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연배우 야쿠쇼 고지(왼쪽)가 21일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배우 송강호와 대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연배우 야쿠쇼 고지(왼쪽)가 21일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배우 송강호와 대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만약 빔 벤더스가 아니라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찍었다면, (제가 맡았던) 히라야마 역은 송강호가 맡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먼저 배역을 맡은 건 행운이죠. 하하.”(야쿠쇼 고지)

‘퍼펙트 데이즈’ 청소부 역할의 야쿠쇼 고지.
‘퍼펙트 데이즈’ 청소부 역할의 야쿠쇼 고지.
“요즘도 가끔 봉준호 감독과 만나면 야쿠쇼 고지의 대표작인 ‘우나기’에서 보여준 연기에 대해 얘기해요. 영화 속 주인공의 고통이나 연민 같은 감정을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그밖에 없다고요.”(송강호)

프랑스 칸을 달군 두 대배우의 만남은 소탈하고 웃음 가득했다. 한국과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송강호(57)와 야쿠쇼 고지(68) 얘기다. 두 배우는 각자가 써온 필모그래피 속에 묻어나는 특유의 연기 스타일처럼 시종일관 유머러스한 분위기 속에서도 진지한 태도로 서로의 영화예술에 대한 철학을 나눴다.

야쿠쇼와 송강호는 21일 서울 신문로1가 씨네큐브에서 열린 영화 ‘퍼펙트 데이즈’ 관객과의 대화(GV)에 참석했다. 2009년 첫 연출작인 ‘두꺼비 기름’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나선 이후 15년 만에 한국을 찾은 야쿠쇼를 위해 송강호가 모습을 드러내 의미를 더한 것. “작년 칸 국제 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우연히 인사한 이후 올해가 두 번째 만남”이라는 송강호는 “존경하는 야쿠쇼를 한국에서 모시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야쿠쇼와 송강호는 각각 남우주연상 수상자와 여우주연상 시상자로 지난해 열린 칸 영화제를 빛냈다. 특히 2022년 송강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듬해 야쿠쇼가 ‘퍼펙트 데이즈’로 같은 트로피를 거머쥐며 2년 연속 아시아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는 점에서 인연이 깊다.

두 배우는 이날 관객들과 함께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야쿠쇼가 맡아 연기한 히라야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등으로 유명한 독일 거장 빔 벤더스가 연출한 ‘퍼펙트 데이즈’는 일본 도쿄의 공공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의 시시한 일상에서 포착한 찬란한 삶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난 3일 국내 개봉한 이후 예술영화로는 이례적으로 4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영화 애호가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송강호는 일상을 반복하는 히라야마를 보여준 야쿠쇼의 연기에 존경심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해 12월 먼저 영화를 관람했다”며 “영화를 보고선 ‘무심한 나뭇잎 사이 한 줄기 햇빛처럼 야쿠쇼 고지라는 위대한 장인의 미소를 가늠할 수 없다’고 얘기한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야쿠쇼는 “송강호란 배우를 처음 인식한 건 영화 ‘쉬리’에서였고 ‘살인의 추억’에서 가장 충격을 받았다”며 “젊을 적 찍은 작품인데도 대단한 배우구나 싶었는데, 송강호는 연기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리얼리티가 매력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영화 속 연기를 두고선 진지한 대화도 오갔다. 최고 명장면으로 꼽히는 영화 말미 4분간 주인공의 표정만 보여주는 롱테이크를 언급하며 “배우 대 배우로 여쭙고 싶다”며 입을 연 송강호는 “과거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 촬영 당시 비슷한 기억이 있는데, 얼굴을 클로즈업한 장면을 촬영하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에 야쿠쇼는 “이렇게 스크린에 얼굴이 크게 비친 건 배우 인생에서 이번이 처음”이라며 “촬영 전 감독이 어떻게 연기할 거냐고 물어서 ‘굳이 울지 않아도 될 거 같은데, 우는 게 나으려나’ 하며 열심히 하려 했다”고 답했다.

타국의 감독과 자국에서 찍은 영화로 나란히 세계 최고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차지한 공통점이 있는 두 배우는 인생관마저 닮아가고 있었다. ‘40~50년을 향해가는 연기 인생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질문에 야쿠쇼는 “다음엔 좀 더 잘할 것 같다는 느낌으로 한다”고 말했다. 이에 화답하듯 송강호는 “완벽한 삶은 없다”며 “배우의 삶도 그저 오케이(OK) 사인에 달려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