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쳐 흐르는 강물처럼, 혼돈을 이겨낸 佛 추상 대가 드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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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립미술관 '올리비에 드브레: 마인드스케이프'
투르에도 어두운 과거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혼란했던 시기다. 1940년 독일군의 폭격으로 도시 중심부가 잿더미가 됐다. 전후 10여년간 재건 사업을 거치고 나서야 옛 모습의 일부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드브레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1998년 주한프랑스문화원에서 개최한 판화전을 제외하면 굵직한 국내 전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프랑스 올리비에 드브레 현대창작센터(CCC OD) 컬렉션과 작가 유족의 소장품 70여점을 들여왔다.
이야기는 1920년 프랑스 파리의 어느 유복한 가정에서 출발한다. 의사와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작가는 유년 시절에 투르의 외가에서 휴가를 보내며 그림을 그리곤 했다. 건축가가 되고자 파리 에콜 데 보자르 건축과에 들어갔지만,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를 보고 감명받은 뒤 회화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총력전 국면에 접어들며 작가는 가족과 흩어졌다. 혼란과 외로움을 느낀 드브레는 다시 투르를 찾았다. 알록달록한 물감 대신 검정 목탄과 연필을 집어 들었다. 강제수용소의 희생자와 나치, 인질 등의 모티프를 상징적 기호로 표현한 '나치의 사악한 미소'(1946)는 제목처럼 섬뜩하다.
전시의 백미는 루아르강을 주제로 그린 작품들이 모인 '루아르의 방'이다. 길이가 3m에 달하는 작품 세 점에 각각 연보라와 황톳빛 분홍, 붉은 물감을 칠했다. 투명한 햇빛을 받으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루아르강을 통해 느꼈을 작가의 심상을 짐작게 한다.
작가는 1980년대에 한국을 몇 차례 찾아 풍경화 20여점을 남긴 것으로도 알려졌다. 파트리스 드브레는 "선친께선 한국을 회상하며 '푸른 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인상적인 나라'라고 말씀하셨다"며 "이곳에서 아버지의 일생이 전부 담긴 전시를 열게 돼 더욱 뜻깊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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