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엔비디아가 말레이시아를 ‘픽’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말레이시아를 새로운 AI 데이터센터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포부까지 내비쳤다. 말레이시아를 선택한 것은 엔비디아뿐만이 아니다. 오스트리아의 AT&S, 미국의 인텔, 독일 인피니언 등도 말레이시아를 반도체 생산기지로 활용키로 했다. 느닷없는 말레이시아의 부상은 반도체 생산기지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10년 전만 해도 반도체 공급망 중심지는 한국, 대만, 중국이었다.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은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해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었다. 중국도 자체적으로 반도체 기업을 육성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붕괴는 판도를 바꿔놓았다. 여기에 AI 시대로의 진입이라는 변수까지 등장하며 반도체 생산기지의 본격적인 재편이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치열해진 경쟁…뜨는 말레이시아말레이시아가 새로운 반도체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3월 13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말레이시아가 새로운 반도체 생산거점으로 뜨고 있다고 전했다. “지정학적 마찰은 세계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첨단기술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반도체와 같은 중요한 분야의 기업은 공급망과 생산 능력을 강화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오스트리아 반도체 기판 업체 AT&S는 이미 2021년부터 말레이시아에 20억 달러 규모의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안드레아스 거스텐마이어 AT&S CEO는 “20년간 중국에 투자해왔지만 공급망을 다각화해야 한다는 게 분명해졌다”고 투자 이유를 밝혔다. AT&S는 2020년부터 탈중국을 위한 신규 투자처를 찾기 시작했고 말레이시아로 확정하기 전까지 30개 국가를 검토했다. 말레이시아에 공장을 짓거나 기존 사업을 확장하기로 결정한 게 AT&S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의 인텔, 독일 시스템반도체 기업 인피니언은 각각 70억 달러(약 9조원)를 투자했으며 AI반도체 1위 기업인 미국 엔비디아는 현지 대기업인 YTL파워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43억 달러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설립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는 “말레이시아가 AI 데이터센터의 허브가 될 것”이라며 “말레이시아는 강력한 제조 역량이 있어 중앙 인프라 센터 허브로 부상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국가”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엔비디아는 말레이시아를 자사 아시아 사업의 핵심 국가로 선정하고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이외에도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에릭슨, 보쉬, 램리서치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말레이시아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심화하면서 탈중국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데 말레이시아는 ‘차이나 플러스 원(+1)’ 전략에 가장 부합한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말레이시아가 새로운 생산거점으로 관심을 받는 것은 미·중 대립 속에서 ‘중립국’이라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1950년대부터 미국과 수교를 시작했다. 미국이 1957년 쿠알라룸푸르 주재 총영사관을 대사관으로 승격하면서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수립됐다. 2014년 들어서는 포괄적 동반자 협정을 맺고 경제, 안보, 교육, 과학기술 등 중요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동시에 말레이시아는 중국과도 우호관계다. 말레이시아는 1974년 중국과 수교한 뒤 정치, 경제 등의 분야에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중국은 자국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국가에 판다를 보내고 있는데 말레이시아에는 수교 40주년을 맞는 2014년에 판다 2마리를 임대하기도 했다. 여기에 △첨단 설비 △저렴한 인건비도 말레이시아가 가진 매력이다. NYT는 “말레이시아는 중국, 미국과 오랜 경제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공장을 설립하기에 매력적”이라며 “지정학적 변화를 고려할 때 말레이시아가 새로운 반도체 공급망의 연결고리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또 TSMC가 있는 대만에 대한 우려로 말레이시아가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만은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있는 지역인 탓에 대만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글로벌 반도체 패키징·조립·테스트(후공정) 시장점유율을 2030년까지 15%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점유율은 13%다.