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머니전쟁] ① 바뀐 게임의 규칙…'국가대항전' 된 보조금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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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칩' 확보하고 中견제하려는 미국·'반도체 르네상스' 꿈꾸는 일본
'국가주도 육성 원조' 중국에 EU까지 가세…더는 '반칙' 아닌 '뉴노멀'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이 거액의 보조금을 주면서 첨단 반도체 기업의 생산 시설을 자국에 유치하려는 경쟁이 날로 격화하고 있다.
과거 이런 방식의 기업 지원은 공정한 자유무역 질서를 저해하는 '반칙'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미중 전략 경쟁이 불을 댕긴 '칩 워'(반도체 전쟁)가 격화하고 반도체 산업 경쟁 구도가 기업 간 경쟁에서 국가 클러스터 간 대항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이제 보조금을 통한 첨단 반도체 투자 유치는 점차 '뉴노멀'이 돼가는 모습이다.
◇ 미국이 불붙인 '보조금 전쟁'…일본도 적극 '참전'
2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 반도체 산업 지형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전략 경쟁 상대인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보조금 전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국가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반도체 지원법을 제정,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생산 보조금 총 390억달러(약 52조2천억원), 연구개발(R&D) 지원금으로 총 132억달러(약 17조7천억원) 등 5년간 총 527억달러(약 70조5천억원)를 지원한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자국 기업 인텔에 반도체법상 최대 규모인 195억달러(약 26조1천억원)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자국 기업 인텔에 이어 한국의 삼성전자, 대만의 TSMC 등에도 대규모 보조금 지급을 예고하면서 반도체 기업들의 자국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텍사스주 파운드리 공장에 170억달러(약 22조8천억원) 이상을 투자한 삼성전자도 60억달러(약 8조원)의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가드레일' 조항으로 중국 내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장하는 데 제한을 받는다.
미국으로서는 자국 투자를 유도함과 동시에 경쟁 상대국인 중국을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전략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지난달 24일 구마모토현에 위치한 TSMC 제1공장이 개소하면서 반도체 보조금 투입을 통해 '반도체 생산 르네상스'를 되찾겠다는 일본 정부의 계획이 첫 구체적 성과물을 낳았다.
일본은 TSMC 제1공장 설비 투자액의 절반 가까운 최대 4천760억엔(약 4조2천억원)의 보조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 TSMC가 2027년 말 가동을 목표로 구마모토현에 지을 예정인 제2공장에도 약 7천300억엔(약 6조5천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두 공장에만 10조원이 넘는 일본 정부 보조금이 투입된다.
일본 정부는 아울러 도요타와 NTT 등 자국 대기업들이 협력해 만든 반도체 제조사인 라피더스에도 9천200억엔(약 8조1천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첨단 반도체 생산국으로의 부활을 적극적으로 도모하고 있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기초 기술과 소재·장비 분야에서 일본이 가진 장점이 여전하다"며 "구마모토 반도체 공장 가동은 일본이 제조업 중심 경제 부활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 흔들리는 반도체 판도…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중국은 국가 주도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을 가장 먼저 강력히 시행한 나라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이래 중국은 10∼30%에 불과한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까지 높인다는 야심 찬 목표 아래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비효율과 부패 논란 속에서도 60조원대에 달하는 거대한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일명 대기금)를 필두로 각 지방정부, 국유기업, 민간기업이 가세해 수백조원을 쏟아붓는 집요한 노력이 이어졌다.
대기금 주도 투자금 외에도 각 지방정부가 책임지고 관내 반도체 기업의 시설 투자부터 연구개발, 운영까지 다양한 경로로 자금을 지원한다.
일례로 '중국판 TSMC'인 SMIC(中芯國際·중신궈지)는 반도체 설계회로 패턴을 새기는 노광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정부 보조금을 활용해 타국 경쟁사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포토레지스트 필름을 소모해가며 미세 공정 기술을 발전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EU도 보조금 경쟁에 가세했다.
EU는 현재 약 10%인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30년까지 20%로 2배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반도체법은 작년 9월 시행됐다.
33억유로(약 4조8천억원)에 달하는 예산과 민간 자금 투자금을 포함해 총 430억유로(약 62조3천억원)를 동원한다는 구상이다.
미국을 필두로 한 반도체 산업 지형 재편이 '세계 반도체 생산의 한국·대만 양강 구도'를 흔드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대만도 자국 반도체 클러스터 경쟁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대만 정부는 라이칭더(賴淸德) 총통 당선인이 선거 기간 제안한 '타오위안·신주·먀오리 대(大)실리콘밸리 계획'을 지난달 승인했다.
대만의 수도권 서남부에 16㎢에 달하는 과학단지용 신규 용지를 마련하고, 2027년까지 4년간 1천억 대만달러(약 4조2천억원) 이상의 공사비를 투입한다.
라이 당선인은 대만 경제 핵심인 반도체 산업을 '세계 무적'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이 크게 판을 흔들고, 일본과 EU가 이를 기회로 반도체 산업에서 자국의 입지를 넓히려는 가운데 기존 생산 거점인 한국과 대만은 전략 산업인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첨단 산업과 전략무기 체계에서 반도체의 중요성이 한층 커지면서 과거 반칙으로 여겨지던 정부의 대규모 보조금 지원이 이제는 새로운 질서로 굳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조상현 원장은 "과거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비관세 장벽을 쌓거나 보조금을 주는 등 행위를 비도덕적인 것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규칙이 바뀌었다"며 "자국 중심주의 대두 속에서 제조업 유치를 통한 국내 경제 안정 등 여러 이유로 막대한 보조금 지급하면서 전략 산업을 유치하는 것이 뉴노멀이 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국가주도 육성 원조' 중국에 EU까지 가세…더는 '반칙' 아닌 '뉴노멀'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이 거액의 보조금을 주면서 첨단 반도체 기업의 생산 시설을 자국에 유치하려는 경쟁이 날로 격화하고 있다.
