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은행이 도산해도 예금자들의 재산은 5,000만원까지 보호해주는 예금자보호기금.

그런데 이 기금에 매년 적립되는 금액이 정치권의 자존심 싸움에 휘말려 8,000억원씩 줄어들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인지 전범진 기자가 알아봤습니다.

<기자>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은 지난해말.

현행 예금자보호법은 예금보험공사가 금융사로부터 걷는 예금보험료를 한시적으로 상향해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이 규정이 오는 8월 일몰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일몰을 연장하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1998년 법안 제정 당시의 예보료율이 적용됩니다.

현재 예보는 금융사 업종별로 연간 수신의 0.08%에서 0.4%까지 예보료로 받고 있습니다.

만약 8월까지 예금자보호법의 일몰이 연장되지 못한다면, 오는 9월부터 예보료는 0.05%에서 0.15%로 낮아지게 됩니다.

예보 내부에서는 한해에 걷히는 예보료가 전체의 3분의 1, 약 7700억원 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보로 고갈을 막기 위해서는 8월일몰 전에 법안 손질이 절실하지만 현재로서는 전망이 밝지 않습니다.

하나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총 4단계의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금융 관련 법안을 담당하는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금 여야 모두 소집을 거부하며 '개점휴업'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정부와 여당이 반대하는 민주화유공자법과 가맹사업법 개정안의 본회의 직회부안을 단독 처리하면서 모든 의사일정이 중단됐기 때문입니다.

만약 심사가 이번달안에 끝내지 못하면 법안은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고, 다음달 시작되는 22대 국회에서 새롭게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통상 양당이 상임위 구성을 마치는데 2달에서 3달의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국회의 마지막 한달이 일몰을 연장할 수 있는 최후 기한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또한 당국은 부동산PF 부실로 위기에 처한 금융사들이 부도가 나기 전에 예보기금으로 선제적 지원을 하는 금융안정계정 법안도 제출했지만, 이 법안 역시도 정무위에 잠들어 있습니다.

[ 예금보험공사 관계자 : 국회에서 (예보료 일몰 연장에) 별로 이견은 없다고 들었는데 일정상 진행이 안되고 있다고 해서 걱정스럽게 됐습니다. ]

이처럼 정치적 이견이 없는 금융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는 배경에는 우리 정치권 특유의 극단적 대립 문화가 있습니다.

다수석을 쥔 정당은 의석수의 힘으로 자신들의 유권자층이 원하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소수 정당은 법안 심사 자체를 거부하는 방식입니다.

현재 금융권을 둘러싼 각종 리스크가 현실화됐을 때, 정치권의 태업으로 안전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정치인들 역시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지적입니다.

한국경제 TV 전범진입니다.

<앵커>

자세한 이야기 경제부 이민재 기자와 알아보겠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 말도 안되는 이유 때문에 때문에 중요한 법안 처리가 늦어지는 문제, 비단 예보 사례만 있는 건 아닐텐데요.

<기자>

현재 21대 국회에서 계류돼 있는 법안만 1만6천건, 특히 금융을 담당하는 정무위에만 1,300건이 묶여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불법 공매도 차단을 위한 시스템 구축 관련 법안은 5월 29일까지 통과가 안되면 자동 폐기됩니다. 폐기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21대에 임시국회 논의 가능성은 있지만 큰 진전은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앵커>

다른 주요 경제 법안들도 상황은 비슷해보입니다.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법안이 많지 않습니까?

<기자>

네, 상당수 있습니다. 특히 여야 입장 차가 큰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는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금투세는 주식,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5천만원 이상의 소득을 얻은 경우 내는 세금을 말하는데,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라 투자자들이 불만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상속 및 증여세 완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산취득세로 바꾸는 감세안을 검토했지만 제동이 걸렸습니다. 펫보험에서 필수인 진료비 공개 의무화 법안도 문턱을 넘지 못해 실손 청구화처럼 장기 표류할 수 있단 우려가 나옵니다. 2차 가상자산 법안도 논의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입니다.

<앵커>

꼭 필요한 법안 처리가 미뤄지면, 사업을 하려고 이걸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금융권에서도 불만이 많죠?

<기자>

금융과 경영계는 '제도 불확실성'이란 변수가 더해졌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토큰증권(ST) 법제화의 경우 증권사와 업계들이 사업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통과가 안될 경우 타격은 불가피 해 보입니다. 고금리, 고물가, 고유가 '삼고', 경기 침체 등 대내외 변수들이 계속 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앵커>

늘 되풀이되는 일이긴 하지만, 22대 국회가 해야할 일들이 많습니다. 논의하고 처리해야 할 중요한 경제법안들이 많은데, 좋은 인재들이 국회에 많이 입성을 했습니까?

<기자>

전문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됩니다. 예를 들어 정무위를 보면 전(前) 미래에셋대우 사장 홍성국 의원, 전 카카오뱅크 사장 이용우 의원을 비롯해, 경영학과 교수 출신인 윤창현 의원, 금융투자협회 출신인 김병욱 의원 등이 포함된 21대와 달리, 22대는 상대적으로 '금융통(通)'이 적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앵커>

그렇다면, 이른바 '금융이나 경제통'이라고 부를만한 당선자는 누가 있습니까?

<기자>

22대 당선자 중에 금융 관련 거론되는 의원들로는 김현정, 박홍배 당선자 등이 있습니다. 다만, 이들 출신을 고려할 때 이해 관계보다는 한쪽에 치중된 입장을 내비칠 수 있단 의견이 나옵니다. 그 외에는 관 출신들이 많아 금융 전반을 다루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부각됩니다.

<앵커>

경제부처나 금융권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일부 법안들 가운데는 전문성이 필요한 것들도 있습니다. 이번 국회에는 전문성 갖춘 분들이 많지 않다는 건데, 혹시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는 없습니까?

<기자>

일차적으로는 금융 전문성을 고려한 중용이 중요하단 분석입니다. 이와 더불어 일각에서는 최소한의 성과를 위해 제도적 보완이 더해져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립니다. 금융을 전담하는 상임위원회를 신설하는 안이 대표적입니다. 예를 들어 정무위의 경우 다루는 법안이 금융 만 아니라, 공정거래와 보훈 영역까지 포함돼 법안 심사가 정체되고 의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앵커>

금융 전담 상임위를 새로 만든다, 쉽지 않아보이는데, 가능성은 있는 겁니까?

<기자>

절차를 고려하면 상임위 신설까지는 난항이 예상됩니다. 다만, 정무위의 경우 다루는 분야를 나눠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안은 이미 언급된 바 있습니다. 보훈 분야가 대표적입니다. 앞서 윤주경 의원은 보훈을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국방위가 담당하는 안을 추진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 민주유공자법 심사로 6개월 가량 정무위 법안 심사가 중단된 것을 보면, 분리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다만, 당시 이해 관계 문제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는데, 22대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앵커>

잘 들었습니다. 경제부 이민재 기자였습니다.



영상취재 채상균 김성오

영상편집 김정은

CG 심재민


이민재 기자·전범진 기자 tobemj@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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