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디젤, 영원히 잊혀질까
일본의 디젤 엔진 개척자로 유명한 야마오카 마고키치가 존경했던 인물은 독일의 디젤 엔진 개발자였던 루돌프 디젤이다. 1900년대 뮌헨공대에서 공부할 때도 수시로 루돌프 디젤이 머물렀던 아우구스부르크를 찾았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가 1912년 디젤 엔진 전문기업 얀마(YANMAR)를 설립했다. 이후 얀마는 1933년 일본에서 소형 디젤 엔진을 개발해 발전기 및 보트 등에 판매하며 성장을 거듭했고, 1952년 아예 회사명을 얀마 디젤엔진으로 변경했다.

야마사키가 독일을 다시 찾았을 때는 1953년이다. 자신의 청년 시절을 떠올리며 디젤 엔진 발상지인 아우구스부르크를 찾았지만 어느 누구도 루돌프 디젤을 기억하거나 기념하는 것이 없자 곧바로 기념비를 만들기로 했다. 1957년 개관한 루돌프 디젤 메모리얼 그로브의 설립 배경이다. 일본에서 만든 정원을 그대로 옮겼으며 루돌프 디젤 탄생 100주년 및 디젤 엔진 탄생 60주년을 기념했다.

1858년 독일에서 태어난 루돌프 디젤은 파리와 영국에서 생활했으며 12세때부터 아우구스부르크에 머물렀다. 큰 아버지의 양자로 입적돼 뮌헨고등공예학교 졸업하고 암모니아 냉동기로 유명한 ‘진 린데’ 박사의 냉동기회사 지사장으로 취업했다. 1884년 '증기기관‘의 증기 대신 ‘가열한 암모니아 증기’를 쓰면 열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암모니아는 냄새가 심하고 금속을 부식시켜 사용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공기를 이용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 디젤 엔진이다. 압축된 공기에 연료를 뿌리면 자연 착화가 일어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기술로는 저절로 불이 붙을 만큼 공기를 압축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지만, 루돌프 디젤은 팜플렛을 휴대하며 연구비를 지원해 줄 회사를 찾아 다녔다. 마침내 아우구스부르크 기계제작소(현재 MAN)의 후원을 받았다. 물론 실용화에 성공할 경우 판매권을 양도한다는 조건이었고 마침내 1894년 2월 루돌프 디젤은 엔진 개발에 성공했다.

디젤 엔진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경제형 엔진으로 알려지면서 유럽과 미국에서 광산, 선박, 기차, 건설장비, 트랙터용 엔진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순식간에 루돌프 디젤은 백만장자가 됐지만 시기와 질투도 상당했다. 특히 가솔린 및 증기 엔진 제조사들의 중상 모략이 심했다. 그러다 1913년 9월 영국에 세워진 디젤 엔진 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선을 타고 도버 해협을 건너던 중 실종됐다. 그로부터 2주 후 시체가 발견됐지만 사망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일본이 디젤 엔진 개발에 나설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야마사키가 루돌프 디젤을 존경했던 가장 큰 이유는 디젤의 특허 개방이다. 그는 엔진 개발 이후 누구나 디젤엔진을 만들 수 있도록 기술을 허용했다. 기술은 나누는 것이지, 독점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디젤엔진이 급속도로 퍼진 것도, 자동차용으로 1922년에 벤츠가 트럭에 적용한 것도 모두 특허 개방 덕분이다.

그러나 이제는 루돌프 디젤의 이름도 서서히 잊혀가는 중이다. 승용 부문에서 디젤의 존재감은 사라진 지 오래고 상용도 조금씩 대안을 찾아가려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에너지도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분야가 디젤이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