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은행권 퇴직연금 적립금이 사상 처음 200조원을 돌파했다. 증권사와 보험사를 중심으로 한 연금 투자(약 180조원) 열기가 은행권으로 번지면서다. 노후 대비를 원하는 이들이 원금 보장 상품에 묵혀두던 자금을 본격적으로 굴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퇴직연금 가입자 급증

26일 금융감독원과 은행권에 따르면 국내 12개 은행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달 말 기준 200조원을 넘어섰다. 2019년 100조원 문턱을 넘어선 뒤 5년 만에 100조원이 불어났다.
은행 '연금 고수' 수익률은 5년간 74%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이후 금융소비자가 증권 계좌를 통해 공격적으로 연금 투자를 하던 ‘1차 붐’에 이어 은행권에서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공격적인 성향의 증권사 고객과 달리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은행 고객까지 퇴직연금에 뭉칫돈을 넣기 시작했다. 연금 투자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저조한 수익률 때문이다. 작년 한 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의 확정급여형(DB) 원리금 보장 퇴직연금의 10년 수익률은 평균 1.84%에 그쳤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저수익에 지친 고객 중에 DB형에 묵히던 연금을 직접 투자가 가능한 확정기여형(DC)으로 옮기거나 노후를 위해 개인형퇴직연금(IRP)에 가입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은행은 IRP 가입 고객이 2020년 97만8954명에서 작년 말 115만5587명으로 늘었다. 이들이 굴리는 연금 규모는 같은 기간 4조2743억원에서 9조5042억원으로 122%로 급증했다.

◆연금 고수 포트폴리오 첫 공개

연금 고수들의 성적표는 남달랐다. 한국경제신문이 작년 국내 은행 퇴직연금 수익률 1위를 차지한 하나은행의 연금 고객 전체 계좌를 분석한 결과, 수익률 상위 100명의 5년 누적 수익률이 73.7%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평균 10.4% 수익률을 기록한 셈이다.

장기 투자를 목적으로 미국 빅테크와 글로벌 반도체 관련 주식형 상품에 가입한 덕분이었다. 이들은 ‘피델리티 글로벌테크놀로지 펀드’ ‘하나글로벌4차산업1등주플러스 펀드’ 등을 포트폴리오에 주로 담았다. 피델리티 글로벌테크놀로지와 하나글로벌4차산업1등주플러스 펀드의 5년 수익률은 각각 132.64%, 119.63%에 달했다.

5년간 200% 넘게 수익을 낸 상품도 있었다. ‘삼성KODEX미국빅테크10’(242.20%), ‘미래에셋TIGER 2차전지테마’(200.35%) 등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대부분의 투자자가 빈번한 매매 없이 3년 이상 장기 보유를 통해 성과를 냈다”고 분석했다. 대신 연금 고수들은 투자 상품 비중을 60% 수준으로 제한했다. 급격한 수익률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저축은행 정기예금, GIC(이율보증형보험),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등 원금 보장 및 채권 상품에 40%를 분산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에 눈을 뜬 연금 투자족을 잡기 위한 시중은행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연금사업 조직을 확대하거나 연금 고객 전용 상품, 라운지를 늘리는 은행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