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자 하는 강렬한 본능

알고자 하는 본능은 상당히 강렬하다. 이는 인간의 안전, 애정 및 소속에 대한 기본 욕구에서 시작해, 자존, 인지, 심미, 자아실현의 고차원적 욕구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는 막연한 불안이 늘 깔려 있다. 근저에 자리하고 있는 이 불안은 매우 사소한 인간의 감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나도 그런 사고를 당하면 어쩌나’ ‘내가 혹시 실수한 것은 없을까?’ ‘그 소문은 나만 모르는 것 같은데’ ‘그 정보를 놓쳐서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들 말이다.

그리고 살면서 그중 몇 번은 그런 것들이 단지 막연한 불안이 아님을 실제로 경험하기도 한다. 반대로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인간의 여러 가지 정신 활동에 만족을 준다. ‘볼수록 아름답다’ ‘보람 있다’ ‘해결했다’ ‘이제 된다’ 같은 만족이다. 그래서 가장 본능에 충실한 인간인 아이들을 관찰해보면 늘 호기심에 사로잡혀 앎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탐색하고, 질문하고 성장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그 앎에 대한 강렬한 본능을 잃어버리는데, 이는 외부에 의해 학습이 필요가 강요되면서, 그 양도 많아지고 내용도 복잡해져서 흥미를 잃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본능

흥미를 끊어내는 데는 요즘 시대로 한 몫을 하고 있다. 바야흐로 빅데이터의 시대. 여기 저기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정보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일상에 쏟아져 있는 글자와 숫자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이 나에게 필요한지,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듣고 이해하기란 점점 난해해졌다. 새로운 것을 빨리 따라가야 뒤쳐지지 않지만, 정말 버겁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학습에 대해 늘 피로를 느낀다. 게다가 정말 모든 이들이 바쁘다. 사람들은 다 할 일도 많고, 약속도 많고, 고민해야 할 것이 많다. 이미 나에게 주어진 정보들을 처리하는 일만해도 정신이 없는 상황에,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일은 늘 피하고 싶은 숙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좋은 정보, 중요한 정보 중에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뜻이 있는 사람들은 이 정보를 사람들과 공유하기를 원한다.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간절함이 생긴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이 간절하고 그 뜻이 숭고하다 한들, 그것이 많은 이해를 거쳐야 소통이 가능한 경우,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알아갈 여력이 없음에 곤란을 겪는다. 그래서 과거에도 있었지만 요즘 부쩍 더 주목을 받는 분야가 있다.

이 둘을 연결한 정보 전달의 오래된 미래, 정보 디자인

소통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려움을 겪던 사람들은 오래된 것에서 미래의 지혜를 얻었다. 바로 ‘이미지’에 의한 소통의 방법이다. 그림은 문자 이전부터 사람들이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였다. 소통의 역사를 살펴보면 모든 시작을 알타미라의 동굴 벽화에서 찾곤 한다. 그 그림에는 수천년을 두고 해석해 볼 수 있는 수 없이 많은 함의와 큰 힘 있다. 그래서 문자가 보급된 이후에도, 그림은 여전히 소통에 있어 큰 역할을 해왔다.

그림은 글을 보조하고 설명하면서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 비순차적 정보나, 풍경이나 도식, 다층적 정보 등을 ‘백문불여일견’으로 훨씬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색이나 형태는 한눈에 직관적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다. 글의 복잡성을 줄여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게 하는 과정, 인간의 시지각적 인지능력을 활용하여 정보를 조형적 요소에 연결해서 효과적으로 이해시키는 방법, 이것을 ‘정보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만민 정보 디자이너의 시대

데이터 시각화(Data Visualization)
정보 시각화(Information Visualization),
정보 디자인 (Infographic)


최근 주목을 받는 분야들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누가 하고 있을까? 물론 먼저는 나 같은 정보 디자이너들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자주 하는 정보 디자인은, 잡다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종이를 두고 낙서도 하고 끄적이면서 스케쥴표도 그려보고, 벤다이어그램, 막대그래프, 원형 그래프 같은 것들을 그려 보는 일이다.

그럴 때 내가 종이 위에 남겨둔 생각의 흔적은, 나만 그릴 줄 아는 독특한 무엇이 아니다. 당신도 분명 그런 것들을 끄적인 순간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모두 줄줄 글로는 적을 수 없는 생각들을 이렇게 저렇게 그려보야만 하는 순간이 있었다. ‘내용을 보이게 한다는 것.’ 위에 열거된 용어들은 다소 생소할 지라도 우리 모두는 정보 시각화의 효과에 대해 경험이 있기 이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와 소통에서 이미 그림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도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이야기가 있다면, 이 방법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활용해 볼 것을 추천한다.

