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쥔 주먹과 활처럼 휘어진 인체… 찰스 벨은 무엇을 그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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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범조·오경은의 그림으로 보는 의학코드
찰스 벨 경의 <총상 후 파상풍에 걸린 환자>
찰스 벨 경의 <총상 후 파상풍에 걸린 환자>
독자분들께선 이 그림이 무슨 장면을 묘사한 것이라 인지하실지 궁금하다. 한때 요가를 열심히 배웠던 필자는 인터넷에서 밈으로 떠도는 이 이미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 머리와 발로 몸을 지탱하는 요가 자세(Sirshapada Bhumi Sparshasana)를 떠올렸었다 [도판 2]. 그렇지만 인물이 옷을 입지 않은데다 침대 매트리스 위에서 이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점과 단단하게 굳은 어깨와 접은 팔, 오므린 발가락과 발 아치, 꽉 쥔 주먹, 희번덕이는 눈과 이를 어찌나 꽉 물었는지 턱 주변 근육과 힘줄이 튀어나온 점 등에서 요가 수련의 모습이라 할 수는 없겠구나 깨닫게 된다. 대체 어떤 사람이 침대에 누울 때 등을 매트리스에서 한껏 띄우고 몸에 힘을 주는 이런 일반적이지 않은 자세를 취할까?
이쯤에서 눈치채다시피 이는 특정 질병의 증상이다. 그리고 그 질병은 우리가 일상에서도 흔히 언급하는 파상풍이다. 녹슨 못 등에 찔렸을 때 말로는 '파상풍 걸리는 거 아니야?' 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방치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파상풍은 가벼운 상처로 보이던 것에서 괴사가 일어나거나 고통스러운 근육 경련이 일어나다 사망까지도 갈 수 있는 무서운 질병이다.
파상풍균(Clostridium tetani)은 토양과 잎사귀 등에 존재하다가 우리가 부주의에 의해 가시에 긁히거나 발에 난 물집 등을 통해 파상풍균이 몸에 침투하게 되면 체내에서 균이 번식하며 독소를 만들어내는데, 이 독소가 중추 신경계에 작용하여 근육에 작용하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의 방출을 막음으로써 근육에 경련을 일으킨다. 이에 따라 몸의 근육이 반응하여 등의 굽힘근이 굽은 채 굳고 팔은 가슴 쪽에서 접히며 주먹을 꽉 쥐게 된다.
이를 의학용어로는 활울림긴장(Opisthotonus)이라 부르는데, 그 근육 수축의 힘이 매우 강해 척추를 부러뜨릴 수 있을 정도이다 [도판 3]. 얼굴 근육 또한 수축하여 의도치 않은 경련미소(risus sardonicus)가 나타나는 것 또한 파상풍의 증세이다 [도판 4]. 더 나아가 호흡 및 후두 근육에 경련을 일으켜 기도가 막혀 사망할 가능성도 있다. 파상풍이 일으키는 증상을 이렇게 상세하고 정확히 그림으로 재현해낸 작가는 스코틀랜드 출신인 찰스 벨 경(Sir Charles Bell. 1774-1842)이다. 그는 다수의 해부학 서적의 일러스트를 그린 성공한 삽화가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그는 에든버러 대학, 런던 미들섹스 대학 등 여러 기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진료를 본 외과의사이기도 하다.
그는 특히 신경해부학의 학문적 연구를 임상 실습에 결합하는 능력으로 의학계에 족적을 남긴 사람이다. 우리가 흔히 구안와사라 부르는 안면신경마비 증세를 벨마비(Bell’s Palsy)라 부르는데 바로 이 찰스 벨 경이 1821년 최초로 안면신경이 근육 활동 신경이며 이에 이상이 생기면 안면마비가 일어남을 발견하여 붙은 이름이다. 그는 성장기부터 예술적 재능을 보여 어머니가 당시 에딘버러 최고의 화가인 데이빗 앨런(David Allen)에게 사사받게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재능을 뒤로 하고 학업에 정진하여 에든버러 외과대학에 진학하고 졸업 후에는 에든버러 왕립진료소에서 해부학을 가르치고 수술을 집도하는 등 외과의사로서의 재능을 개발했다. 다만 외과의로서의 그의 커리어가 평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에든버러 대학에서 재임용에 실패해 고향땅을 떠나 1804년 런던으로 이주했으며 레스터 스트리트에 정착해서는 소속 병원이나 학교가 없어 자기 집에서 의학도들과 예술가들에게 해부학 수업을 했던 시절도 있다. 학교로 돌아가게 된 것도 부인이 가져온 지참금으로 윈드밀 스트리트 해부학교의 지분을 매입하여 임용권을 따낸 덕이었다고 한다.
