가 인간 사이의 관계에 중점을 맞춰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 작가님은 SAIC에서는 회화를, CAA에서는 섬유예술을 선택하셨어요. 회화에서 구상, 물감에서 실로 변화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창작의 재료로 실을 사용하게 된 이유도 궁금합니다.

    "어머니께서 동양화과 출신이셔서 어린 시절부터 미술적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었어요. 집에 화구통, 접시, 물감같이 생각보다 예쁜 게 많았거든요. 그때부터 소꿉놀이처럼 놀던 게 익숙해지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SAIC에서 회화를 전공할 때 사실 3학년 때까지는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 또 그 안에 정말 잘하는 괴물들이 많아서 속으로 제가 뭘 해도 따라잡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죠. 어떤 수업에서 캔버스를 만들어 그림을 그려야 했는데, 저는 캔버스 만드는 것까지만 좋은 거죠. 그 위에 그림을 그려야 할 때면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하도 두려워하니까 교수님이 재료와 캔버스에서 벗어나 보라고 조언해주신 것이, 창작하는 데 있어서 소재와 형식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어요. 또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나타낼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해보라고도 말씀하셔서, 아시아적인 소재들을 생각하다가 실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CAA에서는 섬유와 질료를 공부했는데, 수업이 도제 시스템적인 성격이 강했어요. 그게 저랑 맞았던 것 같아요. 그 동네가 시골 마을이라 딱히 할 게 없었고, 그냥 꾸준히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게 지금까지 작업할 수 있는 에너지였다고 생각해요."

    ▷ 현재 작가 이준의 뿌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마구 섞인 사람’. 미국에서 오래 공부했지만, 다양한 나라의 레지던스에서 각양각색의 예술가들과 섞여 지내면서 제 고유성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이준 작가. / 필자 제공
    이준 작가. / 필자 제공
    ▷ 작업하신 <Miniature Fair Tale> 연작은 매우 작고, 섬세한 느낌을 주는데 어린 시절부터 손재주가 좋으셨나 봐요?

    "어릴 때 오빠가 갖고 놀던 장난감을 온전한 상태로 대물림받지 못했어요. 대물림받은 장난감을 제대로 갖고 놀기 위해선 항상 어딘가를 보수하던지, 새로운 형태로 바꾸던지 해야 했죠. 그게 제게 굉장히 익숙한 일이었고요. 또 가끔 엄마가 요리할 때 반죽 같은 걸 떼주기도, 이불을 갈 때 천 쪼가리를 손에 쥐여 주기도 하셨는데, 그런 걸 잘 가지고 놀았어요."

    ▷ <Bystander>와 <Weight of Human>는 사람의 생각과 성격에 색동저고리를 입힌 것처럼 보여요. 색감에 한국미가 담겨있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실을 연구하셨을 것 같아요.

    "3~4학년때 다양한 소재로 실험과 시도를 했었어요. 실패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이 배웠어요. 무엇을 하면 잘 하겠구나, 무엇을 하면 안 되겠구나를 알게 됐죠. CAA에서 만난 마크 뉴 폴트 교수님이 저에게 항상 하셨던 말씀이 “보여지는 이미지를 버려라”였거든요."
    <Weight of Human> 이준 작가. / 필자 제공
    <Weight of Human> 이준 작가. / 필자 제공
    ▷ 냉소적이고 사회비판적인 이야기가 작품에 비춰지는 듯 합니다. 방랑자 시리즈도 그렇고, 사람의 신체를 반으로 갈라 홍실과 청실로 이은 것도, 아름다우면서 그로테스크하달까요?

    "작품에 경험이 많이 들어갔어요. 미국에 있을 때 인종차별을 받기도 했고, 홀로 지내면 약자의 위치에 처하게 되는데, 그런 일을 겪을 때 주변 사람들의 태도나 언어에 감정이입이 쉬웠던 거 같아요."

    ▷ 작품들을 보면 단절되어있으면서도 이어져있어요. 무거운 주제를 오색 찬란한 실로 배합해서 유쾌한 감성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사람들을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관계가 그렇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고, 다 이어져 있고, 그 안에서도 분명이 연결이 존재하거든요. 어떤 것이든 양면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핏줄이라고 해서 반드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지만도 않고, 단절이 다 있잖아요."
    <Unconditionally> 이준 작가. / 필자 제공
    <Unconditionally> 이준 작가. / 필자 제공
    ▷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는지 궁금합니다.

    "뻔한 이야기긴 한데, 사람에 대한 관심과 세상의 이야기가 창작의 모티브에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추상이 안 돼요. 그래서 잘하는 종목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그게 실을 갖고 하는 작업이 된거죠."

    ▷ 프리즈 커넥트 때 약 700여개의 인형을 전시장에 나열해 놓으셨어요. 사람들의 지문이 다 다른 것 처럼, 인형을 제각각으로 만들고 싶으셨다고.

    "1만개의 다른 인형을 만드는 게 목표에요. 방랑자들일 수도 있고, 우리들일 수도 있겠죠."
    <Miniature Fairy Tale> 이준 작가. / 필자 제공
    <Miniature Fairy Tale> 이준 작가. / 필자 제공
    ▷ 이번 전시 <사랑을 짓는 아이>에 대해 소개 부탁드려요.

    "어떤 컬렉터 분께서 저에게 아이 방 하나를 통으로 만들라는 미션을 주셨어요. 생각해보니 저도 아이 같은 마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마음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제기 주로 단절과 연결을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그 연결의 근저에 있는 측은지심, 따뜻한 마음의 불씨 같은 걸 생각하면서 작업한 결과물이에요. 아이방을 좀 섞어보았고, 새롭게 작업한 것들도 구성해 놓았어요."

    ▷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세요?

    "다음이 궁금한 작가가 되고 싶어요. 지금보다 1년, 2년 후가 더 궁금한. 10년 후도 그려지는 작가."

    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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