미국에서 중국까지1980년대까지 반도체 주요 생산국은 미국과 일본이 전부였다. 미국은 1958년 반도체가 처음 발명된 지역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이 성장했다. 일본은 1970년대 들어 전자기기 경쟁력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반도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고, 직접 생산까지 이르게 됐다. 특히 1951년 반독점 규제로 미국 AT&T 자회사 웨스턴일렉트릭이 특허를 개방한 결정은 훗날 일본 반도체 경쟁력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1990년대 들어 이 시장은 미국-일본-한국-대만 등으로 세분화된다. 컴퓨터 등 IT 기기의 발전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자 삼성전자가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메모리는 산업 특성상 호황-불황의 편차가 심하고 세계경제의 영향을 받는 탓에 인텔, 엔비디아, AMD, 퀄컴 등이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에 눈을 돌렸고 이때 ‘위탁생산’이라는 신사업을 찾아낸 대만의 TSMC의 영향력도 커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다국적기업의 생산시설이 몰리게 됐고, 이 시기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도 저렴한 인건비, 지리적 근접성 등을 고려해 우시, 시안 등에 공장을 설립했다.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00년에는 일본(32%)과 미국(24%)이 반도체 생산 점유율 과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2020년 들어서는 대만-한국-중국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2020년 기준 대만이 점유율 23%로 1위를 기록했고, 한국(21%)과 중국(17%)이 뒤를 이었다. 반면 미국과 일본의 합산 점유율은 26% 수준까지 떨어지며 과거 영향력을 잃었다. 다양한 국가에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면서 2000년대 이후 전 세계 반도체 생산거점은 한국,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대만, 중국 등으로 다양해졌다. 이들 6개국의 점유율이 전체 반도체 공급망의 90% 이상을 차지했다.첨단 반도체 공급망 싸움…불안한 한국최근 들어서는 공급망을 확보려하는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분위기다. 인도는 세계 반도체 허브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인도의 아쉬위니 바이슈나우 전자정보통신부 장관은 인도를 세계 5대 반도체 국가 중 하나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CNBC는 “인도가 5년 안에 반도체 제조 강국이 되고 싶어 한다”며 “메이드 인 인디아 칩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려는 계획”이라고 전했다. 독일도 새로운 공급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곳곳에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TSMC는 독일 드레스덴에도 100억 유로(약 14조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 여기에 독일 최대 반도체 기업인 인피니언도 50억 유로(약 7조원)를 투자해 공장을 신설하고, 인텔 역시 독일에 300억 유로(약 42조원)를 투자한다. 유럽은 독일뿐만 아니라 영국, 폴란드, 이탈리아, 프랑스 등도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지원금을 확대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EU는 2022년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반도체 생산시설에 430억 유로(약 60조원)를 지원하는 법안을 시행하고 있다. EU는 현행 10% 수준인 반도체 점유율을 2030년까지 20%까지 늘릴 계획이다. ‘첨단 공정’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첨단 공정은 이론적으로 7nm(나노미터, 10억분의 1m) 이하 공정을 의미하며, 선진 공정은 7나노 이상의 공정을 포함한 한 자릿수 공정을 의미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반도체 첨단 제조 공정 점유율은 대만이 68%로 압도적이다. 이어 △미국 12.2% △한국 11.5% △중국 8% 등이다. 트렌드포스는 공급망 싸움이 치열해질 경우 대만의 입지는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7년 점유율은 △대만 60% △미국 17% △한국 13% △중국 6% △일본 4% 등으로 전망된다. 트렌드포스는 “첨단 공정에서는 미국이, 선진 공정에서는 중국이 영향력을 늘릴 것”이라고 관측했다. SEMI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말까지 총 31개의 반도체 공장을 신설할 계획이다. 같은 시기 대만(19개), 미국(12개)보다 많은 수치다.공급망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한국 입지는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트렌드포스는 중국, 미국 등 정부 인센티브와 현지 생산 보조금 영향으로 대만과 한국의 파운드리 반도체 전체 생산능력이 현재 46%, 12% 등에서 각각 41%, 10% 등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내년 1월부터 미국 플로리다주가 14세 미만의 SNS 가입을 금지한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지난 25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한 미성년자 온라인 보호 법안에 서명한 뒤 공포했다. 