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 커피가 든 호리병 주전자를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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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조원진의 공간의 감각
에티오피아 커피 기행
에티오피아 커피 기행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이고 13시간의 비행을 마친 짐들이 순서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 순간 어디선가 향나무를 태우는 듯한 향이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간다. 연기를 쫓아 간이 칸막이로 둘러싸인 곳에 가보니, 젊은 남녀가 작은 시니(Sinni, Sini) 잔에 커피를 따라 마시고 있다. 화덕을 대신한 전기 스토브 위에 호리병 모양의 커피 주전자 저버나(Jebena)가 김을 내뿜고 있고, 유향과 몰약 등을 뭉쳐서 만든 향에서 은은하게 연기가 피어오른다. 에티오피아를 주제로 한 대부분의 서적에는 무겁고 진중한, 신비로운 커피 세레머니의 장면을 서술한다.
하지만 아디스아바바에서는 수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세레머니를 축약한 듯한 생활의 커피가 있었다. 공항에서 목격한 장면은 호텔 로비에서도, 길거리 어느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도시의 번잡한 생활에 맞춰 변화한 그 의식을 마주하니, 어떤 커피 문화든 한달음에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한달음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세레머니뿐만이 아니다. 아직도 식물학자와 유전학자, 고고학자들은 세계 커피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아라비카종 커피의 등장과 본격적인 음용 시점을 특정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연구는 아라비카 종이 약 1만 년 전에서 66만여 년 전 동아프리카 열곡대를 따라 갈라진 고원, 에티오피아를 둘러싼 남수단 혹은 우간다, 케냐 등의 국경 쪽 숲 어느 곳에서 탄생했다고 보고 있다(Scalabrin et al 2020).
이 시기에 로부스타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코페아 카네포라(Coffea canephora)와 또 다른 커피 종인 코페아 유게니오이데스(Coffea Eugenioides)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교배해 아라비카종이 탄생했다. 단 한 번의 우연한 교배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지만, 이 씨앗은 사향 고양이와 같이 커피 열매를 좋아하는 동물들에 의해 에티오피아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매년 조금씩 벌어지는 열곡대를 따라 펼쳐진 에피오피아의 고원은 풍부한 양분과 우수한 배수력을 갖춘 토양인 니티솔(Nitisols), 비옥한 화산재 토양인 안디솔(Andisols) 등 기름진 토양으로 덮여있다. 덕분에 커피를 비롯한 모든 식물이 풍성하게 자랄 수 있었고, 사람들은 그곳에 정착해 자급자족하며 윤택한 삶을 꾸릴 수 있었다. 커피나무는 그들이 즐겨 먹거나 마시는 다양한 식생 중 하나로 존재해 왔고, 어떤 이유에서든 그것이 각성을 일으킨다는 사실만이 알려졌다. 누군가는 이 커피나무의 잎을 적후추와 생강 등의 향신료와 함께 끓여먹었고, 누군가는 그 열매를 볶고 으깨 산양유 등의 동물성 지방과 섞어 먼 길을 떠날 때 열량을 충당할 요량으로 씹어먹곤 했다. 그러나 커피가 등장해 에티오피아 숲을 붉게 물들이던 그 시절에, 수도승이나 수도원이 존재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하여 커피 체리를 먹은 염소가 춤을 추고 목동이 그 씨앗을 수도승에 전했다는 1671년 신학 교수 안토니오 파우스토 나이로니(Antonio Fausto Naironi)의 기록은 그 어떤 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라틴어로 성문화되기 전까지 커피의 탄생 설화는 각 지역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존재했을 뿐이다. 누군가는 염소가 커피 열매를 먹었다고도 했고, 또 누구는 여신의 눈물로 씨앗이 뿌려졌다고도 한다. 모두 오랫동안 입과 입을 통해서 전해진 이야기다. 그러니 그것이 얼마나 오래된 이야기인지, 사실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지 판단할 수 없다.