또한 1815년 워털루 전쟁에서 발생한 병자와 부상자들을 치료하던 시기 사흘간 밤낮없이 연이어 수술을 진행했는데, 그의 외과보조의였던 로버트 녹스 박사는 벨의 능력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벨이 진행한 12건의 절단 수술에서 생존자가 한 명뿐이었던 것이 주요 원인인데, 다른 한편 당시 환자들이 몹시 위중한 상태에서 수술을 받은 것을 감안하면 오로지 벨의 무능에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벨의 외과 집도의로서의 능력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언정, 연구자, 그리고 후학 양성을 위한 교육자로서의 그의 업적은 눈부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업적은 그가 어려서 보여준 예술적 능력을 의학을 위해 활용하며 개발되었다. 그는 같은 학교 출신의 또 다른 외과의인 형 존을 도와 '인체 해부학'이라는 4권짜리 책의 내용과 일러스트를 맡아 그의 타고난 예술적 재능과 습득된 의학적 지식을 고루 활용한 교재를 출간하게 된다. 특히 이 책의 3권과 4권은 찰스 벨이 홀로 쓰고 삽화를 그렸으며, 자신의 임상 경험과 예술적 감각을 활용해 흥미로운 의학 사례를 밀랍으로 모델링하여 '해부학 박물관'이라 부른 방대한 컬렉션을 만들기도 했다. (그중 일부는 현재도 에딘버러 외과대학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참조 보기]) 벨은 1809년 1월 스페인 북부에서 영국군이 열세 속에서 프랑스군과 치른 코루냐(Corunna) 전투에 의학지원을 자원했다. 추위 속에 프랑스군에 쫓기며 퇴각한 영국군이 해안에서 기다리던 수송선이 제때 오지 않아 우왕좌왕하던 때에 프랑스군이 다시금 공격을 감행하여 수천 명의 부상자가 났다고 하는데, 이때 벨은 특히 장총 총알 상처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어 치료과정에서 그의 전문적 관찰 결과를 그림으로 남겼고, 그중 하나가 바로 <총상 후 파상풍에 걸린 환자>(1809)이다. 총상 환자에 대한 관찰은 그림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학문적 성취로까지 이어져 1814년 “총상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여 총상 관련 합병증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파상풍균에 오염된 토양, 금속 등이 상처를 통해 몸 안에 침투하면 걸리는 병이라는 점에서 파상풍은 우리 일상에 늘 도사리고 있다 할 수 있다. 물론 못에 찔리거나 들짐승이 할퀴었다고 해서 무조건 파상풍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한 연구에 따르면 큰 상처보다 작은 상처를 방치해 걸리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 제때 적절한 치료를 가하지 않을 경우 성인 사망률이 15~60%까지도 나타난다.
상처가 나서 파상풍이 염려되면 우선 상처 부위를 깨끗이 세척, 소독하고 항생제로 독소 생성과 세균 번식을 막아야 한다. 또한 파상풍 인간면역글로불린을 투여하여 체내에 생성되기 시작한 독소를 중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파상풍균에 감염되었다가 나았다고 해서 면역이 생기는 것이 아니므로 10년 주기로 파상풍 백신을 접종받을 것을 권유하고 있다.
파상풍의 발생률과 사망률은 지역사회의 예방접종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요새 누가 파상풍에 걸려, 하고 간과하기 쉽지만 여전히 세계적으로 연 50만에서 100만건의 감염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대개 예방접종을 완료하지 않은 사람에게 발생하며, 개발도상국에서는 주로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산모에게서 태어난 신생아에게서 발생한다. 예방접종으로 예방 가능한 질환 중 신생아 파상풍은 전 세계 어린이 사망 원인의 2위를 차지하며, 아프리카 지역에서만 매년 약 164,000명의 발생과 110,000명 사망이 보고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DTaP (영유아 대상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 혼합백신)의 접종률이 90%를 웃돌면서 신생아 파상풍은 거의 발생하고 있지 않으며, 1990년대 이후 전 연령의 파상풍이 연간 20건 내외로 보고될 정도로 드물게 발생하고 있다.
