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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의 아름다움을 담다, 클로드 모네와 인상주의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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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김민지의 미학의 순간들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린 듯 흰머리가 성성한 여인이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수련(Water Lilies)>(1908) 앞에 잠시 멈춰 섭니다. 70대를 훌쩍 넘긴 할머니지만 모처럼 화장을 곱게 하고 그림 앞에서 수줍은 소녀의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명화와 만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장면이 마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자 하는 몸짓으로 다가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수년 전 모네의 작품을 벽면에 투사한 미디어 아트 전시를 보러 갔을 때도 비슷한 광경을 마주했습니다. 지팡이에 의지해 걸음을 떼야 할 만큼 쇠약한 노년의 어머니가 어느덧 중년에 이른 아들과 함께 전시 나들이를 온 것 같았어요. 한 걸음 한 걸음 겨우 모네의 작품 앞에 선 어머니의 모습을 아들은 고이 사진에 담았습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플로티누스는 “어떤 영혼도 그 자체가 아름답지 않으면 미(美)를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미를 소유한 사람만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지각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아름다운 모네의 그림뿐 아니라 예술을 마주한 이들의 눈빛과 표정, 움직임을 바라보며 감성에 젖어 들고는 합니다. 그들 안에서 빛처럼 새어 나오는 아름다움을 발견했기 때문이지요.
    클로드 모네, <수련>, 1908년, 캔버스에 유채, 94.8X89.9cm 우스터미술관
    클로드 모네, <수련>, 1908년, 캔버스에 유채, 94.8X89.9cm 우스터미술관
    환호보다는 조롱을 안고 탄생한 인상주의

    세대를 뛰어넘어 공감을 자아내는 예술가, 모네는 19세기 후반인 1860년대부터 파리에서 시작된 예술 운동인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입니다. 인상파 화가들은 빛이 대상의 색과 형태 등에 미치는 순간적인 효과를 빠르게 포착해 표현하고자 했고 주로 카페, 극장, 가로수 길 등에서 그림을 그렸죠. 이들은 1820년대부터 인기를 끈 사진과 차별화하기 위해서, 카메라처럼 정확하고 실제적인 재현보다는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예술을 추구하고자 했습니다.

    인상주의는 미술사에서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아 가히 대중화에 성공한 사조라 할만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인상주의 전시가 열리는 것만 보아도 말이지요. 그러나 모네의 그림도, 인상주의도 처음부터 환호를 받았던 건 아닙니다. 극적인 드라마의 플롯이 그러하듯 인상주의가 등장할 당시 세찬 반발을 일으키며 비평가들의 빈축을 샀지요.

    때는 19세기 말인 1874년입니다. 당시에는 역사적 사건이나 종교적인 주제를 원근법과 명암법을 고려해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을 좋은 작품이라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예술은 그게 다가 아니라 생각한 진취적인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등의 젊은 예술가들입니다. 이들은 1874년 4월 프랑스 파리에서 첫 번째 인상주의 미술전 <제1회 무명예술가협회전>을 개최하며 총 65점의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그러나 밑그림에 공을 들이지 않고 캔버스에 물감을 찍어 그리는 방식을 추구했기에 성의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고요. 이러한 비판에 가담한 언론의 공세도 상당했습니다.
    [좌측부터]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좌측부터]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해 프랑스 미술 비평가 루이 르루아(Louis Leroy)는 프랑스 신문 『르 샤리바리(Le Charivari)』에 「인상주의자들의 전시회(L’Exposition des impressionnistes)」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글은 단순한 비평이 아니라, 르루아와 가상의 인물인 화가 '조제프 뱅상(Joseph Vincent)'이 함께 전시회를 관람하며 대화를 나누는 풍자극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뱅상은 당시 주류이자 전통 미학이라 할 수 있는 아카데미 고전주의에 심취된 캐릭터입니다. 그는 르루아의 안내를 받으며 전시를 둘러보다가 당황하며 조롱합니다. 예를 들어 르누아르의 <무희> 앞에서 충격을 받고 “색채에 대한 감각은 있으나 무희의 다리가 치맛자락만큼이나 흐느적거린다”며 부족한 데생 실력을 지적하는 식입니다. 이윽고 뱅상은 프랑스 노르망디 항구의 아침 부둣가를 배경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표현한 <인상, 해돋이(Impression, Sunrise)>(1872)를 마주합니다. 그는 모네의 그림이 벽지 디자인보다 못하다고 폄하하며 “이건 단지 인상(Impression)에 불과하다!”고 단언하지요.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Impression, Sunrise)>, 1872년, 캔버스에 유채, 48cm×63cm / 그림출처. Marmottan Museum of Monet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Impression, Sunrise)>, 1872년, 캔버스에 유채, 48cm×63cm / 그림출처. Marmottan Museum of Monet
    글의 맥락을 살펴보면 르루아가 인상주의를 직접 조롱하기보다 뱅상의 입을 빌려 고전주의자들의 경직된 미적 기준을 희화화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 글에서 르루아는 새로운 미학이 전통과 부딪치며 일으키는 충돌을 예리하게 관찰한 저널리스트에 가까워 보입니다. 또한 기사에서 ‘인상’이라는 단어는 단지 조롱만을 내포하지 않습니다. 그러하기에 자의식이 강한 예술가들이 인상이란 단어를 마음에 들어 했을 것이고, 나아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인상파라는 이름을 스스로 채택한 거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네의 수련, 반복과 변주

