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알리 공습 속 강력한 리더십으로 위기 타개 책무
주력사업 경쟁력 강화·미래성장동력 발굴 등 난제 산적

신세계그룹이 8일 정용진(56) 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키는 인사를 전격적으로 단행한 것은 녹록지 않은 경영 환경 속에 강력한 리더십으로 위기를 헤쳐 나가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용진 회장을 '원톱'으로 강력한 위기 대응 체제를 가동해 격변하는 유통시장에서 지속 성장을 위한 혁신과 변화를 꾀하겠다는 복안이라는 것이다.

◇ 쿠팡·알리 협공에 놓인 이마트…"위기를 기회로"
기존 유통 질서를 뒤흔들 정도로 급성장한 쿠팡과 지난해부터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파고들고 있는 알리익스프레스와 같은 중국계 이커머스의 협공에 직면한 이마트는 그 어느 때보다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마트 위기는 지난해 실적이 대변한다.

이마트는 지난해 연결 기준 469억원의 영업손실을 내 1993년 창립 이래 처음으로 적자 전환했다.

신세계건설이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1천87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전자상거래 계열사인 SSG닷컴과 G마켓도 적자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등 유통과 비유통이 모두 부진했다.

특히 지난해 말 기준으로 부채비율이 900%가 넘는 신세계건설은 그룹 유동성마저 옥죄는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시장 우려가 크다.

유통시장 중심이 온라인으로 넘어가는 추세 속에 오프라인 대형 할인점의 대명사인 이마트마저 매출이 줄면서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연결 매출(약 29조4천억원)에서 쿠팡(약 31조8천억원)에 추월당했다.

이런 위기를 타개하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려면 그룹의 중심을 잡아줄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게 이번 승진 인사의 배경이 됐다고 신세계그룹 측은 설명했다.

'정용진의 신세계'로 개편 속도…그룹 장악력 강화될 듯(종합)
◇ 정용진 체제로 전환 가속…그룹 지배력 강화
정 신임 회장이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징후는 이미 지난해 감지됐다.

정 회장은 지난해 9월 사장단 인사에 이어 단행된 경영전략실 인사를 통해 강력한 친정 체제 구축의 신호탄을 쐈다.

경영전략실은 정 회장의 경영 활동을 보좌하는 참모 조직으로 사실상 그룹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대표이사의 40%를 물갈이한 임원 인사가 실적 악화에 따른 분위기 쇄신 성격이 강했다면 경영전략실 인사는 미래 성장 전략의 방향성을 가늠해보는 메시지가 내포돼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업계 안팎에서는 정 회장이 경영전략실 인사를 직접 관장하며 그룹 경영권을 한층 강화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 회장은 인사 후 첫 회의에서 "조직, 시스템, 업무처리 방식까지 다 바꿔라"라고 주문하며 강도 높은 쇄신을 예고했다.

그룹 회장으로서의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그룹 측은 "정 회장 승진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며 "과거 '1등 유통기업' 자리에 머물지 않고 한 단계 더 도약할 갈림길에 서 있는 신세계그룹이 정 신임 회장에게 부여한 역할은 막중하다"고 설명했다.

정 신임 회장에게는 그룹을 다시 성장궤도에 올려놓아야 하는 막중한 책무가 놓여 있다.

이마트의 본업 경쟁력을 되찾는 등 기존 주력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신사업을 끊임없이 발굴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업계에서는 정 회장의 승진으로 신세계그룹이 '정용진 체제'로의 개편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 회장의 모친인 이명희(81) 회장을 그룹 총괄회장으로 위치 이동시키면서 백화점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정유경(52) 총괄사장 지위를 그대로 놔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명희 총괄회장의 지원 아래 정 신임 회장의 그룹 장악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용진의 신세계'로 개편 속도…그룹 장악력 강화될 듯(종합)
◇ 신세계 지배구조·승계구도는…지분증여·사내이사 등재 가능성에 촉각
일각에서는 정회장 모자의 직위가 각각 회장, 총괄회장으로 바뀐 것 외에 큰 틀에서 그룹 체제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들어 이번 인사는 상징적인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정 회장이 2006년 그룹 총괄 부회장으로 승격된 이래 이미 모친을 대신해 그룹의 얼굴로 경영 보폭을 넓혀온 만큼 그에 걸맞은 직위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용진 회장과 나이가 같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 회장보다 두 살 어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열 살 차이가 나는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재계 3∼4세들이 이미 회장 직함을 달고 경영 전면에 나서는 점 등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짚었다.

남매간 분리 경영을 골격으로 하는 현재의 지분 구조 역시 변함이 없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신세계 지분 구조를 보면 정용진 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이 각각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을 18.56%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이명희 총괄회장이 이마트와 신세계 지분을 10.00%씩 갖고 남매 경영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만, 앞으로 정 회장의 실질적인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추가 지분 증여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책임 경영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정 회장이 이마트 등 주요 계열사 등기임원을 다시 맡을지도 주목된다.

정 회장은 신세계와 이마트 인적 분할을 앞둔 지난 2010년 3월 신세계, 이듬해 5월에 이마트의 사내이사로 각각 선임됐다가 인적 분할 작업이 마무리된 뒤인 2013년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물러나고선 11년째 비등기로 남아있다.

일단 오는 28일 예정된 이마트 정기 주주총회 안건에도 정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건은 빠진 상태다.

이번 승진 인사가 이뤄진 막후 논의 과정에도 관심이 쏠린다.

정용진 회장과 이명희 총괄회장, 그리고 일부 핵심 참모들이 구체적인 인사 내용을 두고 밤늦게까지 숙의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명희 총괄회장의 반대 속에 정용진 회장이 인사안을 밀어붙인 게 아니냐는 설도 있으나 그룹 안팎에서는 그 가능성을 낮게 본다.

오히려 장자 승계의 전통이 강한 '범삼성가'답게 이명희 총괄회장의 원칙적인 동의 아래 인사안이 짜였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실제 이 총괄회장은 이번 인사 이후에도 2선 후퇴 없이 그룹 경영에 대한 영향력과 그룹 총수(동일인) 지위를 유지한다.

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 승진에 따른 후속 인사나 조직 개편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계열사 사장 등 고위급에 대한 인사는 앞으로 정기 인사보다 수시 인사 체제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