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사과, 물고기, 꽃잎이 흩날리는 거대한 식탁...도시의 역할을 되찾게 한 마르크탈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arte] 배세연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도시의 풍경과 삶을 담은 마켓홀
    로테르담의 '마르크탈'
    로테르담의 중심부, 복잡한 도시 한 가운데에 거대한 아치형의 건물이 서 있다. 독특한 형상으로 자리하고 있는 건물의 아래에서는 음식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마르크탈(Markthal), 이름 그대로 시장홀 (Market Hall)인 이곳은 분명 시장이지만 단순히 시장으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사진. ⓒMVRDV
    사진. ⓒMVRDV
    이 자리는 한때 폐허였다. 1940년의 폭격으로 도심 전체가 불에 탔을 때 이곳 또한 그 화마를 피해 가지 못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주차장과 노천시장으로 사용되며 대부분의 시간 동안 공터로 존재했다. 그런 장소에 2014년, 네덜란드 건축회사 MVRDV가 거대한 지붕을 얹었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이 마르크탈이다.

    거대한 말발굽처럼 생기기도 한 이 건물은 높이 40미터, 길이 120미터에 달한다. 이 아치의 아래에 자리한 시장에는 100여 개의 매대와 레스토랑, 식품점들이 자리하고 있고 그 사이를 수천 명의 사람이 오간다. 비어있던 장소에 거대한 터널과도 같은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외부에 열려있는 동시에 확실한 영역성을 가지는 시장을 구축한 것이다. 이 시장의 천장에는 아르노 코넨 (Arno Coenen)의 디지털 프레스코화 ‘Horn of Plenty’가 그려져 있다. 이는 사과, 물고기, 꽃잎, 해산물, 빵 등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흩날리고 있는 것과 같은 광경을 연출한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가 모티브가 된 이 그림은 마치 성당의 현대적인 천장화처럼 보이기도 하여 일상적 식재료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이게 한다.
    사진. ⓒMVRDV
    사진. ⓒMVRDV
    하늘을 대신한 천장화 아래에서 사람들은 천천히 걸으며 장을 보기도, 이색적인 장소를 즐기기도 한다. 이때 외부의 빛은 유리 벽을 통과해 시장의 공기를 따라 부드럽게 퍼지고 사람들의 목소리는 아치형 천장의 여기저기에 부딪히며 화사하게 흩어진다. 이러한 시장의 활기로부터 도시의 생명력이 살아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을 감싸고 있는 두꺼운 아치의 내부에는 주거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시장의 천장은 누군가의 거실 바닥이자 벽이 되고 밤이 되면 그 공간의 불빛이 시장의 천장을 밝힌다. 228세대의 주거 공간들은 자연채광에 엄격한 네덜란드 법률을 준수하기 위해 거실, 침실 등 자연채광이 보다 중요한 공간은 바깥쪽에 위치시켜 도시의 경관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반면 주방이나 식당과 같은 공간은 시장 쪽에 위치시켜 창문을 통해 시장의 경관을 바라볼 수 있게 하였으며 방음이나 냄새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삼중 구조로 설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써 거주자들은 일상의 소란을 품은 채 살아가고, 방문객들은 그들의 불빛을 보며 시장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마르크탈은 공공과 개인, 그 둘을 잇는 구조체가 되어 도시에 형성되어 있는 다양한 삶을 하나의 리듬으로 묶는다.
    사과, 물고기, 꽃잎이 흩날리는 거대한 식탁...도시의 역할을 되찾게 한 마르크탈
    사진. ⓒMVRDV
    사진. ⓒMVRDV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곳이 민간 자본으로 만들어진 공공공간이라는 것이다. 마르크탈은 로테르담시 정부가 아닌 민간 부동산 개발사 ‘프로바스트(Provast)’가 주도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건물은 공공의 광장이 되어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돈을 쓰지 않아도 머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그래서 사적인 소유와 공공의 경험이 교차하는 이곳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며 공공성의 구현과 존재 방식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마르크탈에 구현된 이 방식은 로테르담이 추진해 온 압축도시 (compact city) 전략, 즉 도심 안에서 주거, 일터, 시장, 공원 등이 결합 되는 방식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이곳에서 사적공간과 공공공간의 경계는 흐릿해지지만, 그 모호함으로 인해 오히려 도시 안에서 맺을 수 있는 관계는 풍성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저녁이 되면 건물의 투명한 입면은 도시의 경관을 반사한다. 성 라우렌스 교회의 종탑, 블라크 역의 전차, 큐브하우스의 기하학적 선들이 마르크탈의 유리 벽 위로 스쳐 지나간다. 이때 건물의 내부와 외부, 과거와 현재가 한 장면 안에서 뒤섞인다. 이처럼 도시의 풍경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만, 시장이 품고 있던 화려한 색채는 도시로 흘러나간다. 밤이 되어도 완전히 잠들지 않는 이 시장의 불빛은 도시뿐 아니라 주거 공간의 식탁에 앉아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들의 하루의 끝도 밝힐 것이다. 시장은 본래 음식을 사고파는 곳이지만 마르크탈에서는 이처럼 본래의 기능을 넘어 사람들의 삶과 도시의 풍경을 품고 다채롭게 만든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오래전부터 잃어버린 도시의 역할—함께 먹고 함께 숨 쉬는 삶의 풍경—을 되찾는다. 마르크탈은 그래서 단순히 건축이라기보다 도시가 스스로를 회복하기 위해 차린 하나의 거대한 식탁처럼 느껴진다.
    사진. ⓒMVRDV
    사진. ⓒMVRDV
    배세연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조교수

    ADVERTISEMENT

    1. 1

      브람스는 교향곡 1번에 '애국적 메시지'를 담았을까

      브람스의 교향곡 1번(1876)은 19세기 후반 교향곡의 부활을 알린 작품이다. 베토벤이 1824년까지 ‘불멸의 9곡’을 교향곡 역사에 봉헌한 뒤 후배 작곡가들의 교향곡은 기껏해야 이 위대한 기...

    2. 2

      샴페인은 모두 프랑스산? 그럼 미국 샴페인은 없나요

      레스토랑에서 일행 중 누군가 소믈리에를 불러 “여기 미국 샴페인은 없나요?”라고 묻는다면, 아마 당신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샴페인은 프랑스 와인 아닌가요?”라고 되물을 것이...

    3. 3

      현실 사회주의 건설 현장 한가운데에서 근원적 사회주의를 상상한다는 것의 불온함

      1920년대 러시아의 문학 지도를 잘 살펴보면 이후 소비에트 사회가 나아갈 바가 이미 가늠자로 펼쳐져 있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스탈린에 의해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모든 예술 기조가 공식 통합되기 전 거의 마지막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