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길 닿는 곳마다 마주하는 예술 샤토 라 코스트

최고 품질의 와인이 오랜 숙성 끝에 탄생하듯, 이곳의 가치와 환대는 충분히 머물며 교감해야만 온전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대자연이 빚어낸 황홀한 풍경 속 와인 잔은 예술을 담아내고 포도밭 위로 건축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니, 그 자체로서 하나의 장엄한 작품과도 같았다.

프랑스 남부 부슈뒤론(Bouches-du-Rhône) 주, 엑상프로방스에서 15km가량 떨어진 샤토 라 코스트(Château La Coste)는 220만 m²에 이르는 광활한 대지에 와이너리, 건축, 예술이 공존한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기원전 200년경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로마 시대 이전부터 이어져 온 농경과 포도 재배의 깊은 역사를 증명한다. 아일랜드 출신 사업가 패트릭 맥킬렌(Patrick McKillen)은 1년에 300일 동안 햇볕이 내리쬐는 프로방스에 복합 문화 공간을 열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과 연못 내 스기모토 히로시의 작품이 조화롭다 / 사진. ©Richard Haughton

“제 누이 마라(Mara)가 30여 년 전 빼어난 절경과 풍부한 문화유산에 반해 여기에 정착했습니다. 저는 종종 그녀를 찾아 이 지역을 방문했죠. 마라는 1682년에 지어진 팔라디오 양식의 샤토 라 코스트 저택을 보자마자 매료되었고, 저 역시 일과 쉼이 결합된 완벽한 장소로서의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2002년 샤토 라 코스트를 매입한 패트릭은 최고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당시에는 꽤 선구적이었던 유기농법을 도입, 2009년 공식 인증을 받았다. 현재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바이오 다이내믹 포도원 중 하나가 되었다.

거대한 야외 미술관 산책

샤토 라 코스트의 진정한 매력은 드넓은 포도밭과 숲길을 따라 조성된 건축 예술 산책로에 있다. “이 풍요로운 환경을 저 혼자 즐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제가 가진 또 다른 관심사인 예술에 주목했지요.” 패트릭 맥킬렌은 2004년부터 여러 건축가와 예술가들을 초청해 창작물을 구상하도록 독려했다. 제일 먼저, 마스터플랜을 조언한 장 누벨은 두 개의 원통형으로 구성된 현대적인 와인 양조장 ‘큐브리(Cuverie)’를 설계했다.

장 누벨이 설계한 ‘큐브리' 양조장 / 사진. ©Richard Haughton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한 메인 게이트와 단층의 아트 센터는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다. 아트 센터는 리셉션, 레스토랑, 서점을 갖춘 샤토 라 코스트의 허브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 외에도, 렌조 피아노의 전시 파빌리온, 오스카 니마이어의 오디토리움, 프랭크 게리의 음악관 등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거장들의 작품이 독창적인 경험을 전한다. 특히, 프랭크 게리의 음악관은 2008년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여름 프로젝트였던 임시 설치물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목조 구조물과 유리 지붕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원형 극장 형태로 휴식처이자 공연장으로 활용된다.

마치 보물 찾기하듯 발견하게 되는 40여 점의 예술 작품들은 샤토 라 코스트의 독특한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부지 입구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고, 아트 센터로 향하는 곧은 길의 양옆에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웅크린 거미(Crouching Spider)’와 션 스컬리의 ‘이스턴 재단(The Easton Foundation)’이 서 있다. 3미터에 달하는 거미 조각상은 물 위에 세우겠다는 패트릭의 제안 덕에 계약이 성사된 것이라고 한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웅크린 거미' 옆 안도 타다오의 '아트 센터' 그 뒤에는 장 누벨의 '큐브리'다 / 사진. ©The Easton Foundation New York ADAGP Paris, 2021 Photo Richard Haughton

자연 경관을 감상하며 걷다 보면 돌담에 통합된 앤디 골즈워디의 ‘오크 룸’이 비밀스러운 모습을 드러낸다. 서늘하고 칠흑 같은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머리 위로 빼곡한 1,200개의 참나무 가지는 비로소 이 지하 공간이 거꾸로 된 둥지임을 깨닫게 한다.

12톤 무게의 복잡한 목조 설치물인 쿠마 켄고의 ‘코모레비(Komorebi)’를 지나면, 리처드 로저스가 고안한 캔틸레버 구조의 ‘갤러리(La Galerie)’가 나타난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육교처럼 보이는 공간은 전시와 주위 경치를 동시에 만끽하기에 좋다. 이우환의 2014년 작 ‘하우스 오브 에어(House Of Air)’는 포도나무 덩굴 뒤편의 소박한 길 끝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밥 딜런의 ‘레일 카(Rail Car)’도 근처에 있다.

전망이 좋은 리처드 로저스의 '갤러리' / 사진. ©Stéphane Aboudrama l WE ARE CONTENT(S)

밥 딜런의 ‘레일 카' 실제로 사용되던 철제 화물차를 활용해 작가의 삶을 투영했다 / 사진. ©Stéphane Aboudrama l WE ARE CONTENT(S)

언덕 꼭대기로 오르면, 건축 예술 투어의 정점에서 장-미셸 오토니엘의 선명한 붉은색 유리 십자가가 안도 다다오의 ‘예배당(Chapel)’으로 인도한다. 세 개의 작은 구멍 외에는 빛이 차단된 예배당은 오롯이 명상에만 집중하도록 이끈다. 예배당 밖에서는 저 멀리 뤼베롱(Luberon)과 뒤랑스(Durance) 평원을 지키는 요새가 있던, 이제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라 키유(La Quille) 마을까지도 조망할 수 있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 마주하는 마이클 스타이프의 ‘여우들(Foxes)’은 야생의 생생함을 전하고, 톰 섀넌의 ‘드롭(Drop)’은 누구나 손으로 각도를 조절하고 움직여볼 수 있다.

