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로 져도 괜찮아…여자축구 저변 줄어도 걱정 없는 명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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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들도 축구가 일상…취미에 몰입하려 '선수 생활' 시작
이진희 감독 "축구의 재미 느껴서 입부…취미반이 곧 선수반" 2021년 6월 3일 정오쯤, 제29회 여왕기 전국여자축구대회 초등부 조별리그 4조 1차전이 막 끝났다.
강원도 삼척 복합체육공원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는 기록적 점수 차가 나왔다.
창원 의창구의 명서초 여자축구부가 인천 가림초에 1-19로 졌다.
승부는 진작 결정됐다.
전반 스코어가 이미 0-8이었다.
고삐를 늦추지 않은 가림초는 후반에 11골을 더 퍼부었다.
명서초는 이틀 뒤에는 충북 남산초에 또 0-8로 졌다.
당시를 돌아본 이진희 명서초 감독은 지난달 25일 학교 내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상처가 됐을까 걱정되긴 했다"면서도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여자축구에서는 종종 10골이 넘는 점수 차가 난다.
저변이 좁은 종목 특성상 일반 학생을 끌어모아 대회에 참가하는 팀이 나온다.
선수가 없어서다.
주축이 다치기라도 하면 낭패를 본다.
대회에서도 '최소 인원' 팀이 종종 보인다.
서울과 인천의 유일한 초등학교 여자축구부 우이초와 가림초가 그랬다.
두 팀 다 지난달 열린 8인제 춘계한국여자축구연맹전에 8명만 출전했다.
우이초는 5경기, 가림초는 4경기를 8명이 교체 없이 뛰었다.
2017년부터 명서초를 맡은 이 감독이 당당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큰 점수 차로 지더라도 이 학교 여자축구부는 탈 없이 운영된다.
꾸준한 선수 수급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다른 여자축구 지도자들은 새 부원을 구하려 각지를 방문하며 애를 태운다.
하지만 이 감독은 선수 모집에 애를 먹지 않는다.
명서초에 합숙이 없는데도 그렇다.
전국적으로 별도 합숙 시설을 운영하지 않는 여자축구부는 보통 생존이 어려워진다.
남자축구는 상대적으로 운동부를 둔 학교가 많아 기숙사 생활 없이 뛸 팀을 찾기 쉽다.
운동부 한 곳을 찾기 힘든 여자축구는 합숙이 없다면 통학 부담이 커 선수로 생활하기 어렵다.
명서초는 다르다.
비결은 '자체 선수 수급'이다.
이 학교 여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축구고, 이들이 일부러 전문 선수로 등록해 운동부 생활을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전문 선수를 해야 여왕기 등 한국여자축구연맹이 여는 대회에서 전국의 상대들과 맞붙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로 성공하기 위함이 아니라 '여가' 활동에 더 몰입하려 여자축구부에 들어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오전 명서초의 인조 잔디 그라운드에는 여학생들이 축구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소리를 지르며 쏘다니는 아이 중 남학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명서초에는 학급 대항전 '명서 월드컵'이 있다.
남녀부 모두 열린다.
주황색과 노란색 조끼로 서로를 구분해 공을 차던 이 학생들도 다가오는 학급 경기를 준비하러 그라운드에 나왔다.
이 감독은 "여학생들이 보통 축구를 접하기 어려운데, (명서초) 월드컵을 하면서 '축구가 이렇게 재미있구나' 느끼고 팀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명서초의 학생은 총 334명이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여학생인데, 여자축구부가 15명(취미반 2명, 선수반 13명)이다.
여학생 11명 가운데 1명은 축구부원인 셈이다.
최근 체육계에는 '한국 스포츠 위기론'이 대두된다.
7월 개막하는 파리 올림픽에서는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후 48년 만에 출전 선수 수가 200명 아래로 내려가게 됐다.
인구 감소에 따른 체육 저변 약화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여자축구계도 울상이다.
여자축구 전문 선수는 10년 전인 2014년(1천765명)보다 15%가량 줄었다.
지난해 8월 기준 1천570명이 축구협회에 등록됐다.
이 가운데 유소녀로 분류되는 18세 이하 선수는 총 1천113명이다.
역시 10년 전(1천341명)보다 17%가량 쪼그라들었다.
명서초도 저출생 흐름을 피하지 못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학년 별로 4∼5개 반이 있었지만 이제 2∼3개 학급뿐이다.
