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건설社가 과일값 좌지우지?…'자본 놀이터' 된 청과물 도매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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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도매법인 대해부
농산물과 무관한 업체가 대주주
1위 동화청과, 신라교역이 최대주주
웨일인베스트 등 사모펀드도 투자
경매 전권 쥔 도매시장 법인들
농민, 도매법인 통해서만 경매 진행
거래금액 대비 4~7% 수수료 줘야
'농산물값 상승 부추긴다' 의심도
가격 오를수록 수수료 더 많이 받아
배당 281억 챙기지만 판로 확대 소홀
농산물과 무관한 업체가 대주주
1위 동화청과, 신라교역이 최대주주
웨일인베스트 등 사모펀드도 투자
경매 전권 쥔 도매시장 법인들
농민, 도매법인 통해서만 경매 진행
거래금액 대비 4~7% 수수료 줘야
'농산물값 상승 부추긴다' 의심도
가격 오를수록 수수료 더 많이 받아
배당 281억 챙기지만 판로 확대 소홀
“육만구천원에 이백사십삼!”
지난 18일 오전 8시 서울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 내 한 도매시장법인 과일 경매장. 이동식 무대에 올라선 경매사가 마이크를 잡고 낙찰 가격과 낙찰자 번호를 속사포 랩처럼 읊었다. 사과 박스 주변을 서성이던 중도매인들은 무선 응찰기의 숫자 버튼을 연신 눌러댔다. 낙찰까지 소요 시간은 건당 2~3초 남짓. 20여 분 만에 수백 개 사과 박스 경매가 모두 끝났다. 지게차들은 곧장 낙찰된 박스를 중도매인 보관 창고로 실어 날랐다.
사과를 비롯한 농산물 가격이 고공행진을 거듭하자 복잡한 유통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국내 농산물은 주로 ‘생산자-도매시장법인-중도매인-소매업체-소비자’ 경로로 유통된다. 이 같은 유통구조의 중심엔 도매시장법인이 있다. 농산물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이들이 최근 가격 급등을 틈타 막대한 이윤을 챙겨 배당 잔치를 벌이며 정작 본연의 임무인 시장 안정화를 위한 노력은 등한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계에서는 이들이 농산물 도매에 뛰어든 이유를 도매법인의 높은 ‘현금 창출력’ 때문으로 본다. 도매법인은 출하자로부터 통상 경매 낙찰가액(거래금액)의 4%가량을 위탁수수료로 받는다. 하역비 등을 고려하면 도매법인이 가져가는 수수료는 최대 7%에 이른다. 이처럼 안정적인 사업 구조를 바탕으로 가락시장 다섯 개 도매법인은 지난해 평균 21.7%의 영업이익률을 올렸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오른 도매법인을 대상으로 한 인수합병(M&A)도 활발하다. 동화청과는 2010년 동부그룹에 인수된 뒤 칸서스자산운용, 서울랜드(한일시멘트), 신라교역을 차례로 주인으로 맞이하며 네 차례나 손바뀜이 이뤄졌다. 그사이 매각액(기업가치)은 280억원에서 771억원으로 뛰었다. 사모펀드(PEF)도 도매법인 투자에 나섰다. 가락시장에 이어 두 번째 규모인 경기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 내 1위 도매법인인 구리청과의 주인은 PEF 운용사인 웨일인베스트먼트와 포시즌캐피탈파트너스다. 서울 강서시장 도매법인인 서부청과는 아이젠프라이빗에쿼티가 운영하고 있다.
2019년에는 대아청과 인수를 두고 PEF 운용사인 와이어드파트너스와 호반그룹이 경쟁을 벌였다. 결국 호반그룹이 564억원을 들여 인수에 성공했다. 인수 주체인 호반프라퍼티는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 장녀와 차남의 합계 지분율이 50%가 넘는 회사다.
40년이 흐른 오늘날 도매법인이 경매제 도입 당시 부여받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란 지적이 많다. 사업 구조상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더 많은 수수료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농산물 가격 상승세가 두드러진 지난해 가락시장 5대 법인의 순이익 총액은 320억원으로 사상 처음 300억원을 넘어섰다.
도매법인들은 이렇게 얻은 막대한 이윤으로 주주 배당을 대폭 늘리는 등 ‘돈 잔치’를 벌였다. 지난해 5대 법인의 배당총액은 281억원으로 전년 대비 97.9% 급증했다. 중앙청과는 모기업인 태평양개발에 대한 배당을 약 33억원에서 141억원으로 네 배 넘게 늘렸다.
한 도매법인 전직 직원은 “도매법인 주인들이 농산물, 유통업과 관련이 없다는 게 문제”라며 “농산물 판로 확대라는 도매법인의 역할을 무시한 채 꼬박꼬박 수수료 수입을 거두는 ‘현금 창구’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농림축산식품부 고위 관료는 “농민들의 판로 개척을 돕기 위해 시작된 도매법인이 지금은 ‘M&A시장의 총아’가 된 걸 보면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도매법인들은 “영업이익률이 높은 건 위탁수수료 수입이 매출로 잡히는 회계처리상 특성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한 도매법인 관계자는 “전체 거래액을 기준으로 따지면 영업이익률은 0.7%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오형주/김우섭 기자 ohj@hankyung.com
지난 18일 오전 8시 서울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 내 한 도매시장법인 과일 경매장. 이동식 무대에 올라선 경매사가 마이크를 잡고 낙찰 가격과 낙찰자 번호를 속사포 랩처럼 읊었다. 사과 박스 주변을 서성이던 중도매인들은 무선 응찰기의 숫자 버튼을 연신 눌러댔다. 낙찰까지 소요 시간은 건당 2~3초 남짓. 20여 분 만에 수백 개 사과 박스 경매가 모두 끝났다. 지게차들은 곧장 낙찰된 박스를 중도매인 보관 창고로 실어 날랐다.
