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설계자 13명 조명한 신간 '경제 관료의 시대'
장기영 불도저처럼 일 추진, 김학렬은 냉정하게 상황 판단
새벽 4시부터 자정까지 일하며 '한강의 기적' 이끈 경제 관료들
한때 연간 10%를 넘는 초고속 경제 성장을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

고도의 압축성장을 하던 박정희 정부 시기다.

대한민국은 해마다 '상전벽해' 급의 변화를 일궈냈다.

판자촌은 아파트촌으로 바뀌었고, 농사 지역은 제조업 지대로 변모했다.

세계인들은 그런 한국을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보며 찬탄했다.

'한강의 기적'이라 말하면서.
그런 기적을 주도했던 세력이 있었다.

경제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경제 관료들이었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이들도 있었고, 얼음처럼 냉정하게 사리를 판단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때론 절대 권력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자신의 경제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새벽 4시부터 자정까지 일하며 '한강의 기적' 이끈 경제 관료들
그중에서도 경제기획원(옛 기재부) 장관 겸 부총리를 지낸 장기영은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관료였다.

한국은행 부총재 출신으로 한국일보를 창간했던 그는 1964년 부총리에 취임했다.

그는 바쁜 걸 즐기고 한가한 건 견디지 못하는 스태미나 넘치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왕초'라는 별명답게 보스기질마저 강했다.

그러다 보니 밑에 사람들이 초주검이 되기 일쑤였다.

장기영은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부터 직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이를 위해 화장실에도 전화기를 달아 놓았다고 한다.

차관보를 비롯한 관료들은 새벽 4시에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채솟값, 과일값 등 물가 정보를 그에게 보고했다.

경제장관 회의는 일과 후에 열어 보통 통금(자정) 30분 전에야 끝냈다.

그는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1년 365일 일했고, 같은 시간대에 2~3개의 회의를 한꺼번에 소집해 놓고 이 회의실, 저 회의실을 오가며 분주히 일했다.

특히 물가를 잡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고,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고자 대출금리보다 예금금리가 높은 '역금리'를 도입했으며 외자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성장'에 방점을 두고 불도저 같은 스타일로 일을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의중이나 지시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새벽 4시부터 자정까지 일하며 '한강의 기적' 이끈 경제 관료들
장기영의 뒤를 이은 이는 경제기획원 차관이었던 김학렬이었다.

체격 좋고, 호탕했던 장기영과는 달리 김학렬은 마르고 깐깐한 스타일이었다.

그는 상관이었던 장기영에게 거친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을 정도로 강단 있는 인물이었다.

장기영이 성장 일변도 정책을 지향했지만, 1969년 부총리로 취임한 김학렬은 안정도 함께 꾀해야 한다는 지론을 펼쳤다.

둘의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장기영은 김학렬과 2년4개월이나 함께 근무했다.

박 대통령에게 인사권까지 약속받았었기에 마음만 먹었다면 김학렬을 언제든 내칠 수 있었던 장기영이었다.

그런데도 김학렬과 오랫동안 함께 한 건 그가 업무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김학렬은 안하무인격인 태도를 보이고, 입이 거칠었으며 인간적 매력이 떨어졌지만, 누구보다 명석했다고 한다.

김학렬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포항제철을 설립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면서 1972년까지 경제 정책을 전담하며 승승장구했다.

이들 사업 외에는 긴축재정을 펴며 인플레이션을 최대한 억제하려고 노력했다.

장기영 못지않은 일벌레였던 그는 한창때인 49세에 세상을 떠났다.

췌장암 치료 차 부총리에서 물러난 지 2달 만이었다.

새벽 4시부터 자정까지 일하며 '한강의 기적' 이끈 경제 관료들
홍제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이 쓴 '경제관료의 시대'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에 주춧돌을 놓은 경제 관료 13명을 조명한 책이다.

책에는 장기영과 김학렬 외에도 서강학파의 대두로 박정희 정권 후반기 경제 정책을 이끌었던 남덕우 부총리, 한국중화학공업 설계자로서 박 대통령이 '국보'라고 여러 차례 칭했던 오원철 청와대 경제수석, 성장주의에 제동을 걸고 안정을 추구했던 신현확 부총리 등 경제관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에 따르면 13명의 경제 관료는 1908년(백두진)부터 1938년(김재익)까지 대략 한 세대에 걸쳐 분포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조선은행(옛 한국은행) 출신이었다.

13명 중 9명이 장관을 역임했는데, 평균연령이 44.7세에 불과했다.

최연소는 신현확(39세)이었으며 백두진, 송인상, 김학렬, 김정렴은 42~43세에 장관이 되었다.

저자는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 대통령의 최대 치적으로 평가받지만, 이는 결코 대통령 혼자 만들어 낼 수 있는 성과가 아니었다"며 "그것은 지도자의 뛰어난 리더십에 유능한 경제관료들의 정책적 뒷받침이 더해졌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한다.

너머북스. 352쪽.
새벽 4시부터 자정까지 일하며 '한강의 기적' 이끈 경제 관료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