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록산 게이 회고록
삶이 보여준 지옥, 그곳에서 다시 일어서기…'헝거'
읽어 내려가기 쉽지 않은 책들이 있다.

내용이 어려워서도, 번역이 조잡해서도 아니다.

가슴을 꾹꾹 누르는 인물의 고통과 그런 힘겨움을 주저하지 않고 모두 드러내고야 마는 작가의 솔직한 태도를 책에서 마주할 때가 그렇다.

미국 소설가이자 페미니스트 작가인 록산 게이가 쓴 회고록 '헝거'(원제: Hunger)가 바로 그런 책이다.

지나치게 솔직해서 읽기에 부담스러운, 어떤 각오가 담겨있는 책.
아이티계 이민자의 자녀로 태어난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모범생이었다.

모든 교과목 성적이 탁월했는데, 특히 국어(영어)와 글솜씨가 빼어났다.

외톨이였던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강박적으로 책에 집착했다.

하이틴 로맨스를 포함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몽상에 빠져들었다.

소설책을 읽다 보면 주인공의 몽상이 현실 속에 실현될 때 가끔 무서운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런 일이 정확하게 저자에게도 일어났다.

그녀는 하필이면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인기남 크리스토퍼와 친해졌고, 그는 예상대로 나쁜 남자였으며 그녀를 놀잇감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자존감이 상해가는 나날이었지만, 그녀에겐 그게 최악이 아니었다.

그는 어느 날 교외의 냄새 나는 오두막으로 그녀를 데려갔고, 그곳에는 그의 질 나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집단 성폭행을 당했을 때 저자의 나이는 열두 살.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녀를 끔찍하게 귀여워하는 부모에겐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피해자의 상태가 외롭고 힘겨울수록 가해자의 손길은 강하기 마련이다.

크리스토퍼는 주기적으로 그녀를 오두막으로 불러들였고, 그녀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제 발로 그곳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나는 열두 살이었고, 그해에 성폭행을 당했다…. 내 몸에 그 과거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매일 같이, 하루도 빠짐없이 그 과거를 데리고 다닌다.

"
삶이 보여준 지옥, 그곳에서 다시 일어서기…'헝거'
이후의 이야기는 일종의 발버둥이다.

그녀는 유명한 사립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고, 부모의 뜻을 좇아 미국 동부 최고 명문 중 하나인 예일대에 입학했지만 적응하지 못한 채 겉돌았다.

3학년이 되자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서부로 떠났고, 다시는 예일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후에 폰섹스 아르바이트, 의미 없는 동거 등 방황의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바닥으로 침잠하는 사이, 그녀에게 힘이 되어준 건 책 읽기와 음식뿐이었다.

그녀는 계속 먹었다.

무너짐의 고통을 마비시키기 위해 먹고, 먹고 또 먹었다.

곧 뚱뚱한 사람이 됐고, 병적인 고도비만이 됐으며, 그런 다음에는 병적인 초고도비만이 됐다.

그렇게 261㎏까지 쪘다.

책은 그런 허기에 대한 이야기다.

음식에 대한 허기, 위로에 대한 허기, 애정에 대한 허기, 이해받고 싶은 욕구에 대한 허기의 이야기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으로부터 숨지 않겠다고 결심한 한 사람의 이야기다.

"이 책은 내 몸, 내 허기에 관한 책이며 궁극적으로 사라지고 싶고 다 놓아버리고 싶으면서도 그와 동시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원하는, 간절히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사람에 관한 책이다.

비록 그 과정이 한없이 느려터지긴 했으나, 마침내 자신을 보여주고 이해받는 것이 가능함을 배우게 된 한 사람에 관한 책이다.

"
문학동네. 노지양 옮김. 368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