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중러 모인 ARF 대신 벨라루스와 안방 외교…참석 실익 없다고 본듯
올해도 ARF 불참한 北최선희…아직까진 '진영편승 외교' 집중
(서울·비엔티안) 김효정 김지연 기자 = 북한 외교사령탑인 최선희 외무상이 북한이 회원인 장관급 역내 회의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올해도 결국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26일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NCC)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연쇄 외교장관회의 갈라 만찬에는 리영철 주라오스 북한 대사가 참석했다.
최선희 외무상은 같은 날 평양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전협정 체결 71주년 기념 행사를 수행한 것으로 북한 매체에 확인됐다.
이에 따라 27일 개최되는 ARF 회의에도 북한은 외교장관(외무상)이 아니라 현지 주재 대사인 리영철 대사를 수석대표로 참석시킬 것이 확실시된다.
ARF는 북한이 유일하게 참여하는 역내 다자안보 협의체로, 2018년까지는 거의 빠짐없이 외무상을 파견해 한·미·일 등을 상대로 자신의 입장을 설파하는 외교 무대로 활용했다.
그러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노딜'과 팬데믹 등이 이어지면서 2019년 이후부터는 외무상 대신 ARF 개최국 주재 대사나 주아세안대표부 대사를 수석대표로 보내고 있다. 이런 추세가 올해까지 6년 연속 이어진 것이다.
사실 올해는 최근 어느 때보다 북한 외무상의 ARF 복귀 가능성에 관심이 컸다.
북한이 국경봉쇄를 풀고 대면 외교를 재개했고, 올해 ARF 의장국인 라오스가 북한과 사회주의 이념을 공유해 사이가 가깝기 때문이다. 올해는 북한과 라오스 수교 50주년이기도 하다.
북한은 의장국이 작성을 주도하는 ARF 의장성명에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하기 유리할 것으로 보고 적극적 외교전을 펼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러시아와 준동맹 관계를 맺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공세적 대외 행보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실었다.
라오스 역시 최 외무상을 참석시키기 위해 물밑 노력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최 외무상이 불참을 택한 것은 결국 북미관계 등이 정체된 상황에서 ARF 참석의 외교적 실익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태열 장관은 지난 25일 라오스 비엔티안 공항에 도착한 직후 취재진과 만나 "(최 외무상이) 안 온다면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 외무상은 23∼26일 방북한 벨라루스 외교장관을 맞이하는 등 아직까지는 '반미연대 외교'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적극적으로 대미 메시지를 내는 무대로 ARF를 활용해왔는데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협상에 대한 미련이 상당 부분 줄었다"며 "지금은 협상보다는 진영 외교에 편승해서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국면"이라고 짚었다.
현재로선 중량급 인사인 외무상이 국제 무대에 나와 대미 메시지를 낼 필요성까지는 없다고 봤을 수도 있다. 미국 대선 레이스가 진행 중인 만큼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상황을 더 지켜보려는 것일 수도 있다.
최근 북한은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자 관심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공은 공, 사는 사'라며 선을 그으려는 모습도 보였다. 발표 형식과 주체도 '조선중앙통신 논평'으로 신중하게 조절했다.
대러 무기지원과 오물풍선 도발 등으로 높아진 대북 규탄 분위기를 마주하는 것이 최 외무상 참석에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북중관계가 소원해진 터라 북한이 이번 ARF에서 중국을 얼마나 우군으로 확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지난해 11월 탈북한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정무참사는 지난 2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다자외교를 통해 다른 나라를 설득할 기회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계산기를) 두들겨 봤을 때 (ARF 참석에서) 잃는 게 많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불참으로 2022년 6월 외무상에 취임한 최선희의 다자 외교무대 참석은 또다시 불발됐다. 다만 정세 변화에 따라 오는 9월 유엔총회 등에 나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kimhyoj@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