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타워가 내려다보는 서울 용산구 남산 중턱엔 1978년부터 한국의 관광 역사와 함께해 온 5성급 호텔인 그랜드하얏트서울이 자리하고 있다. 다른 건물들과 고고히 거리를 둔 이 호텔 로비는 빌딩 숲과 어우러진 남산의 산세를 고스란히 한눈에 담을 수 있어 외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동네 주민들도 즐겨 찾는 명소다.
고풍스러운 샹들리에가 달린 이곳 로비에서 무도회장으로 이어질 것만 같은 넓은 계단을 내려가 보자.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1990년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의 밤을 떠올리게 하는, 어둡지만 또렷한 조명들이 빛난다. 팝 밴드가 1990년대 음악을 눈앞에서 재현하는 곳, 여장을 한 남성들이 조명에 반짝이는 시퀸 드레스로 사람들을 홀리는 곳, 그랜드하얏트서울이 지하에 품어둔 바 ‘JJ 마호니스’다. 올해로 37주년을 맞이한 JJ 마호니스에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뉴욕 버전을 꿈꾸며 레트로 음악에 빠져봤다.
▲ ‘JJ 마호니스’에서 열린 춤 공연. 그랜드하얏트서울 제공
1990년대 팝으로 채운 레트로 파티
JJ 마호니스는 한남동에서 서울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겐 친숙한 장소다. 고된 업무로 지친 후배를 데려와 직장 상사가 함께 음악과 진토닉을 홀짝였단 이야기는 이곳에서 흔하다. JJ 마호니스란 이름은 그랜드하얏트서울이 만든 가상의 인물인 ‘JJ 마호니’에서 따왔다. 친근하면서도 멋이 느껴지는 이름을 살려 이 바를 사교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지금은 개편을 거쳐 라이브 공연과 DJ 파티가 공존하는 소셜 클럽으로 재탄생했다.
JJ 마호니스 로비에 들어선 입장객은 왼쪽과 오른쪽, 행복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왼편엔 밤마다 라이브 공연이 열리는 ‘JJ 라이브 룸’이 음악에 목마른 방문객을 기다린다. 이 룸 한가운데에서는 바텐더들이 화려한 손놀림으로 칵테일을 대접한다. 그 뒤편 움푹 들어간 공간엔 밴드가 공연하는 무대가 솟아 있다. 테이블이 무대를 둘러싼 구조여서 어디에서든 공연을 볼 수 있다. 무대와 이 무대를 마주 보는 벽면의 폭이 좁아 음향이 꽉 차는 게 매력이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다가 물의 압력을 느끼듯 음악에 온몸이 눌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JJ 라이브 룸 내부. 그랜드하얏트서울 제공
라이브 룸의 주인공은 JJ 마호니스 전속 밴드인 노바 밴드다. 주로 연주하는 건 1990년대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팝이다. 37주년 기념 파티에서도 이들은 그 시대를 풍미한 미국 보이 밴드 백스트리트보이스의 ‘에브리바디’, 1998 프랑스 월드컵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리키 마틴의 ‘리빈 라 비다 로카’를 노래했다. 드러머와 기타리스트의 연주 실력뿐 아니라 보컬의 가창도 뛰어나 원곡이 그립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관객들은 30여 년 전의 향수를 새롭게 해석한 레트로 무대를 음료와 함께 즐기기만 하면 됐다.
DJ들이 골라준 EDM 즐기다가 테라스로
밴드 연주 사이에 펼쳐진 드래그쇼도 놓쳐선 안 된다. 이 쇼는 성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예술 장르다. 이 공연에서 활약하는 여장 남성은 드래그 퀸으로 불린다.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여성미와 박력을 겸비한 등장인물인 롤라가 드래그 퀸이다. 드래그 퀸은 팝 가수 레이디 가가가 출연한 뮤지컬 영화 ‘스타 이즈 본’ 속 노래를 들려주며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붉은 조명 사이로 드래그 퀸이 건네는 도발적인 손길엔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는 마력이 있었다.
라이브 공연장인 ‘JJ 라이브 룸’. 그랜드하얏트서울 제공
드래그 퀸의 매력에 빠져 룸 반대편에서 또 다른 음악이 기다리고 있단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로비 오른쪽엔 국내외 DJ들이 EDM을 들려주는 ‘JJ 라운지’가 펼쳐져 있다. EDM은 춤을 출 수 있을 정도로 빠른 템포의 전자음악을 뜻한다. 37주년 기념 파티에선 여러 DJ가 시간대를 달리해 저마다 고른 곡으로 사람들을 맞았다.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 자리한 클럽들의 분위기와 비슷했지만 북적거리거나 어수선하진 않았다. 여유로움을 느끼면서 음악에 오롯이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자리였다.
바람을 쐬고 싶다면 바로 옆 테라스로 나가도 된다. 베이스와 드럼 킥의 강렬한 진동이 여전한 이 야외에선 수영장 물결 너머로 보이는 도시 야경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클럽에서도 볼 수 없는 서울만의 풍경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JJ 마호니스는 호텔 로비를 거치지 않고 따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다. JJ 마호니스에서 들떠버린 마음을 달래지 못하겠다면 한남오거리나 이태원으로 가보자. 이색적인 밤문화든, 고즈넉한 도시의 정취든 무언가는 마음에 들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