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통해 "외교장관에 사의 표명" 밝혀… 외교부 "사의 수용"
임명 25일만…'수사 회피' 논란 속 총선 리스크 커지자 거취 결정
이종섭 호주대사 전격 사임…"서울 남아 모든 절차에 대응"(종합2보)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를 받아온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9일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스스로 거취를 정리했다.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지 25일만이자, '수사 회피' 논란 속에 현지에 부임 후 지난 21일 방산 협력 주요 공관장회의 참석차 다시 귀국한 지 8일 만이다.

이 대사를 대리하는 김재훈 변호사는 이날 기자들에게 공지를 보내 "이 대사가 오늘 외교부 장관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 대사는 "저는 그동안 공수처에 빨리 조사해 달라고 계속 요구해왔으나 공수처는 아직도 수사기일을 잡지 않고 있다"면서 "저는 방산 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가 끝나도 서울에 남아 모든 절차에 끝까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김 변호사가 전했다.

이 대사는 "그러기 위해 오늘 외교부 장관께 주호주 대사직을 면해주시기를 바란다는 사의를 표명하고 꼭 수리될 수 있도록 해주실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외교부는 출입기자단 공지를 통해 "이 대사 본인의 강력한 사의 표명에 따라 임명권자인 대통령께 보고드려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대사와 같은 특임공관장의 경우 외교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용한다.

따라서 사의 수리도 실질적으로는 대통령 재가를 거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이었던 지난해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한 채상병 사건 관련 기록을 회수하도록 지시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등에 의해 고발됐다.

공수처는 이 대사를 피의자로 입건하고 지난해 12월 출국금지 조치했으나 지난 4일 주호주대사로 임명되면서 핵심 피의자를 해외로 도피시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공수처는 대사 지명 이후인 이달 7일 이 대사를 불러 4시간가량 조사했으며 법무부는 이튿날 당사자의 이의 신청을 받아들여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논란이 커지자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과 박성재 법무부 장관, 조태열 외교부 장관 등을 범인 도피와 직권 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하기도 했다.

공수처도 이 대사의 출국금지 해제에 반대했으며 반드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대사는 이에 부임 후 11일 만인 21일 방산 협력 주요 공관장회의 참석을 이유로 귀국했다.

이 대사는 지난 19일, 21일, 27일 세 차례에 걸쳐 공수처에 의견서를 내고 소환 조사를 촉구했으나, 공수처는 증거물 분석 작업이 아직 진행 중이고, 참고인 조사 등이 아직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당분간 이 대사를 소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총선 전 이 대사를 조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귀국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해 외교부가 회의를 급조했다는 의혹 등이 이어지고 자신의 거취가 총선 리스크로 부상하자 이 대사가 결국 스스로 물러나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사는 전날 외교부 청사에서 방산 협력 주요 공관장회의 참석자가 모두 자리한 가운데 종일 열린 합동회의에는 정상적으로 참석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 방산협력 공관장 회의 일환으로 예정돼 있던 한국무역보험공사 방문에는 불참했다.

오후에는 공관장들의 한국수출입은행 방문 일정이 잡혀 있다.

이 대사는 그간 채상병 사건에 외압을 행사하지 않았고, 군에 수사권이 없으므로 법리적으로도 직권 남용 혐의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 대사의 사의 표명 처리에 대해 "향후 절차는 관련 법령에 따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사와 같은 특임공관장의 경우 외교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용한다.

따라서 사의 수리도 실질적으로는 대통령 재가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