말하고자 하는 이들의 간절한 역사 : 정보 디자인의 역사

실제로 정보디자인들은 정확히 “디자이너”라 특정된 사람들이 개발한 것이 아니다. 효과적으로 무엇을 정리하거나 말하고 싶어하는 간절함이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왔다.
윌리엄 플레이페어(William Playfair)의 저서 ‘경제와 정치의 지도(1786)’중 일부
윌리엄 플레이페어(William Playfair)의 저서 ‘경제와 정치의 지도(1786)’중 일부
정보를 시각화의 최초의 시도를 한 사람이라 회자되는 이는 스코트랜드의 경제학자이자 기술자인 윌리엄 플레이페어(William Playfair)이다. 그는 그의 저서 ‘경제와 정치의 지도(1786)’에서 18세기 영국의 무역과 부채의 변화를 여러 가지 그래프를 사용해 통계를 표현했는데, 이를 위해 새로 디자인된 그래프의 형태가 무려 44개에 이른다. 그는 이 책에 ‘자신의 노력이 수고를 덜어주고 정보 이해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동쪽 군사들의 대규모 죽음의 이유’(1858)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동쪽 군사들의 대규모 죽음의 이유’(1858)
다음은, 백의의 천사로 알려진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1910)이다. 그녀는 간호사로서 뿐 아니라 정보 디자이너로서 주목받을 만한 업적을 남겼다. 나이팅게일은 크림전쟁 현장에서 장병들의 위생 문제가 심각함을 깨닫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지원을 여왕에게 촉구했다. 정성스럽게 800페이지에 달하는 통계 자료를 제작해 처후 개선을 위한 설득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설득을 위해 다시 시도한 방법이 그림으로 그 자료를 압축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중첩 막대 그래프와 원 그래프를 합한 ‘폴라그래프’를 만들었다. 도표의 파란 영역이 전염병 사망자, 빨간 영역이 전투 사망자, 검정 부분이 기타 사망자인데, 이를 보면 단번에 전쟁에서 위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 도표 덕분에 지원이 시작되었고, 42%에 달아던 사망률은 2%대로 감소하게 된다. 나이팅게일은 영국 병사들이 헛되게 죽어가는 것을 간절히 막기 원했고, 이는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강렬하게 알기 원했던 여왕의 마음을 움직였다.
샤를 조셉 미나르(Charles Joseph Minard), ‘나폴레오의 행진’(1869)
샤를 조셉 미나르(Charles Joseph Minard), ‘나폴레오의 행진’(1869)
프랑스의 토목 공학자 샤를 조셉 미나르(Charles Joseph Minard, 1781-1870)는 전쟁의 위험성의 알리고 싶어했다. 이를 위해 ‘나폴레오의 행진(1869)’을 제작하였는데 병사의 수(선의 두께), 행군 경로 (선의 방향), 진격 경로(갈색 면), 퇴각 경로(검은 면), 기온과 퇴각 날짜 (하단 그래프)등의 정보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 복잡한 다층 정보를 한눈에 시각화했을 때 그 소통의 가치가 어떠한지를 증명한 작품이다.
오토 노이라트 (Otto Neurath)의 저서 ‘국제그림문자 : 아이소타입의 첫번째 규칙(1936)’의 일부
오토 노이라트 (Otto Neurath)의 저서 ‘국제그림문자 : 아이소타입의 첫번째 규칙(1936)’의 일부
오스트리아의 과학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정치 경제학자인 오토 노이라트 (Otto Neurath,1882-1945)는 사용 언어와 교육 수준을 뛰어 넘어 누구나 그림을 통해 전달받을 수 있는 국제그림문자를 만들고 싶었다. 그는 ‘아이소타이프’ 를 개발하여 아이콘과 픽토그램의 원조가 되었다.
해리 백(Harry Back)이 보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 실제 지형이 아닌 지하철 구성 만으로 간소화한 영국의 지하철 노선도 (1933)
해리 백(Harry Back)이 보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 실제 지형이 아닌 지하철 구성 만으로 간소화한 영국의 지하철 노선도 (1933)
사람들이 더 쉽게 중요한 것들을 알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들은 점차 한 분야로 정리되었고, 정보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신문, 잡지, 논문, 보고서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빅데이터 시대 넘쳐나는 데이터를 해석하고 이해시키는 역할이 더 중요해지면서 더욱 각광받고 있다. 이제 앎을 눈으로 보여주는 노력의 가치는, 예술, 과학, 인문학 등의 많은 분야에서 인정받으며 더 강렬하고 간절한 소통을 이어 나가는 여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노현지 서울대 디자인학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