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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 국가장학금으로 파크골프 친다…만학도만 넘쳐나는 지방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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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EP INSIGHT
    늙어가는 지방대, 생존 몸부림

    지방 전문대, 만학도 앞다퉈 유치
    "노후 취미까지 장학금 지원하나"
    교육부, 장학금 우선순위 조정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수도권에 있는 A 전문대는 인기가 시들해진 군사학과를 올해 폐과하고 파크골프학과를 신설했다. 지방을 중심으로 파크골프학과가 시니어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트렌드를 반영한 학과 개편이다. A 대학 총장은 “요즘 지방 대학들은 외국인 유학생 유치보다 만학도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학금 받으면 무료” 홍보

    평생 학습의 필요성과 관심이 커지면서 지방 대학들이 만학도(성인학습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반 대학은 30세 이상, 전문대는 25세 이상을 만학도로 분류해 선발한다. 만학도 유치는 대학 재정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만학도는 일반 대학생과 마찬가지로 국가장학금 수급 대상이다. 학령인구 급감으로 생존의 기로에 선 지방대 입장에선 학생만 모집하면 국가장학금을 통해 등록금 수입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부터 정부 규제가 풀리면서 지방 전문대는 입학 정원과 관계없이 무제한으로 만학도를 선발할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는 입학 정원의 5%까지만 정원 외로 성인학습자를 추가 선발할 수 있었는데, 비수도권 대학은 정원 외로 자유롭게 모집하도록 문을 열어준 것이다.
    대구한의대 미래라이프융합대학에 입학한 만학도들이 모여 앉아 수업 과제를 하고 있다.  대구한의대 제공
    대구한의대 미래라이프융합대학에 입학한 만학도들이 모여 앉아 수업 과제를 하고 있다. 대구한의대 제공
    그 영향으로 지방 전문대의 성인학습자 대상 전담학과 신설이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학과가 파크골프학과다. 지도자, 심판 등 다양한 진로에 필요한 실습을 제공하고 각종 자격증 취득을 지원해 건강과 여가, 일자리를 연결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전국적으로 파크골프학과가 늘어나자 대학들은 각종 혜택을 내세우며 학생 유치전에도 나섰다. 영진전문대는 “전국 유일 재학생 전용 파크골프 18홀 실습장을 보유하고 있다”고 홍보했다. 경남 거창에 있는 한국승강기대는 제주에 파크골프장을 직접 조성했다.

    부부 형제 자매 ‘동반 입학’

    국가 장학금 혜택으로 경제적 부담 없이 파크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관련 학과에 중장년층이 몰리기 시작했다. 학교 측은 자매 형제 부부 등 가족 재학생에게 장학금 혜택을 줘 동반 입학을 장려하기도 한다.

    그 결과 한국승강기대는 올해 파크골프학과 등을 중심으로 만학도 신입생 1033명을 모집하는 데 성공했다. 이 학교 정원(297명)의 348%에 달한다. 구미대는 입학 정원의 57.2%에 이르는 773명을 모집했다. 영진전문대도 286명의 만학도가 올해 입학했다.

    지방 전문대를 중심으로 정원 외 만학도가 급증하면서 국가장학금 지급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는 등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한국장학재단이 서지영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연령대별 국가장학금 지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한국승강기대는 30대 이상 재학생 1073명이 국가장학금으로 23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이 학교 10~20대 국가장학금 수급자는 192명에 불과했다. 구미대는 30대 이상 재학생 1989명이 41억원, 영진전문대는 1656명이 38억원을 받았다. 어림잡아 만학도 한 명당 약 200만원씩 국가장학금을 받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국가장학금Ⅰ유형은 중·저소득층 가정의 자녀도 등록금 부담 없이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가구 소득분위 9분위 이하까지 장학금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은퇴자는 근로 소득이 없기 때문에 9분위 이하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만학도 교육에 특화된 한 지방 대학 관계자는 “자신이 즐기는 스포츠를 통해 전문가가 되고, 새로운 인생을 준비한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프로그램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대학들을 보면 노후 취미생활까지 국가장학금을 통해 지원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고 했다.

    ‘학위 장사’ 변질 우려 커져

    부실 교육 우려도 나온다. 정원이 200명인 대학이 1000명 이상의 정원 외 인원을 모집할 경우 현실적으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원 외로 선발된 학생들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한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성인학습자 대상 수업은 원격 수업이 많고, 출결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자칫하면 ‘학위 장사’로 변질될 수 있다”며 “정원 외로 선발된 인원에 대한 규제가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 세금인 국가장학금이 과잉 지급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자 정부는 제도 손질에 나섰다. 30대 이상이라고 해서 국가장학금 지급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20대 사회초년생이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국가장학금의 본질적인 운영 취지와 어긋난다는 판단에서다.

    교육부는 최근 학자금지원심의위원회를 열고 논의 끝에 지방 전문대가 정원 외로 성인학습자를 선발할 때 정원 초과 인원에 대한 국가장학금 지급은 정원의 10%까지만 허용하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들의 반발이 있지만, 국가장학금의 본래 지원 취지와 평생 교육을 강화한다는 기조 사이에서 균형점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고재연 기자
    한국경제신문 정치부 기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을 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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