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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 데이터로 '시각의 교향악' 작곡하는 료지 이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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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사운드 아티스트 료지 이케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서 개인전

    ACC개관 10주년 …대형 설치작 7점 선보여
    광학 현미경으로 본 혈액의 세포들이 쪼개지고 뭉친다. 인간의 뇌를 촬영한 데이터들은 미세한 신경 섬유 한올까지 담아 360도 회전한다. 몸 속의 모든 뼈들이 하나씩 나뉘어져 해체됐다 만나기를 반복. 이어서 삑, 삑, 삐-----익 들려오는 전자음. 이곳은 어느 병원 수술실이 아니다. 사운드 아티스트 료지 이케다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다.
    Ryoji Ikeda. DataVerse
    Ryoji Ikeda. DataVerse
    료지 이케다는 1966년 일본 기후시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사운드 아티스트다. 1990년대 백색 소음을 결합해 전자음악 실험을 시작했고, 데이터를 조형의 재료로 쓰며 관람객들을 시청각적 '완전 몰입'의 상태로 이끄는 전방위 예술가다. 현재 파리와 교토를 오가며 활동 중인 그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런던 테이트 모던, 파리 퐁피두 센터 등 세계 유수 기관에서 전시됐거나 소장됐다.
    료지 이케다 'data.flux [n˚2] (2025)'
    료지 이케다 'data.flux [n˚2] (2025)'
    지난 7월 10일 광주 ACC 복합전시 3·4관에서 개막한 '2025 ACC포커스-료지 이케다' 전은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은 ACC가 가장 오래 공들인 전시 중 하나다. 2015년 개관 당시 거대한 설치 예술을 선보였던 그를 다시 초청하면서다. 인터뷰는 물론 대중 앞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료지 이케다는 전시 개막을 위해 광주를 찾아 "나를 데이터의 작곡가로 여겨달라"고 했다. "음악회 도중에는 어떤 질문을 던지지 않고 그냥 듣는 것처럼, 나의 작업도 질문 없이 순수하게 즐겨달라"는 말과 함께. 그는 이번 전시에 신작 4점을 포함해 총 7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의 말처럼 전시장 어디를 둘러봐도 설명은 없다.
    료지 이케다 'data.flux [n˚2] (2025)'
    료지 이케다 'data.flux [n˚2] (2025)'
    어둡고 좁은 통로에서 전시는 시작된다. 오직 머리 위 천장에 설치된 10m 길이의 LED 화면 속 영상이 물살처럼 빠르게 지난다. 이 영상은 인간의 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DNA 데이터를 기하학적 패턴으로 변환한 'data. flux[n˚2]' (2025)다. 쉼 없이 변하고 지나가는 정보의 홍수 속에 결국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우리의 한계를 드러내는 듯하다.
    critical mass (2025)
    critical mass (2025)
    데이터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면 또다른 신작 '크리티컬 매스와 만난다. 가로 세로 10m의 거대한 바닥 스크린에 투사된 검은 원과 흰비칭 극명하게 대비되며 쿵쿵, 전자음이 온몸을 전율케 한다. 작가는 "아무 것도 묻지 말고, 그냥 보라"고 조언하지만 이케다의 전시에선 그런 태도를 유지하긴 쉽지 않다. 평범해 보이는 라이트 박스조차 아주 가까이서 유심히 들여다보거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최대 줌을 해보면, 표면에 적힌 수만 개의 숫자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건 뭘까? 도대체 저건 무슨 뜻일까?' 질문하는 순간, 작가는 또 외친다. "그냥 보고, 자신만의 메시지를 찾으라"고.
    Ryoji Ikeda, Data-Verse 1_2_3, 2019-2020, Copenhagen Contemporary, Photo by David Stjernholm
    Ryoji Ikeda, Data-Verse 1_2_3, 2019-2020, Copenhagen Contemporary, Photo by David Stjernholm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초대형 스크린 3개가 이어지는 '데이터-버스(date-verse)' 3부작이다. 40m 길의 벽에 투사된 다양한 데이터들이 춤을 춘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등에서 수집한 우주 관측 자료는 물론 인간 게놈프로젝트에서 뽑아낸 유전자 정보, 전 세계 각종 재난의 이미지, 도시 간 네트워크 지도 등이 고주파 사운드와 함께 쏟아지는 장관이 펼쳐진다. 작가는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20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얼핏 상관 없어 보이는 선과 점과 이미지들이 고도의 계산에 의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며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제목과 뜻을 모르고 보더라도, 어디선가 봤거나 어쩌면 나와 깊은 연관이 있거나, 거룩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한 같은 지도와 데이터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식이다. 관람객들은 캄캄한 전시장 안에서 홀린듯 바라보게 된다. 심오한 음악과 함께다.
    료지 이케다
    료지 이케다
    이애경 ACC 학예연구사는 "작가는 오디오와 비주얼의 실시간 렌더링 시스템과 고유의 알고리즘을 구축해 자신만의 작업 기반을 만들었다"며 "기술과 데이터를 고도화 시키며 데이터 미학과 오디오 비주얼 아트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케다 작가는 작품 각각의 해석에 대해선 끝내 답하길 거부했지만, 이런 말은 남겼다. "작품에 영감을 주는 건 공간이다. 마치 건축가처럼 그 공간에 어울릴 만한 것들을 하나씩 세워나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관람객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데이터는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전시는 12월 28일까지.

    광주=김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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