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문 지나 8중 잠금 해제…조선 왕실의 '보물 창고'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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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24년 06월 06일 00시 00분 전에는 제작 목적 외의 용도, 특히 인터넷(포털사이트, 홈페이지 등)에 노출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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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 개관 후 첫 언론 공개…8만8천여 점 유물 보관
1960년대 중앙청 벙커로 지어진 뒤 탈바꿈…철통 보안에 온·습도 관리
개관 20년 차 수장고 포화 우려…"왕실 유물 통합 관리 시설 필요" "여기서부터 350m가량 쭉 따라 걸으면 됩니다.
천천히 보시는 건 괜찮지만 사진 촬영은 안 됩니다.
꼭 지켜주세요.
"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1층. 평소 굳게 닫혀있는 철문 너머로 손명희 학예연구관이 기자 10여 명을 안내하며 당부했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디딘 곳에는 텅 빈 복도뿐이었다.
벽에는 각종 배관이 있었고 곳곳에 보이는 '100m', '200m' 표시를 보며 얼마나 걸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 다시 50m쯤 더 걷자 '보물 창고'의 문이 보였다.
박물관 직원은 물론 관장조차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공간, 박물관의 심장으로도 불리는 수장고다.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가 2005년 개관 이후 처음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한 주요 행정부처가 자리를 잡았던 중앙청의 벙커로 처음 만들어진 뒤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로도 쓰였던 이 공간이 공개된 건 사실상 처음이다.
손명희 연구관은 "현재 지하 수장고 16곳을 포함해 19곳의 수장고를 운영하고 있다"며 "1960년대 중앙청 후생관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또 국립고궁박물관으로 바뀐 역사가 묻어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현재 경복궁 주차장 지하에 위치한 수장고는 종이·목제·도자·금속 등 유물의 재질·유형에 따라 나뉘어 총 8만8천530점(5월 말 기준)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그중에는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부터 철종(재위 1849∼1863)에 이르기까지 472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비롯한 국보 4건, 보물 27건 등이 있다.
서울시 문화유산까지 포함하면 지정·등록유산만 54건, 세부적으로는 3천639점에 이른다.
평소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만큼 수장고로 향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예상보다 취재진이 몰리면서 박물관 측은 총 3개 조로 나눠 수장고로 입장했다.
외부에서 오염물질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 수장고에 들어가기 전에는 덧신을 신어야 했다.
평소 수장고에 들어가려면 카드키, 신원 확인 등 7∼8중의 보안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박물관 측은 귀띔했다.
이날 취재진에 공개된 10 수장고는 조선왕실의 어보·어책·교명 등 628점을 보관한 공간이다.
조선 왕조의 역사이자 왕가의 정통성과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과 문서를 모은 곳이다.
오동나무로 짠 4단 수납장에는 금과 은, 옥으로 만든 어보 등이 함에 담겨 놓여 있었다.
각 유물에는 꼬리표를 달아 유물 정보를 적어 두었고, 서랍장 위에는 온·습도계를 놓아 관리하는 듯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수장고에 보관된 유물에 따라 온도, 습도를 관리한다"며 "금속과 목재류 유물이 있는 10 수장고의 경우 온도는 20±4도, 습도는 50∼60%가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이웃'인 11 수장고는 조선 왕조에서 사용한 궁중 현판 766점이 모여있다.
1756년 영조(재위 1724∼1776)가 예를 표하며 걸었다는 '인묘고궁'(仁廟古宮) 현판, 순조(재위 1800∼1834)의 생모 수빈 박씨를 기리는 사당에 걸린 '현사궁'(顯思宮) 현판 등을 볼 수 있었다.
사도세자(1735∼1762)의 사당인 '경모궁'(景慕宮) 현판의 경우, 테두리 일부가 사라져 유물 훼손을 막기 위해 거꾸로 보관해 관리하는 점도 눈에 띄었다.
박물관은 이날 정조(재위 1776∼1800)가 왕세손에 오를 때 만든 각종 의례용 유물도 특별 공개했다.
평소 교육 행사를 여는 열린 수장고(19 수장고)에서는 8세의 정조가 왕세손으로 책봉되면서 징표로 받은 옥인(玉印·옥으로 만든 도장), 죽책(竹冊·대쪽에 새겨 엮은 문서) 등을 볼 수 있었다.
수장고 벽면을 따라서는 종묘에서 제례를 지낼 때 쓰던 갖가지 용구가 진열돼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8만8천여 점의 유물이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는 듯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유물 구입, 기탁 등으로 소장품 수가 늘다 보니 과밀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박물관 측은 전했다.
실제로 올해 5월 기준 수장고 시설 대비 유물 보관 현황을 계산한 포화율은 160%에 이른다.
경기 지역의 한 수장시설을 일부 빌려 운영하고 있으나 임시방편이다.
손 학예연구관은 "전체 수장품 가운데 지난해 전시로 공개한 유물은 약 1.9%"라며 "길이가 3m가 넘는 대형 유물도 있다 보니 보존 처리 작업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하 벙커로 지어진 시설을 개조·보수하다 보니 증축은 어렵다"며 "유물을 보관·관리하고 전시, 교육까지 할 수 있는 제2수장고 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물관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개방형 수장고 형식의 분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고궁과 왕릉이 있는 서울·경기 지역을 대상으로 후보지를 찾는 한편, 제2수장고 건립·운영을 위한 연구 용역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용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개관 이후 다양한 유물을 수집·관리하면서 포화도가 높아진 상황"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왕실 유물 통합 관리 시설 건립 등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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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 개관 후 첫 언론 공개…8만8천여 점 유물 보관
1960년대 중앙청 벙커로 지어진 뒤 탈바꿈…철통 보안에 온·습도 관리
개관 20년 차 수장고 포화 우려…"왕실 유물 통합 관리 시설 필요" "여기서부터 350m가량 쭉 따라 걸으면 됩니다.
