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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인선 건축가 "브루탈리즘은 '왜'라는 질문에서 출발…쓸모없는 장식 덜어낸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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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한국의 브루탈리즘 대가 함인선 건축가

    겉보다 속이 중요한 건축
    뼈대·구조를 노출함으로써
    넓은 내부공간 만들 수 있어
    거대한 외관은 그 결과일 뿐

    대표작은 연대 송도 도서관
    책만 쌓여 있는 곳이 아닌
    사람 위한 놀이터로 조성
    비일상적 공간감 연출했죠

    브루탈리즘 과제는 '소통'
    '더 나은 삶' 지향했던 철학이
    되레 인간 소외시킨다는 비판
    사용자 중심으로 발전시켜야
    연세대 송도캠퍼스 언더우드 기념도서관
    연세대 송도캠퍼스 언더우드 기념도서관
    “존재의 의미는 기능에서 나옵니다. 브루탈리즘은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면서 시작되죠.”

    함인선 건축가(66·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사진)는 “브루탈리즘은 내부 공간을 잘 만들기 위해 구조체, 설비 등을 외부로 꺼내는 건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광주시 초대 총괄건축가를 지낸 그는 세종시 첫마을, 연세대 송도캠퍼스 마스터플랜 등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한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2002년 서울시청 앞에서 월드컵 응원을 한 경험이 있다면 모를 수 없는 월드컵 기념 조형물 ‘월드볼’도 그의 작품이다.

    함 건축가는 브루탈리즘의 핵심 요소로 ‘윤리적 건축 태도’를 꼽았다. 외장 마감이나 장식 요소를 쓰지 않고 철근콘크리트의 물성을 고스란히 드러내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건축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건축가는 꾸밈 요소를 지양할지, 아니면 활용할지를 놓고 명확하게 둘로 나뉜다고 한다. ‘장식은 죄악’이라고 말한 아돌프 로스와 ‘건축은 기호’라고 주장한 로버트 벤투리가 대표적이다. 필수적인 건축 요소를 통해 장식미가 나타나야 한다는 게 함 건축가의 지론이다.

    노출콘크리트, 육중한 매스(형태) 등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만으론 브루탈리즘을 규정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왜 그렇게 지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브루탈리즘은 생활하기 좋은 환경을 대량으로 빠르게 공급하기 위해 활용돼 왔다. 아름다운 외관보다 내부 공간의 가치에 방점을 둔 것이다. 그는 건물의 뼈대와 구조물 등을 밖으로 노출함으로써 더 넓은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로 브루탈한 외관이 나타나는 것이다.

    브루탈리즘의 지향점은 함 건축가의 설계 데뷔작인 서울 영등포구 서울성락교회(1992년)와 성락교회 교육관(1997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락교회 교육관 지하 1층에는 대강당이 있다. 지하는 건폐율을 적용받지 않아 큰 규모의 집회 공간을 조성하기 좋다. 하지만 하중을 버티기 위해 곳곳에 기둥을 배치하면 대강당 활용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함 건축가는 기둥을 없애기 위해 철골 뼈대(입체 트러스 포탈 프레임)를 활용했다. 상부 5개 층이 이 뼈대에 매달리는 형태로 설계해 무게 부담을 덜었다. 건물의 입면을 결정하는 이 철골 구조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기능’을 위해 존재한 것이다.

    함 건축가는 성락교회와 함께 서울 강남구 신사동 청학빌딩(1998년)과 연세대 송도캠퍼스 언더우드 기념도서관(2013년)을 대표작으로 꼽았다. 송도캠퍼스 마스터플랜을 설계한 함 건축가는 도서관 설계를 본인 몫으로 남겨놨었다고 한다. 마스터플랜상 동일성과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 정육면체(큐브) 형태의 도서관을 짓고자 한 그의 의지다. 그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책을 위한 도서관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고 싶었다”며 “뚫린 공간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감을 연출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자연 채광을 위해 콘크리트가 아닌 유리로 외벽을 세웠을 뿐, 건축 의도나 기능을 위한 구조 측면에서 이 건물은 브루탈리즘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함 건축가 작품에는 개인 공간 못지않게 소통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의 철학이 녹아 있다. ‘나은 삶’을 지향했던 브루탈리즘이 오히려 인간을 소외시키는 건축이란 비판에 대한 반성이다. 1970~1980년대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한 대규모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이웃과의 만남은 오히려 줄었다. 고딕, 모더니즘, 브루탈리즘 등으로 이어진 건축 언어의 다음 과제는 ‘소통’인 것이다. 그는 “종로 탑골공원에 가면 장기, 배드민턴, 정치 토론 등 다양한 영역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주택을 짓거나 도시를 계획할 때 사용자가 주체가 될 수 있는 여백을 만드는 방향으로 건축 언어가 발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주형 기자 handb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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