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것도 챙기기 바쁜데…새 펀드 또 내놓으라는 금투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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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될까"…업계는 진땀
일각선 "공동 마케팅 효과 볼 것" 평가도
협회 "TDF 치중된 디폴트옵션, 양축으로"
![금융투자협회 자료사진. 사진=신민경 기자](https://img.hankyung.com/photo/202405/01.36810294.1.jpg)
23일 업계에 따르면 자산운용사들이 '디딤펀드'의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투자협회 주관의 초기 태스크포스(TF)에서 자산운용사 7곳(삼성·미래에셋·KB·한국투자, 신한·트러스톤·유진)이 모여 디딤펀드 브랜드화를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최근에는 한화자산운용과 키움투자자산운용, NH아문디자산운용, 대신자산운용도 이 TF에 들어갔다.
이들 운용사는 1개씩의 펀드를 이르면 9월까지 내놓을 예정이다. 이에 따라 최소 열 개 정도의 신규 펀드가 추가될 예정이다. 다만 TF에 참여하지 않은 운용사들 중에서도 디딤펀드 출시를 검토 중인 곳이 있어 실제로는 더 많은 펀드들이 나올 예정이다.
디딤펀드는 지난해 취임한 서유석 회장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상품이다. 서 회장은 자산운용사 출신답게 개인에게도 연기금처럼 중장기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가 필요하다고 봤다. 회장 출마 시절부터 '사적연금 수익률 개선'을 공약해 온 서 회장은 개인도 펀드에 연금자산을 넣으면 국민연금이 돈 굴리는 방식처럼 굴려주는 상품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자산운용사들은 이번 디딤펀드가 기존 자산배분 펀드들과 다름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디딤펀드처럼 주식·채권 등 자산 배분 비중을 일정하게 가져가는 상품이 많은 데다, 시장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위험 비중이 조절되는 '타깃데이트펀드'(TDF)까지 이미 시장에 널리 퍼져있는 터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새삼스럽에 이름을 내걸고 새 브랜드를 내놓을 필요가 있느냐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사실상 '수요 없는 공급'이란 얘기다.
디딤펀드와 비슷한 형태의 펀드는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펀드다. 연기금과 공제회 등 거액의 기관 돈을 운용사가 대신 굴려주는 'OCIO' 제도를 개인들도 투자에 이용할 수 있게끔 공모펀드에 접목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연 4~5%를 목표수익률로 제시할 만큼 안정성을 중시한 펀드다. 타깃리스크펀드(TRF)도 디딤펀드와 비슷하다. 투자자들 성향에 따라 주식과 채권의 비중을 미리 정해두고 관리하는 게 특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업계에서는 디딤펀드 출시가 요식행위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여느 정책성 상품이 그랬듯 깃발 들고 나섰던 사람이 물러나면 사업 동력이 약해진다. 작년 1월 협회장에 오른 서 회장의 임기는 내년 말까지다. 심지어 '디딤'이라는 이름도 서 회장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용사 한 담당자는 "정책성 펀드라는 것이 늘 시작은 좋은데, 총대를 멨던 사람이 사라지면 펀드들만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번의 경우에도 중복상품이 많은 데다 차별화된 이점이 없는데 협회 눈치를 보고 만드는 것이어서 경쟁력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한 운용사 연금 담당 임원은 "흥행의 관건은 기존 펀드들에서 옮겨 갈 유인이 얼마나 있는가인데 세제 혜택까진 못 해주더라도 '플러스 알파'는 있어야 설득력이 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다른 한 운용사 임원도 "개조도 없이 같은 걸 내놓겠다는 건, 스마트폰이 잘 팔리니까 옛 3세대(3G) 폰도 끌어와 같이 팔자는 말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운용사 담당자들 사이에서도 '업데이트'가 아닌 '다운그레이드'(후진적) 상품이라며 불만이 많은 상황"이라며 "우리는 기존 OCIO 펀드를 디딤펀드로 이름만 바꿔 낼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상품을 판매하는 증권사도 반발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협회 회원사인 만큼 은행들과 달리 상품 구성(라인업)에 디딤펀드를 적극 걸어줘야 하는 상황이다. 디폴트옵션과의 연계는 고용노동부 승인 사안이어서, 빨라야 1년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내년 말쯤 이뤄질 예정이고 그 전까진 특히 증권사 역할이 중요하다. 판매채널에서 '디딤펀드가 연금펀드로서 소비자들에게 먹힌다'는 게 입증돼야 증권사들이 고용부에 디폴트옵션 상품 신청을 하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퇴직연금 담당 임원은 "소비자들에게 '포트폴리오에서 기존의 TDF를 빼고 디딤펀드를 디폴트옵션으로 넣으라'고 권해야 하는데 애를 먹을 것 같다"며 "우리조차 디딤펀드가 더 나은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https://img.hankyung.com/photo/202405/01.36810534.1.jpg)
협회는 TDF 일변도인 디폴트옵션 펀드상품을 향후 'TDF'와 '밸런스드펀드'(BF)의 양 축으로 변화시키는 게 목표다. BF란 주식, 채권 등 여러 자산에 나눠 투자하는 자산배분펀드란 점에선 TDF와 같다. 하지만 은퇴까지 기간이 많이 남았을 땐 주식 비중을 높게 가져가는 TDF와 달리, BF는 주식 비중을 내내 일정하게 유지한다. 이처럼 안정성이 강점인 BF를 띄우기 위해 TRF, TIF, OCIO 펀드 등 직관적이지 못한 이름들 대신 '디딤펀드'란 공동 브랜드를 앞세우겠단 것이다.
문유성 금융투자협회 연금부장은 "공동 브랜드는 업계에도 스타 상품을 만들어서 좋고, 소비자로서도 '선택 딜레마'가 줄어드니 긍정적"이라며 "숙련된 투자자들에게는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있겠지만 수익을 계속 관리하기 어렵거나 초보 투자자들에겐 꼭 필요한 상품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또 "운용사들 참여는 필수가 아닌 자율"이라며 "새 펀드를 내지 않고 기존 OCIO 펀드를 디딤펀드로 전환하는 것도 가능해 일부 중소형 운용사들로부터 호응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원리금에 머물고 있는 85% 넘는 퇴직연금 자금을 그대로 뒀다간 우리 국민 노후에 미래가 없을 것"이라며 "원리금 보장 상품 가입자들이 더 편히 실적배당 상품으로 옮겨탈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대안으로 디딤펀드를 구상한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디딤펀드의 규모화까진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일단 출시되면 낮은 변동성과 우수한 성과로 어마어마한 운용 규모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 회장의 임기가 끝난 뒤에도 디딤펀드가 육성될 수 있을지 묻는 말에는 "협회는 디딤펀드가 디폴트옵션의 BF 부문에서 대표상품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신민경/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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