하지만 여자축구부는 이런 시대적 흐름도 잘 견디며 15∼20명 사이로 부원 수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여왕기(1승 2패)와 추계한국여자축구연맹전(2승 2패)에서 예선도 통과했다.
2010년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U-17) 여자월드컵 우승 주역 여민지(경주 한국수력원자력)·이정은(화천 KSPO) 등을 배출하는 등 과거 명문 시절과 비교하면 신통치 않은 성적이라 생각할 법도 하다.
하지만 이 감독은 만족한다.
그는 "규정상으로 보면 전문 선수지만 사실상 일반 학생들인데 이 정도 성과를 냈다.
우리는 선수반이 취미반이고, 취미반이 선수반"이라고 말했다.
전문 선수와 일반 학생의 경계가 흐릿한 '명서초 모델'이 일반화될 수 있을까.
이 감독은 최소한 12세 이하 수준에서는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스포츠의 즐거움을 아는 아이들이 많아져야 '엘리트'로 성장하고픈 인원도 늘어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스포츠를 '교육의 한 방식'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게 이 감독의 제언이다.
실제로 명서초는 별도 회비가 없다고 한다.
시도 교육청 차원에서 훈련비를 지원받고, 학교도 운영비를 보탠다.
교육 당국자들이 명서초에서 '축구'의 교육적 가치를 인정해준 덕에 이 감독도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을 덜었다.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만' 운영되는 운동부는 명서초에 없다.
이날 방과 후 훈련에 나선 선수 중에 키가 가장 작은 학생은 130㎝ 초반, 가장 큰 학생은 165㎝였다.
30㎝가 넘게 차이 나지만 함께 훈련받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신장이 그 중간 정도 되는 조단비 양이 경합 중 넘어지더니 다리를 잡았다.
그러자 동료들 사이에서 "야 빨리 일어서!"라는 호통이 대번에 나왔다.
조 양은 머쓱한 듯 곧장 압박에 가담했다.
이 감독은 "축구를 교육의 일부로 봐야 성적 압박이 없을 거다.
아이들에게 운동을 더 알게 해주자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팀 아이들은 이제 넘어져도 울지 않는다.
툭 털고 일어선다"며 "이런 모습들이 다 축구를 통해 아이들이 배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진희 감독 "축구의 재미 느껴서 입부…취미반이 곧 선수반" 2021년 6월 3일 정오쯤, 제29회 여왕기 전국여자축구대회 초등부 조별리그 4조 1차전이 막 끝났다.
강원도 삼척 복합체육공원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는 기록적 점수 차가 나왔다.
창원 의창구의 명서초 여자축구부가 인천 가림초에 1-19로 졌다.
승부는 진작 결정됐다.
전반 스코어가 이미 0-8이었다.
고삐를 늦추지 않은 가림초는 후반에 11골을 더 퍼부었다.
명서초는 이틀 뒤에는 충북 남산초에 또 0-8로 졌다.
당시를 돌아본 이진희 명서초 감독은 지난달 25일 학교 내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상처가 됐을까 걱정되긴 했다"면서도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여자축구에서는 종종 10골이 넘는 점수 차가 난다.
저변이 좁은 종목 특성상 일반 학생을 끌어모아 대회에 참가하는 팀이 나온다.
선수가 없어서다.
주축이 다치기라도 하면 낭패를 본다.
대회에서도 '최소 인원' 팀이 종종 보인다.
서울과 인천의 유일한 초등학교 여자축구부 우이초와 가림초가 그랬다.
두 팀 다 지난달 열린 8인제 춘계한국여자축구연맹전에 8명만 출전했다.
우이초는 5경기, 가림초는 4경기를 8명이 교체 없이 뛰었다.
2017년부터 명서초를 맡은 이 감독이 당당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큰 점수 차로 지더라도 이 학교 여자축구부는 탈 없이 운영된다.
꾸준한 선수 수급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다른 여자축구 지도자들은 새 부원을 구하려 각지를 방문하며 애를 태운다.
하지만 이 감독은 선수 모집에 애를 먹지 않는다.
명서초에 합숙이 없는데도 그렇다.
전국적으로 별도 합숙 시설을 운영하지 않는 여자축구부는 보통 생존이 어려워진다.
남자축구는 상대적으로 운동부를 둔 학교가 많아 기숙사 생활 없이 뛸 팀을 찾기 쉽다.
