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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넬슨 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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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 정태남의 유럽도시 예술 산책
    트라팔가 광장

    영국 런던 중심부, 템스 강 북쪽에 위치한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은 런던 시민들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인다. 이 광장에는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국립미술관)와 영웅 넬슨 제독을 기념하는 높은 원기둥이 시선을 끈다. 내셔널 갤러리는 13세기 중반부터 1900년대까지 이르는 회화작품을 2300점 이상 소장하고 있는데, 관람자 숫자로 서열을 매겨 본다면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영국의 대영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예술 박물관 다음이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과 내셔널 갤러리. / 사진. ⓒ 정태남
    런던 트라팔가 광장과 내셔널 갤러리. / 사진. ⓒ 정태남
    내셔널 갤러리 입구와 트라팔가 광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뱉어내는 세상의 모든 언어가 뒤섞여 들린다. 그중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내뱉는 말이 유난히도 귀에 따갑게 들린다. 이 광장 이름을 두고 스페인 사람들은 ‘트라팔가르’, 영국 사람들은 ‘트라팔가’로 발음한다. 미국식으로 ‘트래펄거’라고 발음하면 눈살 찌푸리는 영국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스페인 사람들은 영국식으로 읽는 것조차 꺼린다. 이 광장의 이름은 엄연히 스페인 지명이니까. 정확히 말해 스페인 남서부 대서양 연안의 ‘트라팔가르 곶(Cabo de Trafalgar)’이다.

    트라팔가 광장이 조성되기 전 이곳은 원래 영국 왕실 마굿간이 있던 자리였다. 이 지역은 1820년대에 개발되기 시작하여 1830년 경 광장 조성계획이 구체화되면서 ‘트라팔가 광장’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 시대인 1845년에 거의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났다. 이 광장은 완공 당시부터 전형적인 국가 기념광장의 성격을 띠었다.

    그런데 스페인 사람들은 영국이 이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광장의 이름이 스페인 지명이라고 크게 기뻐하는 것 같지 않다. 왜 그럴까?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침공에 나섰다가 완전히 체면을 구겼는데, 200여년이 흐른 후인 1805년 10월 21일에는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군 함대가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1758~1805)이 지휘하는 영국함대에게 완전히 참패당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이 해전에서 프랑스와 스페인은 33척 중 22척을 잃었지만 영국은 27척 중 단 한 척만 잃었다. 하지만 넬슨 제독에게는 이 전투가 생애 마지막 전투였다. 그는 뛰어난 전술로 적의 함대를 궤멸 상태로 몰아가던 중 적의 저격병이 쏜 총탄에 중상을 입고 3시간 반 만에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본 트라팔가 광장. 넬슨 원기둥이 초점을 이룬다. / 사진. ⓒ 정태남
    내셔널 갤러리에서 본 트라팔가 광장. 넬슨 원기둥이 초점을 이룬다. / 사진. ⓒ 정태남
    영웅 넬슨 제독 기념 원기둥

    그가 죽은 지 많은 세월이 흐른 1838년, 넬슨 기념비 건립위원회는 그해 완공된 내셔널 갤러리가 일직선으로 보이는 곳에 세울 기념비 공모전을 개최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건축가 레일턴(W. Railton 1800~1877)의 계획안이 선정되었다. 그러나 그 착공과 완공은 그보다 훨씬 뒤인 1843~1849년에 이루어졌다. 넬슨 기념비, 즉 넬슨 원기둥(Nelson’s Column)은 코린토스식 기둥 양식을 따른다. 이는 고대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의 원기둥(Columna Traiani, 로마, 서기 113년)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트라야누스 원기둥이 표면 전체에 전투 상황이 묘사된 부조로 덮여 있는 반면, 넬슨 원기둥은 장식 대신 깔끔한 수직성을 강조한다. 이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절제된 미학과 기하학적 상징성을 반영하며, 원기둥 그 자체가 상승하는 힘과 통합의 이상을 표현한다. 원기둥의 높이는 46m, 넬슨의 석상은 5.5m로 전체 높이는 약 52m에 달한다. 건축적으로 보면 이 정도의 높이는 트라팔가 광장에서 강한 시각적 중심축을 형성하며, 트라팔가 광장을 도시의 제국기념 공간으로 확고히 규정짓는 역할을 한다.
    넬슨 석상. 그는 전투에서 오른쪽 눈과 오른팔을 잃었다. / 사진. ⓒ 정태남
    넬슨 석상. 그는 전투에서 오른쪽 눈과 오른팔을 잃었다. / 사진. ⓒ 정태남
    원기둥 정상부의 거대한 넬슨의 석상은 조각가 베일리(E. H. Baily 1788~1867)의 작품이다. 이 석상은 이상화된 비례를 따르며, 넬슨은 제복 차림에 단호한 눈빛으로 남동쪽을 응시하고 있다. 실존 인물의 사실적 묘사이면서도, 바로크 이래 전통을 따른 영웅조각의 이상적 형상화가 가미되어 있다.

    이 석상은 높은 원기둥 꼭대기에 위에 올려져 때문에 육안으로는 세부를 자세히 보기 힘들지만, 사진을 찍어 확대해 보면 뭔가 이상하다. 영웅 넬슨 제독의 모습은 완전한 육체를 가진 고대 조각상들과 다르다. 즉 오른팔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12세에 입대한 이래로 평생을 전투와 전투 속에서 살아갔던 넬슨은 1794년 지중해의 코르시카 섬 전투에서는 오른쪽 눈을 잃었고, 1797년 대서양의 카나리아 제도의 테네리페 공격전에서는 오른팔을 잃었다. 즉 그는 불구의 몸으로 트라팔가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네 개의 부조가 있는 넬슨 원기둥 기단부분과 사자상. 그 너머로 내셔널 갤러리가 보인다. / 사진. ⓒ 정태남
    네 개의 부조가 있는 넬슨 원기둥 기단부분과 사자상. 그 너머로 내셔널 갤러리가 보인다. / 사진. ⓒ 정태남
    넬슨 원기둥을 받치는 기단의 각 면은 넬슨이 참전한 중요한 네 해전 장면을 묘사한 청동 부조로 장식되어 있는데, 남쪽면의 부조는 총상을 입은 넬슨이 부하 장교들에게 둘러싸여 마지막 순간을 맞는 모습을 담았다. 이 네 개의 부조들은 각기 다른 조각가들이 맡아 조형 언어는 약간씩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영웅주의적 서사, 극적 구도, 사실적 묘사에 초점을 두었다. 이 네 개의 부조는 넬슨 원기둥의 조형성을 보완할 뿐 아니라, 한 인물의 생애를 360도로 둘러보며 회화적·조각적으로 ‘읽을 수 있게’ 만든 역사서 같은 기능을 한다.

    원기둥의 사방에는 광장이 완공된 지 한참 지난 다음인 1867년에야 건축가 레일턴의 계획안에 따라 네 마리 사자 조각상이 배치되었다. 동물화가로 유명했던 랜시어(E. Landseer 1802~1873)가 제작한 이 조각상들은 자연주의적 디테일과 상징적 위엄을 동시에 지녔다. 이는 19세기 중엽 동물 해부학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시대적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트라팔가르 바다에서 쟁취한 승리로 영국은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향후 100년 동안 해가지지 않는 무적의 대제국으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지키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넬슨 원기둥을 마주보는 내셔널 갤리리도 대영제국의 영광의 깃발이 휘날릴 때 세워진 것이다. 또 그러고 보면 이 광장에는 ‘문화적 품격’과 ‘군사적 영광’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셈이다.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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