과거 이런 방식의 기업 지원은 공정한 자유무역 질서를 저해하는 '반칙'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미중 전략 경쟁이 불을 댕긴 '칩 워'(반도체 전쟁)가 격화하고 반도체 산업 경쟁 구도가 기업 간 경쟁에서 국가 클러스터 간 대항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이제 보조금을 통한 첨단 반도체 투자 유치는 점차 '뉴노멀'이 돼가는 모습이다.
◇ 미국이 불붙인 '보조금 전쟁'…일본도 적극 '참전'
2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 반도체 산업 지형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전략 경쟁 상대인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보조금 전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국가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반도체 지원법을 제정,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생산 보조금 총 390억달러(약 52조2천억원), 연구개발(R&D) 지원금으로 총 132억달러(약 17조7천억원) 등 5년간 총 527억달러(약 70조5천억원)를 지원한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일(현지시간) 자국 기업 인텔에 반도체법상 최대 규모인 195억달러(약 26조1천억원)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자국 기업 인텔에 이어 한국의 삼성전자, 대만의 TSMC 등에도 대규모 보조금 지급을 예고하면서 반도체 기업들의 자국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텍사스주 파운드리 공장에 170억달러(약 22조8천억원) 이상을 투자한 삼성전자도 60억달러(약 8조원)의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가드레일' 조항으로 중국 내 반도체 생산 능력을 확장하는 데 제한을 받는다.
미국으로서는 자국 투자를 유도함과 동시에 경쟁 상대국인 중국을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전략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지난달 24일 구마모토현에 위치한 TSMC 제1공장이 개소하면서 반도체 보조금 투입을 통해 '반도체 생산 르네상스'를 되찾겠다는 일본 정부의 계획이 첫 구체적 성과물을 낳았다.
일본은 TSMC 제1공장 설비 투자액의 절반 가까운 최대 4천760억엔(약 4조2천억원)의 보조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 TSMC가 2027년 말 가동을 목표로 구마모토현에 지을 예정인 제2공장에도 약 7천300억엔(약 6조5천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두 공장에만 10조원이 넘는 일본 정부 보조금이 투입된다.
일본 정부는 아울러 도요타와 NTT 등 자국 대기업들이 협력해 만든 반도체 제조사인 라피더스에도 9천200억엔(약 8조1천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첨단 반도체 생산국으로의 부활을 적극적으로 도모하고 있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기초 기술과 소재·장비 분야에서 일본이 가진 장점이 여전하다"며 "구마모토 반도체 공장 가동은 일본이 제조업 중심 경제 부활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 흔들리는 반도체 판도…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중국은 국가 주도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을 가장 먼저 강력히 시행한 나라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이래 중국은 10∼30%에 불과한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까지 높인다는 야심 찬 목표 아래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비효율과 부패 논란 속에서도 60조원대에 달하는 거대한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일명 대기금)를 필두로 각 지방정부, 국유기업, 민간기업이 가세해 수백조원을 쏟아붓는 집요한 노력이 이어졌다.
대기금 주도 투자금 외에도 각 지방정부가 책임지고 관내 반도체 기업의 시설 투자부터 연구개발, 운영까지 다양한 경로로 자금을 지원한다.
일례로 '중국판 TSMC'인 SMIC(中芯國際·중신궈지)는 반도체 설계회로 패턴을 새기는 노광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정부 보조금을 활용해 타국 경쟁사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포토레지스트 필름을 소모해가며 미세 공정 기술을 발전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EU도 보조금 경쟁에 가세했다.
EU는 현재 약 10%인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30년까지 20%로 2배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반도체법은 작년 9월 시행됐다.
33억유로(약 4조8천억원)에 달하는 예산과 민간 자금 투자금을 포함해 총 430억유로(약 62조3천억원)를 동원한다는 구상이다.
미국을 필두로 한 반도체 산업 지형 재편이 '세계 반도체 생산의 한국·대만 양강 구도'를 흔드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대만도 자국 반도체 클러스터 경쟁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대만 정부는 라이칭더(賴淸德) 총통 당선인이 선거 기간 제안한 '타오위안·신주·먀오리 대(大)실리콘밸리 계획'을 지난달 승인했다.
대만의 수도권 서남부에 16㎢에 달하는 과학단지용 신규 용지를 마련하고, 2027년까지 4년간 1천억 대만달러(약 4조2천억원) 이상의 공사비를 투입한다.
라이 당선인은 대만 경제 핵심인 반도체 산업을 '세계 무적'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이 크게 판을 흔들고, 일본과 EU가 이를 기회로 반도체 산업에서 자국의 입지를 넓히려는 가운데 기존 생산 거점인 한국과 대만은 전략 산업인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첨단 산업과 전략무기 체계에서 반도체의 중요성이 한층 커지면서 과거 반칙으로 여겨지던 정부의 대규모 보조금 지원이 이제는 새로운 질서로 굳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조상현 원장은 "과거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비관세 장벽을 쌓거나 보조금을 주는 등 행위를 비도덕적인 것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규칙이 바뀌었다"며 "자국 중심주의 대두 속에서 제조업 유치를 통한 국내 경제 안정 등 여러 이유로 막대한 보조금 지급하면서 전략 산업을 유치하는 것이 뉴노멀이 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