기록으로의 커피는 1600년경 예멘으로 넘어와서야 접할 수 있다. 혹자는 기록의 부재로 예멘에서 커피가 탄생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식물학자와 고고학자는 특정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든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으로 커피가 전파되었으리라고 확신한다. 가령 윌리엄 H. 우커스(William H. Ukers)는 ‘올 어바웃 커피(All About Coffee)’에서 기원후 525년 악숨 왕국(Aksumite Civilization)의 아비시니아인들이 예멘에 도달했고, 이때 커피가 전파됐으리라 추측한다. 식물학자 메스핀 타데세(Mesfin Tadesse)는 ‘에티오피아, 아라비카 커피의 고향(Ethiopia, Home of Arabica Coffee)’에서 그의 말을 인용하며 악숨 왕국에 속했던 제일라(Zeila)가 당시 에티오피아와 사바(Saba, 현재의 예멘 지역)를 잇는 무역항이었다고 덧붙인다. 또, 그는 이어진 자그웨(Zagwe), 솔로몬(Solomon) 시대에도 아랍은 물론 심지어는 아시아와 교류 했다는 증거도 발견됐다고 말한다. 이 중 직접적으로 커피를 언급한 문헌이 없어 시기를 특정하는 일은 아직도 숙제로 남아있지만, 문자로 증명하지 못한 수많은 역사의 지표들은 에티오피아가 커피가 기원한 곳이라고 가리키고 있다.
그 기원의 관문인 아디스아바바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도시다. 이 도시의 거리에는 품삯을 받고 신발을 닦으려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신발을 깨끗이 닦는 일이 마치 외출의 기본이라고 여기는 듯, 사람들은 여기저기 둘러앉아 신발을 닦고 있다. 그 신발처럼 번쩍이고 빛나는 세계 각국 브랜드의 자동차들은 도로에서 경적을 울리고 있다. 각각의 차들은 조금이라도 더 자리를 차지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듯 서로 뒤엉켜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발길이 닿는 어디에서나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고 있으니 도시는 공사 소음과 매연으로 가득 차 있다. 커피를 보기 위해서는 이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왕복 2차선 고속도로를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 대부분의 커피 가공소와 농장은 고속도로에서도 한참 벗어난 비포장도로 끝에 있다. 고속도로를 달린 만큼의 절반도 안 되는 거리를 오래된 도요타 랜드크루저를 타고 반나절에 걸쳐 쿵쾅쿵쾅 올라가면, 나무로 지어진 커피 건조대 ‘아프리칸 베드’와 그 위를 붉게 물들인 커피 체리를 마주할 수 있다. 커피 가공소 주변으로 펼쳐진 농장의 풍경은 장관이다. 하늘 위로 높이 솟아오른 몇 개의 커다란 고목 아래로 유칼립투스와 바나나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커피나무는 그 숲의 사이사이 솟아 붉은 열매를 맺거나 하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새들의 소리는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이 정적을 깨우는데, 새들은 각기 다른 악기를 들고 있는 단원처럼 결코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이처럼 최소한의 관리만이 이뤄지는 숲속에서 재배되는 커피를 ‘세미 포레스트(반삼림) 커피’로 규정한다.
이보다 조금 더 관리된 경작지에서 다른 작물과 함께 재배되는 것을 ‘가든 커피’로 보는데, 두 경작 형태를 구분하는 경계가 모호해 전문가들도 한눈에 구분해 내기는 어렵다. 에티오피아 커피 재배의 약 80% 이상을 차지하는 이 형태를 제외하면, 사람의 잘 닿지 않는 야생 숲의 ‘포레스트(삼림) 커피’와 보통의 커피 재배 국가에서 볼 수 있는 대규모 ‘플랜테이션’ 형태가 아주 일부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농부들은 자신들에 주어진 숲에서 때맞춰 붉게 익은 커피 열매를 수확해 지역 가공소에 판매한다. 가공소에서는 반경 5km 내에 있는 커피들을 한데 모아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해 수출 업체로 넘긴다. 오래전부터 그 땅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대대로 기르던 커피나무에서 재배한 열매는 품종조차 확인할 수 없다. 관리가 되어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나무는 사람의 키보다 높고, 수령 또한 수십 년이 넘어간다.
