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4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31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렸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왼쪽부터), 김병환 기획재정부 차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강은구 기자
올해 제4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31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렸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왼쪽부터), 김병환 기획재정부 차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강은구 기자
국민연금공단이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연 0.5%포인트씩 국내 주식 비중을 줄여나가기로 했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국내 주식을 담기에는 덩치가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현재 자산 규모가 1101조원에 달하고 5년 뒤엔 더 불어나 1300조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세계 증시의 1.8% 남짓인 국내 주식 시장에 15% 가까운 비중으로 투자해왔다. 앞으로 국민연금이 이 비중을 줄이기로 함에 따라 장기적으로 증시 수급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더 커진 ‘연못 속 고래’

국민연금이 국내 비중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기로 한 것은 국내 시장에서 자산 매각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이다. 나중에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연금을 지급하려면 보유 자산을 팔아야 하는데 이때 국내 주식을 한꺼번에 팔면 국내 증시가 충격을 받을 수 있어 미리 비중을 줄여놓는 게 필수적이다.

특히 ‘기금 성장기’가 예상보다 빨리 다가오면서 고위험 자산을 서둘러 팔아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지난해 국민연금연구원이 공개한 ‘중기재정전망 2023~2027년’을 보면 기금 성장기가 끝나는 시점은 2027년으로 기존 전망치보다 3년 빨라졌다. 앞으로 3년 뒤면 보험료만으로 연금을 지급할 수 없어 투자 수익 일부를 헐어야 한다는 얘기다.

○해외 증시가 더 유망

국민연금의 국내 자산 쏠림 현상이 과도하다는 점도 중요한 고려 요소다. 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을 포함한 국내 증시는 세계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8%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민연금 포트폴리오에서 국내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3월 말 현재 14.2%에 달한다.
해외주식 더 담는 국민연금…K밸류업 동력 떨어지나
해외 증시 수익률이 국내 주식 수익률을 압도한다는 점도 영향을 줬다. 국민연금은 수익률을 1%포인트만 높여도 기금 고갈을 6년가량 늦출 수 있는 만큼 수익성을 중시하고 있다. 1988년 기금 설립 이후 작년까지 국내 주식에 대한 투자 수익률은 연 환산 기준으로 6.53%에 그쳤지만 해외 주식의 투자 수익률은 연 11.04%에 달했다. 수익금도 해외 주식이 국내 주식을 넘어선 지 오래다. 기금 설립 이후 해외 주식 수익금은 167조원이지만 국내 주식 수익금은 105조원에 그친다.

○5% 이상 보유 종목만 276개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매수를 줄이거나 필요에 따라 대량 보유 종목 중 일부를 매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비중을 미리 축소해놔야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연금은 올해 1분기 말 현재 국내 주식(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155조9000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같은 시점 유가증권·코스닥시장 시가총액(2672조원)의 5.8% 수준이다. 지난 30일 현재 5% 이상 보유한 국내 주식 종목은 총 276개다. 이 중 31개 종목은 10% 이상 보유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네이버, 포스코홀딩스 등은 최대주주 자리를 꿰차고 있다.

증권업계에선 국민연금의 국내 증시 비중 축소로 밸류업 프로그램이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연기금의 탄탄한 매수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때문에 금융계에선 국민연금이 일본 공적연금(GPIF)처럼 밸류업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길 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밸류업 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연기금의 지원 사격을 받았다. GPIF는 지난해 말 기준 전체 자산의 24.7%를 일본 증시에 투자하고 있다. 자국 증시 비중이 2010년 11.5%에 불과했으나 13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