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의 예술성으로 묵직한 화두 던진 오페라 '죽음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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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죽음의 도시'
연주·성악·연출 3박자 맞아 떨어져
150분 긴 러닝타임에도 관객 매료
대조를 통해 삶과 죽음 성찰
영화음악 같은 화려한 관현악
연주·성악·연출 3박자 맞아 떨어져
150분 긴 러닝타임에도 관객 매료
대조를 통해 삶과 죽음 성찰
영화음악 같은 화려한 관현악
“삶과 죽음의 세계는 갈라져 있어, 냉혹한 철칙이지. 천국에서 날 기다려줘.”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1897~1957)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 3막 마지막 장면. 주인공 파올은 죽은 아내에 대한 갈망과 집착을 내려놓고, 마침내 아내의 망령과 작별한다. 파올의 깨달음과 함께 무대의 막이 내리자 관중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국내에서 전막 초연하는 국립오페라단의 ‘죽음의 도시’가 지난 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일을 벗었다. ‘쇼츠’와 ‘세 줄 요약’이 범람하는 시대에 ‘죽음과 삶의 관계’라는 심오한 주제와 러닝타임 150분에 달하는 이 대작이 청중에게 어떤 감흥을 줄 수 있을까. ‘죽음의 도시’는 이런 세간의 의문에 오페라의 존재감을 역설하는 무대였다. ‘종합예술의 꽃’으로 불리는 오페라는 연출, 의상, 연기, 노래, 음악 등 모든 요소가 제대로 구현돼야 몰입이 가능하다. 이번 작품은 국립심포니의 호연, 성악가들의 기량, 적절한 연출까지 드물게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무대였다. 이를 통해 오페라만이 줄 수 있는 묵직한 철학적 화두와 고도의 예술성을 선사했다.
양쪽의 경계에서 파올은 계속 오락가락한다. 그는 죽은 아내를 고결한 성녀로 생각하고 애도하지만, 죽은 아내와 똑 닮은 무용수 마리에타의 에너지와 육체적 매력에 끌린다. 그러나 그는 아내에 대한 죄책감으로 마리에타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비난한다.
작품은 초반과 결말을 빼면 파올의 꿈과 환각 속 스토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 때문에 사실상 파이 극의 중심인데, 파올 역을 맡은 테너 로베르토 사카는 60대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재한 기량을 선보였다. 파올 역은 비중이 거의 80% 이상인 데다 고음이 반복적으로 등장해 상당한 지구력을 요한다. 사카는 1막 초반에 성량이 조금 아쉬운 듯했으나 이내 빼어난 전달력과 안정적인 발성으로 극을 이끌어갔다.
여주인공 마리에타 역을 맡은 레이첼 니콜스는 남자를 두고 죽은 여자와 경쟁하는 팜파탈 역할을 소화해냈다. 특히, 마리에타는 무용수인 만큼 춤과 노래 모두에 능해야 하는 게 특징. 니콜스는 1막의 아리아 ‘마리에타의 노래’에서 요염한 몸짓을 하며 넓은 음역대를 오갔다. 죽은 아내 마리 역할은 무용수 김채희가 얼굴을 가린 채 연기했는데, 그는 인형극처럼 정교한 몸동작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코른골트는 바그너, R 슈트라우스, 푸치니, 드뷔시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에 비해 연주 난도가 훨씬 높은 게 특징이다. 오케스트라는 수시로 성악과 맞춰 들어가야 하는 까다로운 파트가 빈번했고, 테크닉적으로도 난곡이었지만 국립심포니는 이를 무사히 소화해냈다. 후반부 금관 파트에서 힘이 빠진 듯한 느낌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큰 어긋남 없이 성악가들과 매끈한 호흡을 자랑했다. 이번 무대의 지휘봉을 잡은 로타 쾨닉스는 유럽에서 오페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지휘자로 귀가 예민하기로 정평 난 인물. 세부적인 음향 효과와 성악의 시너지를 탁월하게 조율하며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연출적 효과도 정교했다. 수시로 톤이 바뀌는 조명과 무대배경 속에서 인물들이 퇴장하고 재등장을 반복하면서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리에타가 무용수라는 설정 덕에 전반적인 안무나 동작이 돋보이고 춤추는 장면이 많은데, 이를 조명과 세트 등을 통해 효과적으로 연출한 흔적이 돋보였다. 중간중간 가미된 스릴러적 요소와 달 모양 그네 등 감성적 요소가 연출의 디테일을 더했다. 2막에 등장하는 ‘극중극’에서 연출의 미감은 정점을 찍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1897~1957)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 3막 마지막 장면. 주인공 파올은 죽은 아내에 대한 갈망과 집착을 내려놓고, 마침내 아내의 망령과 작별한다. 파올의 깨달음과 함께 무대의 막이 내리자 관중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국내에서 전막 초연하는 국립오페라단의 ‘죽음의 도시’가 지난 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일을 벗었다. ‘쇼츠’와 ‘세 줄 요약’이 범람하는 시대에 ‘죽음과 삶의 관계’라는 심오한 주제와 러닝타임 150분에 달하는 이 대작이 청중에게 어떤 감흥을 줄 수 있을까. ‘죽음의 도시’는 이런 세간의 의문에 오페라의 존재감을 역설하는 무대였다. ‘종합예술의 꽃’으로 불리는 오페라는 연출, 의상, 연기, 노래, 음악 등 모든 요소가 제대로 구현돼야 몰입이 가능하다. 이번 작품은 국립심포니의 호연, 성악가들의 기량, 적절한 연출까지 드물게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무대였다. 이를 통해 오페라만이 줄 수 있는 묵직한 철학적 화두와 고도의 예술성을 선사했다.