대체로 중소농이 정갈하게 줄지어 커피나무를 심는 형식의 플랜테이션 재배를 하는 중남미에서는 품종부터 농부 이름까지 세세한 정보를 파악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가 재배된 대략의 지역과 가공소에서 제공한 가공 정보 외에는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에티오피아의 커피는 다른 나라의 커피와는 확연하게 구분될 만큼 풍성한 꽃향기와 과실의 맛을 품고 있다.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 천 년을 이어온 숲에는 다양한 이유로 심어진 수천 종의 커피나무가 있다. 이곳에서 농부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방식에 따라 나무를 관리하고 열매를 딴다. 그루터기와 가지치기, 비료 뿌리기와 관개는 에티오피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다. 대부분의 커피 농장이 인간의 통제하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에티오피아의 커피 맛이 남다른 이유를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에티오피아에서는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커피 품종을 명확하게 기록하기 시작한 것인데, 3~5자리 숫자로 분류하는 이 방식은 종의 다양성을 확인하고 보전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커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구분된 품종의 종자를 키워 일선 농부들에게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농부들의 경제적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해 2008년에 설립된 ECX(Ethiopia Commodity Exchange)가 코로나를 겪으면서 초창기와 달리 품질 관리와 가격 하한에만 관여하며 최소한의 제한을 둔 것도 큰 변화였다.
덕분에 각 가공소에서는 생산 효율을 높이거나 새로운 가공 방식을 도입해 부가가치를 더하려고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중남미에서나 볼 수 있었던 콜롬비아산 에코펄퍼 페나고스(Penagos)의 도입은 가공과정에 효율성을 높인 대표 사례다. 그간에는 전통적인 디스크 펄퍼로 과육을 벗겨내고 발효를 통해 점액질을 제거했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에코펄퍼로 과육과 점액질을 한 번에 벗겨내는 가공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이외에도 허니, 슬로우드라이, 무산소 발효, 각종 과일과 첨가 물질을 넣은 인퓨즈드 가공을 거친 커피도 각 가공소의 창고를 채우고 있다. 이와 함께 가공소 밖에서는 NGO(비정부 기구)가 현대적인 농법을 전파해 농부들의 수익 개선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테크노서브(TechnoServe)와 커피 수출업체 펠콘 커피(Falcon Cofffees)가 예가체프 지역에서 펼치고 있는 스텀핑 프로젝트(Stumping Project)가 있다.
말 그대로 오래된 수령의 커피나무를 바닥에서 30cm만 남겨둔 채 그루터기 하는 것이다. 이는 보통의 현대식 농장에서 새로운 가지를 키워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에티오피아의 커피 농부들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루터기로 인해 일시적으로 줄어든 수익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이를 독려하는 스텀핑 프로젝트의 결과로 일선 커피 농가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정부와 NGO, 커피 업체들이 다방면으로 노력해 온 결과, 에티오피아의 커피 생산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에티오피아의 전체적인 경제구조에서 커피 수출 비중은 지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커피 재배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을 마주하기도 한다. 가령 서부지역의 손꼽히는 커피 산지인 하라 지역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는 커피 재배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보장하는 향정신성(마약류) 성분이 포함된 카트를 재배하는 농민이 늘고 있다. 여기에 오로모 자유군(Oromo Liberation Army) 등 반군으로 인해 하라 지역의 커피를 구하는 일은 점점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무분별한 도시 개발은 다양성을 기반으로 병충해를 이겨낸 건강한 에티오피아의 커피 숲을 위협하고 있다. 카파와 게샤 지역 등 야생종을 품고 있는 야생 숲은 유전적 다양성이 빈약한 아라비카 커피의 대안이 될 연구 자원이기도 하거니와, 게이샤 등 새로운 품종 개발로 커피 산업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품고 있는 곳이다.
영국 기반의 자선단체 팜 아프리카(Farm Africa) 가 1990년대 도입한 PFM(Participatory Forest Management)프로그램과, 독일 기반의 NGO 나부(NABU)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나부 프로젝트(NABU Project)는 에티오피아의 숲을 지키기 위한 전 지구적인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또한 농민들의 자유권 침해와 맞서게 되면서 일부 농가와 마찰을 빚고 있기도 하다.