성인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첫 아이 출산 앞둔 부부 그리고, 첫 손주를 보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백일해를 예방하려고 TDap (DTap 이후 만 10세 이상~성인용 추가접종제)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파상풍 예방에 효과를 본다. 그러나 파상풍 백신이나 부스터를 지난 10년간 맞지 않았다가 파상풍에 감염된 성인의 경우 그 수는 매년 20~30명 정도로 소수이지만, 이 중 50%가 호흡 부전으로 사망할 정도로 위중한 병이 될 수 있다.
찰스 벨 경의 <총상 후 파상풍에 걸린 환자>는 질병 극복을 위한 인류의 의학적 진보의 상징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가 예술을 통해 대중과 후학에게 알리고자 한 메시지는 안타깝게도 오늘날까지 간과되어 부주의로 인한 감염은 반복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번 글을 통해 파상풍 백신 접종의 필요성을 알림으로써 예술을 통해 의학적 지식을 공유하고자 한 벨의 의지를 조금이나마 이어 받아보고자 한다.
오범조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부교수
오경은 상명대학교 계당교양교육원 미술사학 조교수
파상풍균(Clostridium tetani)은 토양과 잎사귀 등에 존재하다가 우리가 부주의에 의해 가시에 긁히거나 발에 난 물집 등을 통해 파상풍균이 몸에 침투하게 되면 체내에서 균이 번식하며 독소를 만들어내는데, 이 독소가 중추 신경계에 작용하여 근육에 작용하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의 방출을 막음으로써 근육에 경련을 일으킨다. 이에 따라 몸의 근육이 반응하여 등의 굽힘근이 굽은 채 굳고 팔은 가슴 쪽에서 접히며 주먹을 꽉 쥐게 된다.
이를 의학용어로는 활울림긴장(Opisthotonus)이라 부르는데, 그 근육 수축의 힘이 매우 강해 척추를 부러뜨릴 수 있을 정도이다 [도판 3]. 얼굴 근육 또한 수축하여 의도치 않은 경련미소(risus sardonicus)가 나타나는 것 또한 파상풍의 증세이다 [도판 4]. 더 나아가 호흡 및 후두 근육에 경련을 일으켜 기도가 막혀 사망할 가능성도 있다. 파상풍이 일으키는 증상을 이렇게 상세하고 정확히 그림으로 재현해낸 작가는 스코틀랜드 출신인 찰스 벨 경(Sir Charles Bell. 1774-1842)이다. 그는 다수의 해부학 서적의 일러스트를 그린 성공한 삽화가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그는 에든버러 대학, 런던 미들섹스 대학 등 여러 기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진료를 본 외과의사이기도 하다.
그는 특히 신경해부학의 학문적 연구를 임상 실습에 결합하는 능력으로 의학계에 족적을 남긴 사람이다. 우리가 흔히 구안와사라 부르는 안면신경마비 증세를 벨마비(Bell’s Palsy)라 부르는데 바로 이 찰스 벨 경이 1821년 최초로 안면신경이 근육 활동 신경이며 이에 이상이 생기면 안면마비가 일어남을 발견하여 붙은 이름이다. 그는 성장기부터 예술적 재능을 보여 어머니가 당시 에딘버러 최고의 화가인 데이빗 앨런(David Allen)에게 사사받게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재능을 뒤로 하고 학업에 정진하여 에든버러 외과대학에 진학하고 졸업 후에는 에든버러 왕립진료소에서 해부학을 가르치고 수술을 집도하는 등 외과의사로서의 재능을 개발했다. 다만 외과의로서의 그의 커리어가 평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에든버러 대학에서 재임용에 실패해 고향땅을 떠나 1804년 런던으로 이주했으며 레스터 스트리트에 정착해서는 소속 병원이나 학교가 없어 자기 집에서 의학도들과 예술가들에게 해부학 수업을 했던 시절도 있다. 학교로 돌아가게 된 것도 부인이 가져온 지참금으로 윈드밀 스트리트 해부학교의 지분을 매입하여 임용권을 따낸 덕이었다고 한다.
