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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의대에 미친 사이 반도체에 미친 베트남…韓기업 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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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값 우수 인재 넘친다…V반도체의 부상
    의대 열풍에 K반도체 잇따라 베트남행

    하노이국립대 등 최고 대학 출신 월100만원에 확보
    어보브, 보스반도체 등 대표 팹리스 R&D 거점 차려

    하나마이크론, ISC등 제조 기업도 사업 확장
    엔비디아, 퀄컴, 인텔, 르네사스 글로벌 기업도 진출

    베트남 반도체 산업 年13.7% 고속 성장
    베트남 정부, 2040년까지 10만명 양성에 기업 공급

    "한국선 원하는 만큼 R&D 못해…베트남 진출 필수돼"
    베트남 반도체 엔지니어들이 하노이 꺼우저이구에 있는 어보브반도체비나 R&D센터에서 반도체 제품을 설계하고 있다.  /하노이=황정환 기자
    베트남 반도체 엔지니어들이 하노이 꺼우저이구에 있는 어보브반도체비나 R&D센터에서 반도체 제품을 설계하고 있다. /하노이=황정환 기자
    베트남 하노이의 테헤란로 격인 꺼우저이구 CMC타워 8층에 있는 ‘어보브반도체 비나’ 사무실. 젊은 20~30대 베트남 엔지니어 30여명이 빽빽이 앉아 전자제품의 두뇌 격인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설계에 몰두하고 있었다.

    MCU 분야 국내 1위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인 어보브반도체가 2022년 첫 해외 R&D거점으로 구축한 이 곳은 아날로그와 혼합신호IC 설계 등 고난이도의 설계 작업을 서울 삼성동 연구소와 나눠 진행한다.

    어보브반도체가 베트남으로 향한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에선 인재를 구할 수 없어서다.

    국내선 의대 쏠림 현상으로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료 계열로 빠져나간 지 오래다. 공대 졸업생들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으로 향한다. 국내에선 손 꼽히는 팹리스인 어보브반도체지만 주요 대학 출신 석사급 엔지니어 한명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반면 베트남에선 상황이 다르다. 하노이국립대, 하노이과학기술대(HUST), 호치민국립대 등 베트남 최고 대학 출신 반도체 엔지니어를 한국의 20~30% 수준인 월 100만원 안팎이면 구할 수 있다.

    한 해 수험생만 116만명에 달하는 베트남에선 최상위 1%의 학생들이 전자공학 등 반도체 관련 학과로 몰린다. 대졸 평균 초봉이 50만원 이하인 이들에겐 한국 기업의 반도체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 곧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타는 것이라서다.

    양질의 인재를 원하는만큼 구할 수 있다는 매력에 국내외 반도체 기업들은 앞다퉈 베트남에 R&D 거점을 마련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작년부터 베트남에 AI 연구거점 구축에 나섰고, 퀄컴과 마벨테크놀로지 등도 베트남 내 R&D 투자를 늘리고 있다.

    국내선 차량용 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개발 중인 팹리스 보스반도체와 맞춤형 반도체 설계(ASIC) 전문 기업 세미파이브를 비롯해 코아시아, 에이디테크놀로지 등 국내 주요 반도체 벤처기업들이 하노이와 호치민에 많게는 수백명 규모의 R&D센터를 세웠다.

    국내 1위 후공정(OSAT)업체인 하나마이크론과 반도체 테스트 부품인 ‘실리콘 러버 소켓’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ISC등 제조업체들은 베트남에 대규모 생산 기지를 짓고 엔지니어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우현택 어보브반도체 비나 법인장은 “베트남 엔지니어의 역량은 서울 주요 대학 출신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며 “팹리스에게 베트남에 R&D센터를 두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가 됐다”고 말했다.
    트린 티 프엉 어보브반도체 테크니컬리더(37)와 어보브반도체비나 엔지니어들이 새로 개발 중인 반도체 설계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하노이=황정환 기자
    트린 티 프엉 어보브반도체 테크니컬리더(37)와 어보브반도체비나 엔지니어들이 새로 개발 중인 반도체 설계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하노이=황정환 기자
    베트남의 테헤란로로 불리는 하노이시 꺼우저이구. 이 곳에 있는 한국의 어보브반도체 베트남법인 사무실에서 20~30대 베트남 엔지니어 30여명이 전자제품의 두뇌 격인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설계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 회사 반도체 설계팀을 이끄는 트린 티 프엉 테크니컬리더(37)는 “저만의 반도체 팹리스를 창업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베트남 명문대인 하노이과기대(HUST)를 졸업한 뒤 미국의 시스템반도체 기업 코보와 베트남 최대 정보기술(IT) 기업 FPT를 거쳐 2022년 한국의 어보브반도체 베트남 법인의 창업 멤버로 합류했다.