톰 섀넌의 '드롭'과 저 멀리 프랭크 게리의 '음악관'이 보인다 / 사진. ©Richard Haughton

시선을 아래로 돌리면 땅에서 솟아오른 듯한, 임산부 형상의 기념비적인 조각품인 프룬 누리의 ‘마터 어스(Mater Earth)’가 위용을 뽐낸다. 야외 작품들을 둘러보는 데에만 수 시간이 소요되기에,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카트 서비스도 제공된다. 매일 진행되는 가이드 투어는 개별 작품의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는 데 유익하다.

프룬 누리의 '마터 어스'는 대자연 속 인류의 기원과 창조를 탐구한다 / 사진. ©Vincent Agnès

하종현과 랄프 푸치를 만나다

실내 전시 공간에서는 거장에서 신진 작가까지, 조각, 회화, 사진 등 장르를 넘나드는 연간 10여 회의 전시가 열린다. 렌조 피아노의 파빌리온에서는 6월 22일부터 9월 1일까지 한국 화가 하종현의 개인전 《빛을 색으로(Light Into Color)》가 진행 중이다. 샤토 라 코스트, 국제갤러리, 뉴욕 티나킴 갤러리가 협업한 전시는 작가가 남프랑스에서 처음 선보이는 개인전으로, 대표 연작인 ‘접합’ 중 지난 10년을 아우르는 회화 18점을 소개한다.

하종현은 반세기 동안 마포(마대 자루), 철조망 같은 전후 시대상을 반영하는 재료로 회화의 본질을 탐구해 왔다. 올이 굵은 마포의 뒷면에 두터운 물감을 바르고 천의 앞면으로 물감을 밀어 넣는 배압법背押法은 그만의 독보적인 방법론이다. 그는 “이곳의 빛과 공기에는 예술가의 감각을 일깨우는 고요한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모두 찰나에 불과하지만, 제 작업이 파빌리온의 고유한 환경과 교감하며 공간의 일부로서 존재하기를 바랍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2017년에 개관한 파빌리온은 주변 지형을 존중하며 지면을 6m 깊이로 파내 계곡 형태를 이루는 구조다.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긴 진입로의 끝에 위치한 사다리꼴 건축물은 샤토 라 코스트의 지평선과 나란히 놓여 있으며, 대형 유리창을 통해 쏟아지는 자연광이 작품을 조명하는 것이 특징이다.

하종현 개인전 《빛을 색으로》 전시전경 / 사진. ⓒ Stéphane Aboudaram, 제공. 국제갤러리

오스카 니마이어의 오디토리움에서는 뉴욕의 고급 조명 및 가구 브랜드인 랄프 푸치 인터내셔널(RALPH PUCCI International)의 초청전 《순수(PURE)》가 6월 23일부터 9월 21일까지 열린다. 샤토 라 코스트가 주최하는 네 번째 현대 디자인 전시이자 미국 디자인을 알리는 첫걸음이다. ‘메이드 인 뉴욕: 조각 스튜디오를 기리며(Made in New York: A celebration of a sculpture studio)’라는 부제 아래, 패트릭 나가르, 에릭 슈미트, 존 코가를 포함한 13명의 디자이너와 아티스트가 랄프 푸치 스튜디오와 협업한 작품들을 공개한다. 전시명에 맞춰 전 작품은 흰색 플라스터 글라스 소재로 통일되었다. 수작업으로 남겨진 미세한 흔적과 유기적인 형태미는 관람객의 촉각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전시명 《순수》에 걸맞는 플라스터글라스 오브제들이 전시된 내부 / 사진. ©Antoine Bootz

공간에 흐르는 1950년대 재즈 선율은 랄프 푸치 설립 당시의 도전 정신을 대변한다. 랄프 푸치는 “패트릭 맥킬렌을 처음 만난 건 우연이었습니다. 그와 공항에서 택시를 함께 타게 되었죠. 짧은 대화였지만, 우리는 서로의 작업에 대한 호감과 존경심을 느꼈고, 자연히 샤토 라 코스트의 전시로 결실을 맺었죠”라고 전했다. 유리 벽 너머 펼쳐진 포도밭과 갤러리를 둘러싼 연못의 물결이 공간에 투영되며, 안과 밖, 자연과 인공물의 경계를 허물고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오스카 니마이어의 오디토리움 / 사진. ©WE ARE CONTENT(S)

예술 산책을 마치면 미식의 즐거움이 기다린다. 미슐랭 셰프 엘렌 다로즈의 현대적인 요리, 아르헨티나의 유명 셰프 프랜시스 말만의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사교적인 무드의 라 테라스에서는 여름 내내 라이브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장-미셸 오토니엘의 황금빛 작품이 보석처럼 걸려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이탈리아 레스토랑 이탈리앙도 훌륭하다. 라 테라스 옆 19세기 농가를 개조한 오붓한 공간에서는 와인 시음은 물론, 올리브 오일과 꿀도 판매한다. 한편, 5성급 럭셔리 호텔인 빌라 라 코스트와 작년에 문을 연, 프로방스 분위기를 한껏 살린 로베르주 라 코스트에서도 예술적인 탐방은 끝날 줄 모른다. 그렇게 모든 감각이 깨어나는 몰입적이고 사색적인 여정이 완성된다.

샤토 라 코스트만의 테루아가 담긴 로제 와인 / 사진. ©Herve Fabre

엑상프로방스=유승주 미술칼럼니스트· 아르떼 객원기자

발 길 닿는 곳마다 마주하는 예술 '샤토 라 코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