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800만 관중 시대'

대한민국의 프로야구 사랑은 엄청나다. 지난해 야구 관람을 위해 야구장을 찾은 관중의 수는 무려 810만명에 달한다. 프로축구 1부와 2부를 모두 합친 유료 관중 수가 300만명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야구의 관중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야구가 국민 스포츠라는 사실은 중계권료 규모로도 증명할 수 있다. 지난해 집계된 프로야구 중계권료는 연 760억원. 축구, 농구, 배구 등 다른 프로 스포츠의 한 시즌 중계권료를 모두 합해도 야구의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인의 야구 사랑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벌어졌던 '신문 품귀 현상'이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LG트윈스의 사진을 1면에 내건 신문들은 다음날 새벽 모두 팔려나갔다. 마치 한정판 의류를 거래하듯 '웃돈'을 붙여 신문을 사고 파는 광경도 벌어졌다. 왜 한국 사람들은 프로야구를 이토록 사랑할까.
'대한민국 최고 인기 스포츠' 야구 ... 그 뒤에는 항상 '엘리트'들이 있었다 [서평]
스포츠문화사학자인 저자가 쓴 <야구의 나라>는 '대한민국에서 프로야구는 어떻게 다른 종목들을 제치고 최고 인기 스포츠가 되었는가'를 역사를 거슬러 파헤친다. 일제강점기에서부터, 프로야구단 창단과 출범, 현대까지 폭넓은 시대를 아우른다. 끈질긴 추적을 끝낸 저자는 그 비결을 하나로 결론지었다. 바로 '엘리트'다.

일제강점기 야구는 인기가 없었다. '어차피 우승은 일본'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경기를 하든 결국에는 일본 팀이 승리하는 경기를 식민지 조선 민중들은 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야구는 '일본의 스포츠'로 치부됐다. 게다가 공 하나면 충분했던 축구와 달리, 야구는 경기를 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가 많다는 점도 문제였다. 돈이 없으면 야구라는 종목에 도전할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야구는 '귀족 스포츠'의 상징이 됐다.

이런 '엘리트 종목'이라는 인식은 야구를 선망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해방 후 야구는 각 지역 명문 고등학교를 대표하는 스포츠가 됐다. 야구를 교기로 삼고 서로 경쟁했다. 지역을 대표하는 명문고들간의 경쟁은 당시 큰 볼거리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서울로 상경한 '이주민 엘리트'들에게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달래주는 수단이 됐다. 휘문고, 경기고, 경남고, 광주일고 등 이 시절부터 야구부를 창단한 '엘리트 학교'들은 현재까지도 프로야구 선수들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고교로 남아있다.
‘2023 KBO 한국시리즈’ 1차전 경기.
‘2023 KBO 한국시리즈’ 1차전 경기.
1970년대, 고교야구의 황금기가 시작됐다. 재학 시절 야구에 열광했던 졸업생 엘리트들이 모교에 아낌없는 지원을 투척하면서다. 이 엘리트들은 당시 언론과 정재계를 장악하는 인물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각종 신문사 야구 대회를 열어 판촉에 열을 올렸고, 미국 유학길에 보고 배운 프로야구를 대한민국에 이식했다.

여기에 고교 야구로 발산된 지역주의가 더해지자 프로야구는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거듭났다. 지역을 대표하는 야구 팀은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1980년대 야구는 문화의 아이콘이 됐다. 프로 스포츠 흥행의 기본인 지역 정체성을 가장 빠르게, 깊이 이식한 야구가 한국 최고의 스포츠가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일본의 귀족 스포츠였던 야구가 한국의 국민 스포츠가 되는 과정에는 항상 학연과 엘리트들이 존재했다. 한국 사회에서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서 역사, 문화, 정치적 맥락이 집약된 결정체인 셈이다. 저자는 야구의 흥행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발전 과정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최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