법안은 14세 미만 어린이의 SNS 계정 보유 금지에 더해 14~15세 어린이의 경우 부모 동의가 있을 경우에만 SNS 계정을 개설할 수 있도록 했다.디샌티스 주지사는 성명에서 "SNS는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해를 끼친다"라면서 "HB 3는 부모가 자녀를 보호할 수 있는 더 큰 능력을 제공한다"라고 말했다.미국 내에서는 아칸소, 캘리포니아, 루이지애나, 오하이오, 유타주 등이 유사한 법안을 추진했다.이 가운데 오하이오주 법은 지난 2월 범위가 넓어서 청소년의 온라인 정보 접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연방법원의 판결에 따라 시행이 중지된 상태라고 CNN 방송은 전했다. 아칸소의 경우도 지난 2월 법 시행이 법원에 의해 일시 중단됐다.김경림 키즈맘 기자 limkim@kizmom.com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발발한 지 6개월 만에 즉각적인 휴전과 인질 석방을 요구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이 처음으로 채택됐다. 중국·러시아와 번갈아 가며 거부권을 행사해오던 미국의 기권으로 이번에는 휴전 결의안이 전격 통과됐다. 이스라엘은 ‘자기 방어권’을 내세워 전쟁을 지지했던 미국까지 사실상 등을 돌리자 이스라엘 대표단의 미국 방문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14개국 ‘찬성’으로 결의안 채택유엔 안보리는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공식회의를 열고 이사국 15개국 중 미국을 제외한 14개국의 ‘찬성’으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즉각적인 휴전과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결의안 2728호를 채택했다. 이번 결의안은 한국 일본 스위스 등 10개 비상임 이사국이 공동으로 제안했다. 결의안은 “라마단(이슬람 금식 성월)의 남은 기간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demand)하며, 분쟁 당사자의 존중하에 항구적이고 지속가능한 휴전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휴전 외에도 하마스에는 모든 인질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석방을, 이스라엘에는 인도적 지원 제공을 위한 가자지구 접근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선 작년 10월 이후 하마스 침공에 따른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지금까지 3만2333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고 7만4694명이 다쳤다. 남부로 몰려든 피란민은 물과 식량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이번 안보리 결의는 이스라엘에는 강력한 정치적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마지막 남은 미점령지 라파에 지상군을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을 지지해온 조 바이든 미 대통령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140만 명의 피란민과 주민들이 밀집한 곳을 공격하면 인도주의적 재앙이 우려되기 때문이다.전쟁을 지지해 온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이날 이스라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매일 밤 건물이 사람들 위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봤다”며 “이스라엘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지만 때로는 그렇게 해선 안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모두를 위해 전쟁을 끝내고 평화와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美 “구속력 없는 결의” 발언 논란이스라엘은 해당 결의안에 강력하게 반발하며 전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안보리 결의 직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항의 표시로 이날 예정된 고위 대표단의 미국 방문을 취소했다. 네타냐후 정부는 전쟁 전까지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직면했고, 하마스 기습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어 전쟁을 지속하는 것 외엔 선택지가 마땅치 않다는 분석이다.또한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가 이날 안보리 결의 채택 후 “구속력이 없는 결의”라고 언급해 논란이 불거졌다. 통상 안보리는 ‘유엔 회원국에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는 결정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지만 안보리가 회원국에 결의 이행을 실질적으로 강제할 수단은 없다.안보리 결의로 이스라엘을 멈춰 세우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안보리 결의가 국제법으로 간주되고 중대한 정치적·법적 무게감이 있지만 이행을 강제할 수단은 없다”고 분석했다. 결의 위반 시 경제 제재 등으로 압박할 수는 있지만, 미국이 이스라엘 상대로 강제력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2016년에도 안보리가 이스라엘에 서안지구 내 정착촌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하마스도 인질의 무조건 석방을 거부하고 팔레스타인 수감자와 교환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