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전체가 거대한 축제장…끝없는 굉음에도 뜨거운 호응
인천 유치 도전에 기대 속 우려도…"타당성 면밀히 고려해야"
[르포] 'F1 인천 그랑프리' 가능할까…모나코 서킷 가보니
지난 25일(현지시간) F1(포뮬러원) 그랑프리가 열린 모나코는 나라 전체가 거대한 축제장을 방불케 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F1 경주용 차량 20대가 출발 신호에 따라 강렬한 엔진음을 내뿜으며 쾌속 질주를 시작하자 도심은 금세 자동차의 굉음과 관중의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모나코 서킷의 19개 코너 중 가장 유명한 6번 지점에서 레이서들이 180도 커브 구간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할 때마다 관중석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국토 면적이 1.95㎢에 불과한 지중해 초미니 국가에서 도심을 관통하는 길이 3.337㎞ 도로를 막아 '시가지 서킷'을 조성한 덕에 대회 열기는 어디서든 뜨겁게 달아올랐다.

경주로가 내다보이는 모나코 헤라클레스 항구(Port Hercule)에는 대회를 맞아 세계 각지에서 온 초호화 요트들이 빼곡히 바다를 채우며 장관을 이뤘다.

[르포] 'F1 인천 그랑프리' 가능할까…모나코 서킷 가보니
서킷을 따라 설치된 임시 관람석은 극한의 속도를 체험하려는 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주변 호텔이나 아파트 역시 테라스마다 인파가 잔뜩 몰렸다.

현지 가이드는 "대회가 열리는 기간에는 주변 숙소 가격이 평소보다 3배 이상 뛴다"며 "워낙 인기가 많다 보니 1년 전부터 예약을 해둬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거리에는 밴드 공연이 열리거나 각종 체험 부스와 기념품 가게가 운영되며 활기를 더했고 방문객들은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회 개최를 위해 일부 도로 구간이 통제된 상황에서 차량 정체가 빚어지기도 했으나 방문객 수십만명이 몰린 것에 비하면 큰 문제점은 발생하지 않았다.

[르포] 'F1 인천 그랑프리' 가능할까…모나코 서킷 가보니
올림픽·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행사로 꼽히는 F1 그랑프리는 최근 인천시가 적극적으로 대회 유치에 나서며 국내에서 조금씩 더 관심을 받고 있다.

모나코 거리에서 만난 김동규(26), 이재찬(25)씨는 "여행 중에 F1 경기를 직접 봤는데 사람들이 왜 레이스에 열광하는지 알 것 같다"며 "국내에는 마니아층만 형성돼 있지만, 한국에 대회가 유치된다면 충분히 대중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F1을 소유한 그레고리 마페이 리버티 미디어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미디어데이에서 태국·말레이시아와 함께 한국을 언급하며 아시아 대회 추가 유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인천시는 지난달 열린 일본 그랑프리에 이어 한 달여 만에 또다시 모나코 그랑프리를 찾아 F1 관계자들과 접촉하며 실무협의에 나섰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25일 스테파노 도미니칼리 포뮬러원 그룹 최고경영자(CEO)와 면담을 진행한 뒤 연내 계약 성사를 목표로 협력 의향서를 전달했다.

이어 F1 서킷 디자인 전문업체 드로모의 야르노 자펠리 CEO와 만나 그랑프리 유치를 위해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내용의 실무 협의서를 체결했다.

[르포] 'F1 인천 그랑프리' 가능할까…모나코 서킷 가보니
인천시는 모나코처럼 시가지에서 펼쳐지는 도심 레이스 형태로 송도·영종·청라 중에 F1 그랑프리를 유치해 2026년이나 2027년께 첫 대회를 연 뒤 5년 이상 매년 개최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또 포뮬러원 그룹 측에 연내 공식 제안서 제출과 계약 체결에 나서는 한편 대회 유치를 위한 타당성 조사 용역을 실시하고 정부에도 협조를 구할 방침이다.

그러나 F1 그랑프리가 국내에선 비교적 생소한 스포츠다 보니 대회 유치를 향한 기대와 함께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앞서 국내에서는 전남도가 영암군에 5천73억을 들여 경주장을 비롯한 각종 기반 시설을 짓고 2010년부터 그랑프리를 열었으나 당초 계획한 7년을 채우지 못하고 4년 만에 대회를 중단했다.

적자 규모가 늘면서 국회에서도 영암 F1 대회의 타당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고 매년 대회 기간 교통 문제와 숙박 시설 미비에 대한 외신의 비판적 보도가 이어졌다.

감사원 감사 결과 영암 F1 대회 첫해인 2010년의 경우 방문객이 계획 인원(14만명)의 56.4%인 7만9천명 수준에 그쳤다.

운영 수익도 당초 70억원 흑자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692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시는 전남도의 시행착오를 거울로 삼아 유치 협상 단계부터 신중하게 접근하고 인천만의 경쟁력을 살려 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한다는 방침이다.

인천시는 인천국제공항을 비롯한 교통 인프라가 우수하고 12개 특급호텔을 거점으로 안정적인 숙박과 수도권 연계 관광이 가능한 점을 차별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르포] 'F1 인천 그랑프리' 가능할까…모나코 서킷 가보니
다만 1929년부터 자동차 대회를 열어온 모나코가 오랜 역사와 상징성을 앞세워 큰 인기를 끄는 것과 비교해 인천시가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대회를 개최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대회 기간 발생하는 통제 조치나 굉음 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모나코 현지 분위기와 달리 인천지역사회가 F1 대회 환경과 모터스포츠 문화를 수용할지도 미지수다.

실제로 모나코의 경우 도심 속에 서킷이 위치하다 보니 경주로가 보이는 외부 공간 대부분은 철제 울타리로 철저히 시야를 가리고 일부 구간은 출입을 제한했다.

서킷이 내려다보이는 모나코 왕궁 일대의 경우 F1 티켓을 소지하거나 70유로(한화 10만원)를 내야만 들어갈 수 있어 발걸음을 돌리는 관광객도 적지 않았다.

[르포] 'F1 인천 그랑프리' 가능할까…모나코 서킷 가보니
인천 시민단체들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F1 그랑프리는 대회 인프라 구축과 개최료 등 비용이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아직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지 못하는 F1 대회에 대규모 관람객을 유치하지 못할 경우 재정 악화로 이어져 인천시가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F1 도심 레이스 등 자동차 경주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분진·소음으로 주민 건강과 안전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며 "대회 유치 효과로 꼽히는 관광산업 활성화는 대형 호텔과 카지노 특수에 쏠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근우 인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 연구위원은 "F1 유치에 앞서 경제·사회·문화적으로 투입 대비 산출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면밀한 검토 없이 대회를 치를 경우 인천시 재정에 걷잡을 수 없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제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