대조를 통해 삶에 대한 성찰 유도
전체 3막으로 이뤄진 ‘죽음의 도시’는 끊임없는 대조를 통해 삶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우울하고 과거에 잠식돼 있는 파올과 삶을 노래하는 무용수 마리에타의 대비가 대표적이다. 상반된 두 남녀 주연을 비롯해 작품은 죽음과 삶,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 종교가 지배하는 엄숙한 세계와 욕망이 지배하는 속세, 환상과 현실을 대비시킨다.양쪽의 경계에서 파올은 계속 오락가락한다. 그는 죽은 아내를 고결한 성녀로 생각하고 애도하지만, 죽은 아내와 똑 닮은 무용수 마리에타의 에너지와 육체적 매력에 끌린다. 그러나 그는 아내에 대한 죄책감으로 마리에타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비난한다.
작품은 초반과 결말을 빼면 파올의 꿈과 환각 속 스토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 때문에 사실상 파이 극의 중심인데, 파올 역을 맡은 테너 로베르토 사카는 60대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재한 기량을 선보였다. 파올 역은 비중이 거의 80% 이상인 데다 고음이 반복적으로 등장해 상당한 지구력을 요한다. 사카는 1막 초반에 성량이 조금 아쉬운 듯했으나 이내 빼어난 전달력과 안정적인 발성으로 극을 이끌어갔다.
여주인공 마리에타 역을 맡은 레이첼 니콜스는 남자를 두고 죽은 여자와 경쟁하는 팜파탈 역할을 소화해냈다. 특히, 마리에타는 무용수인 만큼 춤과 노래 모두에 능해야 하는 게 특징. 니콜스는 1막의 아리아 ‘마리에타의 노래’에서 요염한 몸짓을 하며 넓은 음역대를 오갔다. 죽은 아내 마리 역할은 무용수 김채희가 얼굴을 가린 채 연기했는데, 그는 인형극처럼 정교한 몸동작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영화음악 같은 오케스트라 반주
코른골트의 음악은 극도로 화려한 관현악 기법, 복잡한 불협화음, 잦은 전조와 음향적 색채로 유명하다. 그는 영화 ‘인간의 굴레’, ‘로빈 후드의 모험’ 등의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으며, 미국으로 이주해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인물. 오케스트라 피트에는 피아노, 만돌린, 첼레스타 등 다채로운 음향을 내는 악기를 사용해 블록버스터 영화 사운드트랙 같은 효과를 냈다.코른골트는 바그너, R 슈트라우스, 푸치니, 드뷔시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에 비해 연주 난도가 훨씬 높은 게 특징이다. 오케스트라는 수시로 성악과 맞춰 들어가야 하는 까다로운 파트가 빈번했고, 테크닉적으로도 난곡이었지만 국립심포니는 이를 무사히 소화해냈다. 후반부 금관 파트에서 힘이 빠진 듯한 느낌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큰 어긋남 없이 성악가들과 매끈한 호흡을 자랑했다. 이번 무대의 지휘봉을 잡은 로타 쾨닉스는 유럽에서 오페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지휘자로 귀가 예민하기로 정평 난 인물. 세부적인 음향 효과와 성악의 시너지를 탁월하게 조율하며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연출적 효과도 정교했다. 수시로 톤이 바뀌는 조명과 무대배경 속에서 인물들이 퇴장하고 재등장을 반복하면서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리에타가 무용수라는 설정 덕에 전반적인 안무나 동작이 돋보이고 춤추는 장면이 많은데, 이를 조명과 세트 등을 통해 효과적으로 연출한 흔적이 돋보였다. 중간중간 가미된 스릴러적 요소와 달 모양 그네 등 감성적 요소가 연출의 디테일을 더했다. 2막에 등장하는 ‘극중극’에서 연출의 미감은 정점을 찍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