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장애인 스스로 급여 이용계획 설계하는 '개인예산제' 실시
모의사업 참여자 "건강보조식품 사고, 도배·장판 새로 했다…굉장히 도움"
활동지원사 수입 줄어 장애인과 갈등 우려도
"장애인 개인예산제로 선택권 확대돼…안전한 전동휠체어 살 것"
"전동휠체어를 14년간 썼더니 덜거덩덜거덩 소리가 나요.

경사에서 미끄러지지 않는 전동휠체어를 사고 싶은데 워낙 고가라 미뤄왔어요.

이제 정부 지원예산 일부를 제가 직접 짤 수 있으니 예산을 모아 전동휠체어를 교체해보려고 합니다.

"
충남 예산군에 사는 지체장애인 전 씨는 1일 연합뉴스에 "장애인 개인 예산제는 장애인이 필요한 것을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장애인 개인 예산제'는 장애인이 주어진 예산 범위 내에서 자신의 욕구와 상황에 따라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건복지부는 획일적인 공급자 중심의 복지 서비스 제공방식에서 벗어나 장애인들의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해 이날부터 전국 8개 지역을 대상으로 '장애인 개인 예산제 시범사업'을 실시한다.

시범사업 참여자는 자신의 장애인 활동지원급여 20% 범위안에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자유롭게 선택해 이용할 수 있다.

전 씨는 류머티즘 관절염이 불치병으로 평가되던 1982년 당시 진단을 받아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중증 지체 장애인이 됐다.

전 씨는 "지금은 약이 있어서 병을 관리할 수 있지만, 처음 진단받았을 때는 치료조차 받지 못했고 한번 망가진 관절이 다시 살아나지는 않았다"며 "치료제 부작용으로 눈의 망막이 망가져서 보안 안경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개인예산제로 선택권 확대돼…안전한 전동휠체어 살 것"
그는 복지부가 본격적인 시범사업에 앞서 사업모델을 검증하기 위해 작년 6개월간 실시한 '장애인 개인예산제 모의적용 사업'에 참여했다.

장애인 활동지원등급 8구간(270시간·시간당 1만6천150원)에 속하는 전 씨는 당시 정부 지원 예산의 10%(약 43만6천50원)에 대한 이용 계획을 세워 '개인 예산'으로 썼다.

전 씨는 "작년에 개인 예산으로 건강보조식품을 구입했고, 큰돈이 들어서 꿈도 못 꿨던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해 주거환경을 개선했다"며 "장애인들은 병원비 등 매월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개인 예산을 모아서 필요한 것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부터 실시하는 '장애인 개인예산제' 시범사업에도 참여한다.

올해는 작년보다 조금 늘어난 활동 지원급여의 15%(약 65만4천75원)를 개인 예산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전 씨는 "올해는 개인 예산으로 제가 목욕할 때 활동지원사분들이 침대 채로 저를 욕실로 옮길 수 있도록 이동용 목욕베드(침대)와 보안 안경을 살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활동지원사님이 제 차를 운전할 때 제 휠체어 높이 때문에 뒤가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차에 후방 카메라를 달 예정"이라며 "고가라 당장은 어렵겠지만 예산을 모아서 내년 1월쯤 안전성이 좋은 전동휠체어를 새로 사고 싶다"고 했다.

"장애인 개인예산제로 선택권 확대돼…안전한 전동휠체어 살 것"
다만 전 씨는 장애인 개인예산제 도입으로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수입이 줄면 장애인과 활동지원사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간 활동지원급여는 전적으로 활동지원사의 수입으로 돌아갔는데, 개인예산제 도입으로 급여의 일부를 장애인이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면서 활동지원사의 수입이 적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장애인 개인 예산제에 대해 일부 활동지원사 사이에 저항이 있다고 들었다"며 "특히 지적장애인의 경우 지원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활동지원사의 저항에 부딪히면 이 제도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장애인 활동지원은 장애인을 위한 제도인 만큼 장애인이 필요한 서비스와 재화를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면 개인 예산제가 본 사업이 됐을 때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개인 예산으로 구매한 물품에 대한 영수증을 일일이 출력해서 제출해야 하는데, 이를 힘들어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장애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물품을 판매하는 사이트를 지정해 해당 사이트에서 구매하면 영수증을 따로 제출하지 않아도 되도록 한다면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