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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범한 사기꾼' 리플리, 이번엔 흑백 드라마로 정신을 빼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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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드루 스콧 주연, 넷플릭스 8부작 <리플리: 더 시리즈>
    맷 데이먼의 <리플리>(1999)보다 세밀해진 범죄극
    넷플릭스 <리플리: 더 시리즈>
    넷플릭스 <리플리: 더 시리즈>
    1961년 뉴욕. 톰 리플리(앤드루 스콧)가 선박업체 사장에게 뜻밖의 요청을 받는다. 자신의 아들 디키 그린리프(조니 플린)가 이탈리아에서 방황하고 있다며, 직접 가서 그를 데려와달라는 것. 그들에게 톰은 명문대 출신의 믿음직한 청년으로 보인다. 사실 문서 위조가 전문인 사기꾼인데.

    부호의 마음을 뺏는 데 성공한 톰은 그가 건넨 돈과 명품 옷까지 챙겨 출발한다. 이탈리아의 고급 휴양지 아트라니. 해변에 팔자 좋게 늘어진 디키, 그의 연인 마지(다코타 패닝)가 보인다. 톰이 우연히 마주친 척 미소를 짓는다. ‘나 기억 안 나? 우리 친구잖아.’
    넷플릭스 <리플리: 더 시리즈>
    넷플릭스 <리플리: 더 시리즈>
    지난 4일 공개된 넷플릭스 8부작, <리플리: 더 시리즈>의 시작은 낯익다.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영화 <리플리>(1999)에서 맷 데이먼이 연기했던 그 톰 리플리의 이야기가 맞다.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의 소설에서 태어난 이 특별한 사기꾼은, 1960년 프랑스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알랭 들롱의 모습으로도 재현됐다.

    이 익숙한 이야기를 다시 볼 이유가 있을까. 심지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스티븐 자일리언은 지루해지기 딱 좋도록 흑백 화면을 선택했다. 1995년 <쉰들러 리스트>로 오스카 각본상을 받았고, <머니볼>(2012), <아이리시맨>(2020) 등을 썼던 그의 승부수는 성공한 것 같다. <리플리: 더 시리즈>에는 잘 만든 범죄물과 심리 스릴러가 주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새롭다. 이번 톰을 연기한 앤드루 스콧은 40대 중반(1976년생)이다. <태양은 가득히>의 알랭 들롱이 보여준, 눈부신 청춘의 느낌이 없다. 미남도 아니고 체구도 크지 않다. 이 때문에 형사 라비니(마우리치오 롬바르디)와 맞설 때는 주인공답지 않게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다.

    영화 <리플리>의 톰(맷 데이먼)처럼 '마이 퍼니 발렌타인’을 부르며 디키(주드 로)의 마음을 사로잡던, 로맨틱한 천재도 아니다. 그는 용의주도하고 꿋꿋한 범죄자 그 자체다. 드라마는 건조한 시선으로 그의 고요한 표정, 말 없는 뒤통수, 흉기 앞에서 망설이는 손가락을 관찰한다.
    넷플릭스 <리플리: 더 시리즈>
    넷플릭스 <리플리: 더 시리즈>
    범죄극은 8부작으로 펼쳐지며 더욱 세밀해졌다. 바다에서 디키를 처리하고 수습하는 장면은 영화보다 긴 호흡이지만 밀도가 높다. <태양은 가득히>를 신선한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디키의 시신’과 그 행방 또한 다르게 흘러간다.

    디키의 친구이자, 톰을 의심하는 프레디 마일스(엘리엇 섬너)와의 재회, 범행 수법 또한 살짝 다르다. 소년처럼 여리여리한 프레디는 모호한 성적 정체성으로 톰의 내면을 건드린다. 톰이 신은 것이 디키의 페라가모 구두인 것을 알아채고 비웃는 것도 그다.

    분명한 것은, 영화 <리플리>의 덩치 큰 프레디(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이 인상적으로 연기한)보다 ‘부축’하기엔 가벼워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대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엘리베이터, 로마의 밤을 말없이 오가는 택시 기사들, 범행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미소 짓는 호텔 직원들. 그 속에서 톰은 자신의 범행을 수습하느라 끊임없이 선택하고 결단한다.
    넷플릭스 <리플리: 더 시리즈>
    넷플릭스 <리플리: 더 시리즈>
    이 과정이 주는 순수한 스릴은 1950~60년대 프랑스 범죄영화, 필름 누아르의 명작들을 떠올리게 한다. 범죄의 준비와 수행, 수습 과정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따라가던 <두 번째 숨결>(1966),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9)의 숨 막히는 분위기가 <리플리: 더 시리즈>에도 있다.

    분위기가 차갑고 건조하지만은 않다. 이탈리아의 아트라니, 로마, 베네치아 등의 아름다운 풍경, 조각상과 건축물들이 사건 사이사이를 채운다. 톰은 이곳에서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지오의 그림에 매혹된다. 폭행,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치는 중에도 명작들을 그려냈다는 점 때문일까.

    섬뜩할 정도로 생생한 카라바지오의 그림들은 드라마의 시공간을 어느새 공유한다. 음영이 뚜렷한 그의 그림들은, 막바지 톰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열쇠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톰은 그림을 볼 줄 아는 똑똑한 인물이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재능이 없었던 디키와는 다르다.

    그림에 대한 감식안은 마지막 도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엔딩이 크게 갈리는 것도 이 지점이다. 어떤 식으로든 파국을 맞았던 두 편의 영화와 달리, 이번 드라마의 톰은 나름대로 열린 결말을 맞는다. 그를 쫓던 형사 라비니에게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 <리플리: 더 시리즈>
    넷플릭스 <리플리: 더 시리즈>
    이 때문에 ‘시즌 2’가 제작될 것이란 소문이 돈다. 감독 스티븐 자일리언은 ‘더 랩’과의 인터뷰에서 원작자 하이스미스의 소설에 대한 권리를 모두 확보했다며, 새 시즌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뒀다.

    도주하던 카라바지오는 묘비도 없이 묻혔고, 시신은 사라졌다. 톰 리플리의 결말은 또 어떨까. 비천하지만 비범한 사기꾼 이야기는 몇십년이 지나도 우릴 매혹시킨다.

    김유미 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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