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악축제 달군 한경아르떼필… 절제와 연마로 완성한 큰 음악
국공립 20곳, 민간교향악단 3곳 초청 화제
윌슨 응 지휘 한경아르떼필하모닉 호연 돋보여
에스메 콰르텟 협연 쇤베르크 뜨거운 호응
말러 교향곡 5번은 타악과 금관 돋보여
다이내믹한 흐름에 바다 헤엄치는 듯한 피날레
2악장의 공격적인 도입부에서 저역현의 윤택함이 돋보였다. 고급진 야성미랄까. 분출하면서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이성적인 연주는 절제와 연마를 바탕으로 하며 ‘스토이시즘(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이란 단어를 연상시켰다. 무게중심이 잡힌 현과 타악 사이를 금관이 틈입하면서 두꺼운 사운드를 객석에 보냈다. 특히 첼로군의 노래는 감동적이었는데, 따스함이 강조된 현악군이 연마된 소리를 내줬다. 느긋한 템포 속에서 바이올린의 최고음과 이례적인 힘으로 두드리는 팀파니가 인상적이었고, 최후의 총주는 찬란했다.
3악장에서는 특히 객원 호른수석 보라 데미르(베를린 도이치 심포니)의 크고도 놀라운 연주가 악단 전체를 견인했다. 벨 부분을 하늘로 치켜든 클라리넷이 절규했고 플루트의 지저귐이 어우러졌다. 빈 왈츠의 느낌 후 렌틀러로 전환될 때의 표현은 꿈결 같았다. 윌슨 응은 서두르지 않고 모든 소리를 다 내도록 독려했다. 호른과 첼로/비올라의 대화에서도 고독하기보다는 고급진 사운드가 흘렀다. 해석상 템포를 일부러 느리게 가져가다 점점 빠르게 하면서 다이내믹 레인지를 늘리는 효과를 여러 번 쓰는 것 같았다. 타악기의 세부가 명료하게 들리는 것도 이번 공연의 특징이었다. 하프 주자가 현에 손을 얹고 준비하는 게 보이더니 4악장 아다지에토가 시작됐다. ‘베니스에서 죽다’, ‘헤어질 결심’, ‘타르’,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등 수많은 영화에 등장해 모르는 사람이 없어진 그 선율이다. 반음계가 ‘쿵’하고 내려앉을 때마다 하프가 허허로운 공백을 메워줬다. 현은 두꺼우면서도 따스하고 여유로웠다. 윌슨 응은 몇 군데에서 완급조절을 했고 바이올린군의 고음이 아름답게 벼려져 나오기도 했다. 대양을 헤엄치는 듯한 피날레는 잊히지 않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아다지에토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5악장이 시작됐다. 각 악기군이 톱니바퀴처럼 갈마들며 맞아떨어졌다. 클라리넷과 플루트의 이야기가 뚜렷했다. 거대한 돌림노래 같은 이 악장의 한가운데에서 단정하게 표정을 살리기도 했다. 막바지라 금관군의 긴장감이 풀어질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느긋하고 의연함을 유지했다. 팀파니의 연타 속에 그를 중심으로 좌우에 포진한 심벌즈의 타격은 장관을 이뤘다. 윌슨 응과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은 앙코르로 아다지에토를 다시 한 번 연주했다. 곡이 끝났어도 ‘삐’ 하는 휴대폰 동영상 촬영음이 정적을 깰 때까지 이어진, 1층부터 3층까지 자리한 청중의 무거운 침묵은, 그 어떤 총주보다도 거대하게 다가왔다. 이날 공연은 윌슨 응으로서도 한경아르떼필하모닉으로서도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았다.
글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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