사과를 비롯한 농산물 가격이 고공행진을 거듭하자 복잡한 유통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국내 농산물은 주로 ‘생산자-도매시장법인-중도매인-소매업체-소비자’ 경로로 유통된다. 이 같은 유통구조의 중심엔 도매시장법인이 있다. 농산물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이들이 최근 가격 급등을 틈타 막대한 이윤을 챙겨 배당 잔치를 벌이며 정작 본연의 임무인 시장 안정화를 위한 노력은 등한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도매법인
도매법인은 농산물 수집은 물론 기준 가격 제공, 대금 결제, 분산 등 역할을 수행한다. 산지에서 생산자가 출하한 농산물은 도매법인이 주관하는 경매를 통해 비로소 가격이 매겨진다. 국내 최대 농산물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는 여섯 개의 청과류(채소·과일) 도매법인이 있다. 서울·중앙·동화·대아·한국청과와 농협공판장이다. 농협이 운영하는 농협공판장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개 도매법인은 최대주주인 모기업이 농산물 유통과 무관한 회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해 도매법인 매출 1위(392억원)인 동화청과는 원양어업 업체인 신라교역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서울청과는 철강회사인 고려제강의 100% 자회사다. 중앙청과는 건설회사인 태평양개발이 100% 지분을 갖고 있다. 서영배 태평양개발 회장은 아모레퍼시픽그룹 창업주인 고(故) 서성환 회장의 장남이다. 대아청과도 호반프라퍼티(51%)와 호반건설(49%) 등 호반그룹 계열사가 주주다. 한국청과는 학교법인 서울학원 일가 경영컨설팅 업체인 더코리아홀딩스가 운영하고 있다.경제계에서는 이들이 농산물 도매에 뛰어든 이유를 도매법인의 높은 ‘현금 창출력’ 때문으로 본다. 도매법인은 출하자로부터 통상 경매 낙찰가액(거래금액)의 4%가량을 위탁수수료로 받는다. 하역비 등을 고려하면 도매법인이 가져가는 수수료는 최대 7%에 이른다. 이처럼 안정적인 사업 구조를 바탕으로 가락시장 다섯 개 도매법인은 지난해 평균 21.7%의 영업이익률을 올렸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오른 도매법인을 대상으로 한 인수합병(M&A)도 활발하다. 동화청과는 2010년 동부그룹에 인수된 뒤 칸서스자산운용, 서울랜드(한일시멘트), 신라교역을 차례로 주인으로 맞이하며 네 차례나 손바뀜이 이뤄졌다. 그사이 매각액(기업가치)은 280억원에서 771억원으로 뛰었다. 사모펀드(PEF)도 도매법인 투자에 나섰다. 가락시장에 이어 두 번째 규모인 경기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 내 1위 도매법인인 구리청과의 주인은 PEF 운용사인 웨일인베스트먼트와 포시즌캐피탈파트너스다. 서울 강서시장 도매법인인 서부청과는 아이젠프라이빗에쿼티가 운영하고 있다.
2019년에는 대아청과 인수를 두고 PEF 운용사인 와이어드파트너스와 호반그룹이 경쟁을 벌였다. 결국 호반그룹이 564억원을 들여 인수에 성공했다. 인수 주체인 호반프라퍼티는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 장녀와 차남의 합계 지분율이 50%가 넘는 회사다.
금(金)사과 틈타 ‘배당 잔치’
그간 농업계에서는 도매법인의 역할과 책임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도매법인은 정부가 1985년 가락시장 등 공영 도매시장을 세우고 소수 도매상에게 경매를 주관하는 독점적 권한을 부여하면서 출범했다. 이전까지 농산물 도매 거래는 위탁상이 담당했다. 하지만 정보 비대칭성을 이용한 위탁상들의 ‘가격 후려치기’로 농민들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가격 결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립하기 위해 경매제를 도입했다.40년이 흐른 오늘날 도매법인이 경매제 도입 당시 부여받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란 지적이 많다. 사업 구조상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더 많은 수수료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농산물 가격 상승세가 두드러진 지난해 가락시장 5대 법인의 순이익 총액은 320억원으로 사상 처음 300억원을 넘어섰다.
도매법인들은 이렇게 얻은 막대한 이윤으로 주주 배당을 대폭 늘리는 등 ‘돈 잔치’를 벌였다. 지난해 5대 법인의 배당총액은 281억원으로 전년 대비 97.9% 급증했다. 중앙청과는 모기업인 태평양개발에 대한 배당을 약 33억원에서 141억원으로 네 배 넘게 늘렸다.
한 도매법인 전직 직원은 “도매법인 주인들이 농산물, 유통업과 관련이 없다는 게 문제”라며 “농산물 판로 확대라는 도매법인의 역할을 무시한 채 꼬박꼬박 수수료 수입을 거두는 ‘현금 창구’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농림축산식품부 고위 관료는 “농민들의 판로 개척을 돕기 위해 시작된 도매법인이 지금은 ‘M&A시장의 총아’가 된 걸 보면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도매법인들은 “영업이익률이 높은 건 위탁수수료 수입이 매출로 잡히는 회계처리상 특성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한 도매법인 관계자는 “전체 거래액을 기준으로 따지면 영업이익률은 0.7%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오형주/김우섭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