커피는 여전히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농작물이지만, 이에 대한 연구 개발과 투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수익성 악화와 경제적인 어려움을 마주한 커피 산지는 각각의 방식으로 이 위기를 돌파하려 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마주한 일련의 변화들은 커피와 생계가 직결된 이들의 부단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변화를 우리는 어떤 태도로 이 변화를 마주해야 하는가? 농장을 떠나 아디스아바바로 향하는 길에서, 공항에서 마주한 커피 세레머니의 장면을 떠올린다. 일주일 남짓의 짧은 여정을 보내며 몇 권의 책과 논문, 기사 글로 쌓은 얄팍한 지식이 모두 무너지고 있었다. 커피가 곧 삶이 되는 에티오피아에서, 그곳의 삶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이 오만이라고 느껴졌다. 그리하여 다시 수천 년의 역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알 수 없지만 알아야 하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으로, 오만을 물리치고 커피를 둘러싼 삶에 대한 이해를 키우기 위해서. 커피를 둘러싼 모종의 갈등에 화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조원진 칼럼니스트
한달음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세레머니뿐만이 아니다. 아직도 식물학자와 유전학자, 고고학자들은 세계 커피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아라비카종 커피의 등장과 본격적인 음용 시점을 특정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연구는 아라비카 종이 약 1만 년 전에서 66만여 년 전 동아프리카 열곡대를 따라 갈라진 고원, 에티오피아를 둘러싼 남수단 혹은 우간다, 케냐 등의 국경 쪽 숲 어느 곳에서 탄생했다고 보고 있다(Scalabrin et al 2020).
이 시기에 로부스타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코페아 카네포라(Coffea canephora)와 또 다른 커피 종인 코페아 유게니오이데스(Coffea Eugenioides)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교배해 아라비카종이 탄생했다. 단 한 번의 우연한 교배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지만, 이 씨앗은 사향 고양이와 같이 커피 열매를 좋아하는 동물들에 의해 에티오피아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매년 조금씩 벌어지는 열곡대를 따라 펼쳐진 에피오피아의 고원은 풍부한 양분과 우수한 배수력을 갖춘 토양인 니티솔(Nitisols), 비옥한 화산재 토양인 안디솔(Andisols) 등 기름진 토양으로 덮여있다. 덕분에 커피를 비롯한 모든 식물이 풍성하게 자랄 수 있었고, 사람들은 그곳에 정착해 자급자족하며 윤택한 삶을 꾸릴 수 있었다. 커피나무는 그들이 즐겨 먹거나 마시는 다양한 식생 중 하나로 존재해 왔고, 어떤 이유에서든 그것이 각성을 일으킨다는 사실만이 알려졌다. 누군가는 이 커피나무의 잎을 적후추와 생강 등의 향신료와 함께 끓여먹었고, 누군가는 그 열매를 볶고 으깨 산양유 등의 동물성 지방과 섞어 먼 길을 떠날 때 열량을 충당할 요량으로 씹어먹곤 했다. 그러나 커피가 등장해 에티오피아 숲을 붉게 물들이던 그 시절에, 수도승이나 수도원이 존재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하여 커피 체리를 먹은 염소가 춤을 추고 목동이 그 씨앗을 수도승에 전했다는 1671년 신학 교수 안토니오 파우스토 나이로니(Antonio Fausto Naironi)의 기록은 그 어떤 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라틴어로 성문화되기 전까지 커피의 탄생 설화는 각 지역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존재했을 뿐이다. 누군가는 염소가 커피 열매를 먹었다고도 했고, 또 누구는 여신의 눈물로 씨앗이 뿌려졌다고도 한다. 모두 오랫동안 입과 입을 통해서 전해진 이야기다. 그러니 그것이 얼마나 오래된 이야기인지, 사실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지 판단할 수 없다.
기록으로의 커피는 1600년경 예멘으로 넘어와서야 접할 수 있다. 혹자는 기록의 부재로 예멘에서 커피가 탄생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식물학자와 고고학자는 특정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든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으로 커피가 전파되었으리라고 확신한다. 가령 윌리엄 H. 우커스(William H. Ukers)는 ‘올 어바웃 커피(All About Coffee)’에서 기원후 525년 악숨 왕국(Aksumite Civilization)의 아비시니아인들이 예멘에 도달했고, 이때 커피가 전파됐으리라 추측한다. 식물학자 메스핀 타데세(Mesfin Tadesse)는 ‘에티오피아, 아라비카 커피의 고향(Ethiopia, Home of Arabica Coffee)’에서 그의 말을 인용하며 악숨 왕국에 속했던 제일라(Zeila)가 당시 에티오피아와 사바(Saba, 현재의 예멘 지역)를 잇는 무역항이었다고 덧붙인다. 또, 그는 이어진 자그웨(Zagwe), 솔로몬(Solomon) 시대에도 아랍은 물론 심지어는 아시아와 교류 했다는 증거도 발견됐다고 말한다. 이 중 직접적으로 커피를 언급한 문헌이 없어 시기를 특정하는 일은 아직도 숙제로 남아있지만, 문자로 증명하지 못한 수많은 역사의 지표들은 에티오피아가 커피가 기원한 곳이라고 가리키고 있다.