    지금에 와서 인상주의라 분류되는 화가는 다양하나, 그중에서도 모네의 인상주의는 특별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네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의 인상을 꿈꾸는 듯한 색채로 화폭에 담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대기와 공기, 빛과 색채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묘사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심리와 감정, 내면의 인상을 감성적으로 재현합니다. 매일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은 언뜻 보면 평범하고 비슷해 보이지만 그날의 햇살과 바람, 그리고 나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특히 모네는 건초더미, 성당, 수련 등 같은 대상을 시간의 차이를 두고 반복해 그리며 동일한 대상을 변주하며 표현합니다.
    클로드 모네, <건초더미(Meules)>, 1890년, 캔버스에 유채, 72.7X92.6cm / 그림출처. © Sotheby's
    클로드 모네, <건초더미(Meules)>, 1890년, 캔버스에 유채, 72.7X92.6cm / 그림출처. © Sotheby's
    모네는 1883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마을 지베르니(Giverny)에 터를 잡고 40여 년간 정원을 가꾸며 살아갔는데, 1889년 파리박람회에서 수련이 발하는 은은한 향기와 형상에 매료된 이래로 자신의 집 연못을 수련으로 뒤덮어버리고 205여 점에 달하는 수많은 수련 연작을 그립니다. 수련은 수면 아래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수면 위로 길게 뻗어 꽃을 피우는 수생식물(aquatic plant)입니다. 또한 수련은 날씨, 습도, 시간대에 따라 매 순간 다른 빛깔과 형태를 드러내며 변화무쌍한 매력을 자랑하지요. 한편으로는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예민한 기질의 사람을 연상하게도 합니다. 모네에게 수련은 자연이 매 순간 빚어내는 찰나의 회화로 비춰졌을 것 같아요.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The Water-Lily Pond)>, 1899년, 캔버스에 유채, 88.3x93.1cm / 그림출처. © The National Gallery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The Water-Lily Pond)>, 1899년, 캔버스에 유채, 88.3x93.1cm / 그림출처. © The National Gallery
    순간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예술

    모네는 백내장을 심하게 앓던 시기인 70대에도 수련을 그렸습니다. 노년에 화폭에 담은 수련은 마치 시련의 한복판에서 아름다움의 자취를 찾아내려는 듯한 마음으로 보입니다. 1908년부터 시력을 잃어가고, 3년 뒤인 1911년 아내 알리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불행의 파도는 몰아서 닥친다는 속설처럼 상실의 아픔을 겪은 3년 뒤인 1914년에는 소중한 첫째 아들을 잃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네는 매 순간 차오르는 슬픔을 이겨내며, 마치 마음을 수련하듯 수많은 수련을 그려냈습니다. 인생의 고통이 극심할 때, 예술이 도피처가 되어 준 경험이 여러분에게도 있을지 모릅니다. 아마도 모네는 수많은 수련을 그리며 스스로 위로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야속하리만치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 버린 세월을 돌아보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지 못하는 슬픔을 달래면서 말이지요.

    모네의 그림을 바라보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마주한 생의 아름다움을 간절히 붙잡아 영원히 화폭에 남기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기에 끝내 좌절하게 될 시도일지라도 말이지요. 모네의 붓끝에 담긴 시간의 인상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지나가는 순간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영원이 될 수 있다고 말이지요.

    김민지 경기대 초빙교수

    *참고 문헌
    Exhibition of the Impressionists by Louis Le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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