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2.5세 출신 정체성
작품 속 '김용길 가족'에 투영
일제 패망 뒤 생활고 등 그려내
도쿄서 한·일 수교 60주년 무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서 공연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짐도 다 쌌는데, 동생이 감기에 걸려 못 갔다. 그런데 한국으로 가는 배가 침몰해버렸다고 들었지. 그렇게 오사카에 남은 거야.”
일본의 이름난 극작가이자 재일동포 2.5세인 정의신 연출가(사진)는 자신의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용길이네 곱창집’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다시 불러냈다. 14년 만에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 돌아온 작품 ‘야끼니꾸 드래곤’의 장면과 대사에는 그가 보고 느껴온 자이니치(재일동포)의 삶이 투영돼 있다. 지난 6일 예술의전당에서 정 연출가를 만났다.
야끼니꾸 드래곤은 전쟁에 패망한 일본 간사이 지방에 남은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주인공 김용길은 곱창 가게를 열고 아내와 세 딸, 막내아들과 함께 근근하게 삶을 이어 나간다. 1970년대 오사카, 고베의 변두리를 배경으로 한 이유는 자신이 바로 간사이 지방 출신이기 때문. 당시 고기가 아닌 부산물을 구워 먹는다는 것은 재일동포가 겪는 생활고와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여러 현실을 대변한다. 곱창을 구워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가족들의 모습은 시대의 상처와 희망이 지속적으로 교차하며 소소한 웃음을 주기도 한다.
이날 정 연출가는 “토월극장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고 운을 뗐다. 일본 초연 당시 요미우리 신문은 그를 “체호프에 비견될 정도로 희비극을 잘 버무리는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이 작품이 한국에 올랐을 땐(2008년, 2011년) 거의 모든 관객이 용길이와 함께 울었다. 정 연출가는 “1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도 지금도 나는 마이너리티”라고 고백했다. 최근 올해 이 작품은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최근 도쿄에서 공연됐고 다시금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나이가 있는 일본인 관객은 고향을 떠나 도쿄로 상경해 고생했던 자신의 청춘을 떠올렸고, 젊은 관객은 일본 사회의 심각한 가족 붕괴 문제를 제 연극을 통해 보다 절실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나의 가족, 작은 재일동포 사회를 다룬 작품인데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도 세상에 공감을 주는 소수자의 문제를 다뤘기 때문 아닐까요.”
작품 속 소년이자 용길이의 아들 도키오는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자 작가의 분신 같은 존재다. 극 중 도키오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이지메를 당한다. 정 연출가는 “땅을 빼앗기고 갈 곳 없는 가족의 이야기가 유효하듯 차별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늘 디아스포라와 마이너리티에 있다. “재일동포뿐 아니라 성소수자 등 다양한 이야기를 썼어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소수자들의 고통은 출구가 보이지 않을 만큼 어렵다는 걸 느끼죠. 그래도 그걸 기록 하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