그 기원의 관문인 아디스아바바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도시다. 이 도시의 거리에는 품삯을 받고 신발을 닦으려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신발을 깨끗이 닦는 일이 마치 외출의 기본이라고 여기는 듯, 사람들은 여기저기 둘러앉아 신발을 닦고 있다. 그 신발처럼 번쩍이고 빛나는 세계 각국 브랜드의 자동차들은 도로에서 경적을 울리고 있다. 각각의 차들은 조금이라도 더 자리를 차지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듯 서로 뒤엉켜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발길이 닿는 어디에서나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고 있으니 도시는 공사 소음과 매연으로 가득 차 있다. 커피를 보기 위해서는 이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왕복 2차선 고속도로를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 대부분의 커피 가공소와 농장은 고속도로에서도 한참 벗어난 비포장도로 끝에 있다. 고속도로를 달린 만큼의 절반도 안 되는 거리를 오래된 도요타 랜드크루저를 타고 반나절에 걸쳐 쿵쾅쿵쾅 올라가면, 나무로 지어진 커피 건조대 ‘아프리칸 베드’와 그 위를 붉게 물들인 커피 체리를 마주할 수 있다. 커피 가공소 주변으로 펼쳐진 농장의 풍경은 장관이다. 하늘 위로 높이 솟아오른 몇 개의 커다란 고목 아래로 유칼립투스와 바나나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커피나무는 그 숲의 사이사이 솟아 붉은 열매를 맺거나 하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새들의 소리는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이 정적을 깨우는데, 새들은 각기 다른 악기를 들고 있는 단원처럼 결코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이처럼 최소한의 관리만이 이뤄지는 숲속에서 재배되는 커피를 ‘세미 포레스트(반삼림) 커피’로 규정한다.
이보다 조금 더 관리된 경작지에서 다른 작물과 함께 재배되는 것을 ‘가든 커피’로 보는데, 두 경작 형태를 구분하는 경계가 모호해 전문가들도 한눈에 구분해 내기는 어렵다. 에티오피아 커피 재배의 약 80% 이상을 차지하는 이 형태를 제외하면, 사람의 잘 닿지 않는 야생 숲의 ‘포레스트(삼림) 커피’와 보통의 커피 재배 국가에서 볼 수 있는 대규모 ‘플랜테이션’ 형태가 아주 일부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농부들은 자신들에 주어진 숲에서 때맞춰 붉게 익은 커피 열매를 수확해 지역 가공소에 판매한다. 가공소에서는 반경 5km 내에 있는 커피들을 한데 모아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해 수출 업체로 넘긴다. 오래전부터 그 땅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대대로 기르던 커피나무에서 재배한 열매는 품종조차 확인할 수 없다. 관리가 되어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나무는 사람의 키보다 높고, 수령 또한 수십 년이 넘어간다.
대체로 중소농이 정갈하게 줄지어 커피나무를 심는 형식의 플랜테이션 재배를 하는 중남미에서는 품종부터 농부 이름까지 세세한 정보를 파악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가 재배된 대략의 지역과 가공소에서 제공한 가공 정보 외에는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에티오피아의 커피는 다른 나라의 커피와는 확연하게 구분될 만큼 풍성한 꽃향기와 과실의 맛을 품고 있다.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 천 년을 이어온 숲에는 다양한 이유로 심어진 수천 종의 커피나무가 있다. 이곳에서 농부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방식에 따라 나무를 관리하고 열매를 딴다. 그루터기와 가지치기, 비료 뿌리기와 관개는 에티오피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다. 대부분의 커피 농장이 인간의 통제하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에티오피아의 커피 맛이 남다른 이유를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에티오피아에서는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커피 품종을 명확하게 기록하기 시작한 것인데, 3~5자리 숫자로 분류하는 이 방식은 종의 다양성을 확인하고 보전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커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구분된 품종의 종자를 키워 일선 농부들에게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농부들의 경제적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해 2008년에 설립된 ECX(Ethiopia Commodity Exchange)가 코로나를 겪으면서 초창기와 달리 품질 관리와 가격 하한에만 관여하며 최소한의 제한을 둔 것도 큰 변화였다.