    14년차인 그의 연봉은 비슷한 연차의 한국 중소·중견기업 엔지니어들과 비슷하다. 대졸 신입 사원 초봉이 50만원 수준인 베트남에서 초고소득자다. 프엉 리더는 “개인 경력 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도 반도체 엔지니어가 되는 것은 매력적”이라며 “수학자 출신으로 창업해 30여년만에 ‘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리는 FPT그룹 창업자 쯔엉 자 빙 회장처럼 되고 싶다”고 했다.

    ◆경제 성장률 웃도는 반도체 산업

    베트남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9일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마켓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244억달러 수준인 베트남의 반도체 산업 규모는 2030년 465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이 13.7%로 베트남 경제성장률(7%)의 2배에 달하는 속도다.

    베트남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연구개발(R&D) 거점이 되는 데 20년에 걸친 ‘축적의 시간’이 있었다. 베트남에 첫 발을 들여놓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은 일본의 차량용 반도체 기업 르네사스다. 2004년 호치민시에 일본을 제외한 R&D시설론 최대 규모의 디자인 센터를 세웠다. 현재 직원 수만 1500명에 달하는 초대형 연구소로 커졌다.

    2006년엔 미국 인텔이 호치민시에 조립·테스트 공장 설립하며 베트남 후공정 산업 발전의 기반을 마련했다. 현재까지 15억달러가 투입된 이 공장에선 5G(5세대) 이동통신 관련 반도체와 중앙처리장치(CPU)가 생산된다. 인텔 이후 마벨과 시놉시스, 마이크로칩 등 글로벌 팹리스와 앰코를 비롯한 대형 후공정 업체들이 베트남에 진출했다. 이런 기업들의 처우가 베트남 내 다른 기업들을 압도하면서 베트남에서 반도체 엔지니어는 최대 인기 직업으로 자리잡았다.

    최원 어보브반도체 대표는 “베트남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수학과 공학에 강한데, 이들이 유수의 글로벌 기업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강력한 인재 풀이 형성되고 있다”며 “이젠 팀장급이 된 1세대 반도체 인재들이 창업에 뛰어들면서 베트남의 반도체 생태계도 한층 두터워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베트남 엔지니어들이 베트남 박닌성 반쭝 산업단지에 있는 하나마이크론 후공정 생산라인에서 반도체 패키징(조립)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나마이크론 제공
    베트남 엔지니어들이 베트남 박닌성 반쭝 산업단지에 있는 하나마이크론 후공정 생산라인에서 반도체 패키징(조립)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나마이크론 제공

    ◆반도체 인재 10만 양성한다는 베트남

    베트남 정부도 반도체 인재 경쟁력을 투자 유치를 끌어내는 전략적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해 수립한 ‘2030년 반도체 산업 발전 전략 및 2050년 비전’에서 현재 약 6000명인 반도체 엔지니어를 2030년 5만명, 2040년 10만명, 2050년엔 모든 수요를 충족시킬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하노이국립대, 호치민국립대, 다낭대, 하노이과기대 등 핵심 4개 대학에 국가반도체연구소를 신설 또는 강화하기로 했다. 또 20여개 고등교육기관에 기초반도체연구 인프라를 확충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응우옌칵릭 베트남 정보기술산업국 국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베트남은 국내 수요를 넘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인재를 공급할 잠재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도 V반도체 성장세에 올라타고 있다. 자동차용 AI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인 보스반도체는 2022년 창업 단계부터 R&D 조직을 한국과 베트남에 동시에 설립했다. 삼성전자 부사장 출신 박재홍 대표가 창업한 보스반도체는 창업 초기부터 100명이 넘는 베트남이 엔지니어를 확보해 퀄컴이 장악한 차량용 AI반도체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박 대표는 “현재 베트남에서만 100명이 넘는 R&D 인력을 가동 중”이라며 “한국에선 어떻게 해도 원하는만큼 인재를 구할 수 없기에 기한 내에 제품 개발에 성공하려면 베트남에서의 R&D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한 현지 대학과의 협업도 확대되고 있다. 어보브반도체는 HUST 전기전자공학과 학생들에게 이들이 설계한 반도체를 삼성 파운드리를 통해 생산하는 경험을 부여하는 등 산학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베트남 박닌성에 대규모 후공정(OSAT) 공장을 구축한 하나마이크론은 베트남-한국공과대학, 박장기술공업전문대학에서 반도체 교육 프로그램과 인턴쉽을 운영 중이다.

    하노이=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황정환 기자
    한국경제 마켓인사이트 M&A팀 황정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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