또한 1815년 워털루 전쟁에서 발생한 병자와 부상자들을 치료하던 시기 사흘간 밤낮없이 연이어 수술을 진행했는데, 그의 외과보조의였던 로버트 녹스 박사는 벨의 능력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벨이 진행한 12건의 절단 수술에서 생존자가 한 명뿐이었던 것이 주요 원인인데, 다른 한편 당시 환자들이 몹시 위중한 상태에서 수술을 받은 것을 감안하면 오로지 벨의 무능에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벨의 외과 집도의로서의 능력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언정, 연구자, 그리고 후학 양성을 위한 교육자로서의 그의 업적은 눈부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업적은 그가 어려서 보여준 예술적 능력을 의학을 위해 활용하며 개발되었다. 그는 같은 학교 출신의 또 다른 외과의인 형 존을 도와 '인체 해부학'이라는 4권짜리 책의 내용과 일러스트를 맡아 그의 타고난 예술적 재능과 습득된 의학적 지식을 고루 활용한 교재를 출간하게 된다. 특히 이 책의 3권과 4권은 찰스 벨이 홀로 쓰고 삽화를 그렸으며, 자신의 임상 경험과 예술적 감각을 활용해 흥미로운 의학 사례를 밀랍으로 모델링하여 '해부학 박물관'이라 부른 방대한 컬렉션을 만들기도 했다. (그중 일부는 현재도 에딘버러 외과대학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참조 보기]) 벨은 1809년 1월 스페인 북부에서 영국군이 열세 속에서 프랑스군과 치른 코루냐(Corunna) 전투에 의학지원을 자원했다. 추위 속에 프랑스군에 쫓기며 퇴각한 영국군이 해안에서 기다리던 수송선이 제때 오지 않아 우왕좌왕하던 때에 프랑스군이 다시금 공격을 감행하여 수천 명의 부상자가 났다고 하는데, 이때 벨은 특히 장총 총알 상처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어 치료과정에서 그의 전문적 관찰 결과를 그림으로 남겼고, 그중 하나가 바로 <총상 후 파상풍에 걸린 환자>(1809)이다. 총상 환자에 대한 관찰은 그림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학문적 성취로까지 이어져 1814년 “총상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여 총상 관련 합병증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파상풍균에 오염된 토양, 금속 등이 상처를 통해 몸 안에 침투하면 걸리는 병이라는 점에서 파상풍은 우리 일상에 늘 도사리고 있다 할 수 있다. 물론 못에 찔리거나 들짐승이 할퀴었다고 해서 무조건 파상풍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한 연구에 따르면 큰 상처보다 작은 상처를 방치해 걸리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 제때 적절한 치료를 가하지 않을 경우 성인 사망률이 15~60%까지도 나타난다.
상처가 나서 파상풍이 염려되면 우선 상처 부위를 깨끗이 세척, 소독하고 항생제로 독소 생성과 세균 번식을 막아야 한다. 또한 파상풍 인간면역글로불린을 투여하여 체내에 생성되기 시작한 독소를 중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파상풍균에 감염되었다가 나았다고 해서 면역이 생기는 것이 아니므로 10년 주기로 파상풍 백신을 접종받을 것을 권유하고 있다.
파상풍의 발생률과 사망률은 지역사회의 예방접종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요새 누가 파상풍에 걸려, 하고 간과하기 쉽지만 여전히 세계적으로 연 50만에서 100만건의 감염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대개 예방접종을 완료하지 않은 사람에게 발생하며, 개발도상국에서는 주로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산모에게서 태어난 신생아에게서 발생한다. 예방접종으로 예방 가능한 질환 중 신생아 파상풍은 전 세계 어린이 사망 원인의 2위를 차지하며, 아프리카 지역에서만 매년 약 164,000명의 발생과 110,000명 사망이 보고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DTaP (영유아 대상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 혼합백신)의 접종률이 90%를 웃돌면서 신생아 파상풍은 거의 발생하고 있지 않으며, 1990년대 이후 전 연령의 파상풍이 연간 20건 내외로 보고될 정도로 드물게 발생하고 있다.
성인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첫 아이 출산 앞둔 부부 그리고, 첫 손주를 보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백일해를 예방하려고 TDap (DTap 이후 만 10세 이상~성인용 추가접종제)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파상풍 예방에 효과를 본다. 그러나 파상풍 백신이나 부스터를 지난 10년간 맞지 않았다가 파상풍에 감염된 성인의 경우 그 수는 매년 20~30명 정도로 소수이지만, 이 중 50%가 호흡 부전으로 사망할 정도로 위중한 병이 될 수 있다.
찰스 벨 경의 <총상 후 파상풍에 걸린 환자>는 질병 극복을 위한 인류의 의학적 진보의 상징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가 예술을 통해 대중과 후학에게 알리고자 한 메시지는 안타깝게도 오늘날까지 간과되어 부주의로 인한 감염은 반복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번 글을 통해 파상풍 백신 접종의 필요성을 알림으로써 예술을 통해 의학적 지식을 공유하고자 한 벨의 의지를 조금이나마 이어 받아보고자 한다.
오범조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부교수
오경은 상명대학교 계당교양교육원 미술사학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