운동부 한 곳을 찾기 힘든 여자축구는 합숙이 없다면 통학 부담이 커 선수로 생활하기 어렵다.
명서초는 다르다.
비결은 '자체 선수 수급'이다.
이 학교 여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축구고, 이들이 일부러 전문 선수로 등록해 운동부 생활을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전문 선수를 해야 여왕기 등 한국여자축구연맹이 여는 대회에서 전국의 상대들과 맞붙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로 성공하기 위함이 아니라 '여가' 활동에 더 몰입하려 여자축구부에 들어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오전 명서초의 인조 잔디 그라운드에는 여학생들이 축구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소리를 지르며 쏘다니는 아이 중 남학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명서초에는 학급 대항전 '명서 월드컵'이 있다.
남녀부 모두 열린다.
주황색과 노란색 조끼로 서로를 구분해 공을 차던 이 학생들도 다가오는 학급 경기를 준비하러 그라운드에 나왔다.
이 감독은 "여학생들이 보통 축구를 접하기 어려운데, (명서초) 월드컵을 하면서 '축구가 이렇게 재미있구나' 느끼고 팀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명서초의 학생은 총 334명이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여학생인데, 여자축구부가 15명(취미반 2명, 선수반 13명)이다.
여학생 11명 가운데 1명은 축구부원인 셈이다.
최근 체육계에는 '한국 스포츠 위기론'이 대두된다.
7월 개막하는 파리 올림픽에서는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후 48년 만에 출전 선수 수가 200명 아래로 내려가게 됐다.
인구 감소에 따른 체육 저변 약화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여자축구계도 울상이다.
여자축구 전문 선수는 10년 전인 2014년(1천765명)보다 15%가량 줄었다.
지난해 8월 기준 1천570명이 축구협회에 등록됐다.
이 가운데 유소녀로 분류되는 18세 이하 선수는 총 1천113명이다.
역시 10년 전(1천341명)보다 17%가량 쪼그라들었다.
명서초도 저출생 흐름을 피하지 못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학년 별로 4∼5개 반이 있었지만 이제 2∼3개 학급뿐이다.
하지만 여자축구부는 이런 시대적 흐름도 잘 견디며 15∼20명 사이로 부원 수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여왕기(1승 2패)와 추계한국여자축구연맹전(2승 2패)에서 예선도 통과했다.
2010년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U-17) 여자월드컵 우승 주역 여민지(경주 한국수력원자력)·이정은(화천 KSPO) 등을 배출하는 등 과거 명문 시절과 비교하면 신통치 않은 성적이라 생각할 법도 하다.
하지만 이 감독은 만족한다.
그는 "규정상으로 보면 전문 선수지만 사실상 일반 학생들인데 이 정도 성과를 냈다.
우리는 선수반이 취미반이고, 취미반이 선수반"이라고 말했다.
전문 선수와 일반 학생의 경계가 흐릿한 '명서초 모델'이 일반화될 수 있을까.
이 감독은 최소한 12세 이하 수준에서는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스포츠의 즐거움을 아는 아이들이 많아져야 '엘리트'로 성장하고픈 인원도 늘어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스포츠를 '교육의 한 방식'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게 이 감독의 제언이다.
실제로 명서초는 별도 회비가 없다고 한다.
시도 교육청 차원에서 훈련비를 지원받고, 학교도 운영비를 보탠다.
교육 당국자들이 명서초에서 '축구'의 교육적 가치를 인정해준 덕에 이 감독도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을 덜었다.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만' 운영되는 운동부는 명서초에 없다.
이날 방과 후 훈련에 나선 선수 중에 키가 가장 작은 학생은 130㎝ 초반, 가장 큰 학생은 165㎝였다.
30㎝가 넘게 차이 나지만 함께 훈련받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신장이 그 중간 정도 되는 조단비 양이 경합 중 넘어지더니 다리를 잡았다.
그러자 동료들 사이에서 "야 빨리 일어서!"라는 호통이 대번에 나왔다.
조 양은 머쓱한 듯 곧장 압박에 가담했다.
이 감독은 "축구를 교육의 일부로 봐야 성적 압박이 없을 거다.
아이들에게 운동을 더 알게 해주자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팀 아이들은 이제 넘어져도 울지 않는다.
툭 털고 일어선다"며 "이런 모습들이 다 축구를 통해 아이들이 배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