덕분에 각 가공소에서는 생산 효율을 높이거나 새로운 가공 방식을 도입해 부가가치를 더하려고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중남미에서나 볼 수 있었던 콜롬비아산 에코펄퍼 페나고스(Penagos)의 도입은 가공과정에 효율성을 높인 대표 사례다. 그간에는 전통적인 디스크 펄퍼로 과육을 벗겨내고 발효를 통해 점액질을 제거했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에코펄퍼로 과육과 점액질을 한 번에 벗겨내는 가공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이외에도 허니, 슬로우드라이, 무산소 발효, 각종 과일과 첨가 물질을 넣은 인퓨즈드 가공을 거친 커피도 각 가공소의 창고를 채우고 있다. 이와 함께 가공소 밖에서는 NGO(비정부 기구)가 현대적인 농법을 전파해 농부들의 수익 개선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테크노서브(TechnoServe)와 커피 수출업체 펠콘 커피(Falcon Cofffees)가 예가체프 지역에서 펼치고 있는 스텀핑 프로젝트(Stumping Project)가 있다.
말 그대로 오래된 수령의 커피나무를 바닥에서 30cm만 남겨둔 채 그루터기 하는 것이다. 이는 보통의 현대식 농장에서 새로운 가지를 키워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에티오피아의 커피 농부들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루터기로 인해 일시적으로 줄어든 수익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이를 독려하는 스텀핑 프로젝트의 결과로 일선 커피 농가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정부와 NGO, 커피 업체들이 다방면으로 노력해 온 결과, 에티오피아의 커피 생산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에티오피아의 전체적인 경제구조에서 커피 수출 비중은 지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커피 재배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을 마주하기도 한다. 가령 서부지역의 손꼽히는 커피 산지인 하라 지역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는 커피 재배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보장하는 향정신성(마약류) 성분이 포함된 카트를 재배하는 농민이 늘고 있다. 여기에 오로모 자유군(Oromo Liberation Army) 등 반군으로 인해 하라 지역의 커피를 구하는 일은 점점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무분별한 도시 개발은 다양성을 기반으로 병충해를 이겨낸 건강한 에티오피아의 커피 숲을 위협하고 있다. 카파와 게샤 지역 등 야생종을 품고 있는 야생 숲은 유전적 다양성이 빈약한 아라비카 커피의 대안이 될 연구 자원이기도 하거니와, 게이샤 등 새로운 품종 개발로 커피 산업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품고 있는 곳이다.
영국 기반의 자선단체 팜 아프리카(Farm Africa) 가 1990년대 도입한 PFM(Participatory Forest Management)프로그램과, 독일 기반의 NGO 나부(NABU)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인 나부 프로젝트(NABU Project)는 에티오피아의 숲을 지키기 위한 전 지구적인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또한 농민들의 자유권 침해와 맞서게 되면서 일부 농가와 마찰을 빚고 있기도 하다.
커피는 여전히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농작물이지만, 이에 대한 연구 개발과 투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수익성 악화와 경제적인 어려움을 마주한 커피 산지는 각각의 방식으로 이 위기를 돌파하려 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마주한 일련의 변화들은 커피와 생계가 직결된 이들의 부단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변화를 우리는 어떤 태도로 이 변화를 마주해야 하는가? 농장을 떠나 아디스아바바로 향하는 길에서, 공항에서 마주한 커피 세레머니의 장면을 떠올린다. 일주일 남짓의 짧은 여정을 보내며 몇 권의 책과 논문, 기사 글로 쌓은 얄팍한 지식이 모두 무너지고 있었다. 커피가 곧 삶이 되는 에티오피아에서, 그곳의 삶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이 오만이라고 느껴졌다. 그리하여 다시 수천 년의 역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알 수 없지만 알아야 하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으로, 오만을 물리치고 커피를 둘러싼 삶에 대한 이해를 키우기 위해서. 커피를 둘러싼 모종의 갈등에 화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 조원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