천천히 보시는 건 괜찮지만 사진 촬영은 안 됩니다.
꼭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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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1층. 평소 굳게 닫혀있는 철문 너머로 손명희 학예연구관이 기자 10여 명을 안내하며 당부했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디딘 곳에는 텅 빈 복도뿐이었다.
벽에는 각종 배관이 있었고 곳곳에 보이는 '100m', '200m' 표시를 보며 얼마나 걸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 다시 50m쯤 더 걷자 '보물 창고'의 문이 보였다.
박물관 직원은 물론 관장조차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공간, 박물관의 심장으로도 불리는 수장고다.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가 2005년 개관 이후 처음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한 주요 행정부처가 자리를 잡았던 중앙청의 벙커로 처음 만들어진 뒤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로도 쓰였던 이 공간이 공개된 건 사실상 처음이다.
손명희 연구관은 "현재 지하 수장고 16곳을 포함해 19곳의 수장고를 운영하고 있다"며 "1960년대 중앙청 후생관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또 국립고궁박물관으로 바뀐 역사가 묻어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현재 경복궁 주차장 지하에 위치한 수장고는 종이·목제·도자·금속 등 유물의 재질·유형에 따라 나뉘어 총 8만8천530점(5월 말 기준)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그중에는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부터 철종(재위 1849∼1863)에 이르기까지 472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비롯한 국보 4건, 보물 27건 등이 있다.
서울시 문화유산까지 포함하면 지정·등록유산만 54건, 세부적으로는 3천639점에 이른다.
평소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만큼 수장고로 향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예상보다 취재진이 몰리면서 박물관 측은 총 3개 조로 나눠 수장고로 입장했다.
외부에서 오염물질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 수장고에 들어가기 전에는 덧신을 신어야 했다.
평소 수장고에 들어가려면 카드키, 신원 확인 등 7∼8중의 보안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박물관 측은 귀띔했다.
이날 취재진에 공개된 10 수장고는 조선왕실의 어보·어책·교명 등 628점을 보관한 공간이다.
조선 왕조의 역사이자 왕가의 정통성과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과 문서를 모은 곳이다.
오동나무로 짠 4단 수납장에는 금과 은, 옥으로 만든 어보 등이 함에 담겨 놓여 있었다.
각 유물에는 꼬리표를 달아 유물 정보를 적어 두었고, 서랍장 위에는 온·습도계를 놓아 관리하는 듯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수장고에 보관된 유물에 따라 온도, 습도를 관리한다"며 "금속과 목재류 유물이 있는 10 수장고의 경우 온도는 20±4도, 습도는 50∼60%가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이웃'인 11 수장고는 조선 왕조에서 사용한 궁중 현판 766점이 모여있다.
1756년 영조(재위 1724∼1776)가 예를 표하며 걸었다는 '인묘고궁'(仁廟古宮) 현판, 순조(재위 1800∼1834)의 생모 수빈 박씨를 기리는 사당에 걸린 '현사궁'(顯思宮) 현판 등을 볼 수 있었다.
사도세자(1735∼1762)의 사당인 '경모궁'(景慕宮) 현판의 경우, 테두리 일부가 사라져 유물 훼손을 막기 위해 거꾸로 보관해 관리하는 점도 눈에 띄었다.
박물관은 이날 정조(재위 1776∼1800)가 왕세손에 오를 때 만든 각종 의례용 유물도 특별 공개했다.
평소 교육 행사를 여는 열린 수장고(19 수장고)에서는 8세의 정조가 왕세손으로 책봉되면서 징표로 받은 옥인(玉印·옥으로 만든 도장), 죽책(竹冊·대쪽에 새겨 엮은 문서) 등을 볼 수 있었다.
수장고 벽면을 따라서는 종묘에서 제례를 지낼 때 쓰던 갖가지 용구가 진열돼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8만8천여 점의 유물이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는 듯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유물 구입, 기탁 등으로 소장품 수가 늘다 보니 과밀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박물관 측은 전했다.
실제로 올해 5월 기준 수장고 시설 대비 유물 보관 현황을 계산한 포화율은 160%에 이른다.
경기 지역의 한 수장시설을 일부 빌려 운영하고 있으나 임시방편이다.
손 학예연구관은 "전체 수장품 가운데 지난해 전시로 공개한 유물은 약 1.9%"라며 "길이가 3m가 넘는 대형 유물도 있다 보니 보존 처리 작업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하 벙커로 지어진 시설을 개조·보수하다 보니 증축은 어렵다"며 "유물을 보관·관리하고 전시, 교육까지 할 수 있는 제2수장고 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물관은 최근 주목받고 있는 개방형 수장고 형식의 분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고궁과 왕릉이 있는 서울·경기 지역을 대상으로 후보지를 찾는 한편, 제2수장고 건립·운영을 위한 연구 용역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용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개관 이후 다양한 유물을 수집·관리하면서 포화도가 높아진 상황"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왕실 유물 통합 관리 시설 건립 등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