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행동 장기화에 호흡곤란 신생아 3시간 '응급실 뺑뺑이'도

의대 증원 확대 방침에 반발해 전공의 이탈 등 집단행동이 벌어진 지 8일째인 27일 현장을 지키는 의료진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병원들이 병상수를 줄이고 간호사를 투입하고 있으나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난 신생아가 3시간 만에 겨우 응급실을 찾는 등 환자들의 불편이 속출했다.

전공의 이탈로 지친 의료 현장…병상 축소·환자 불편 가중(종합)
부산지역 권역응급의료센터인 동아대병원은 40개였던 응급실 병상수를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강원지역 대학병원 응급실은 환자가 약 30% 감소했다.

전국의 다른 병원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 때문에 경남지역에서는 호흡곤란 증세를 보인 신생아 이송이 지연되는 등 응급 환자 피해 사례가 잇따랐다.

지난 25일 오전 8시 30분께 경남 창원시에서 이달 초 태어난 영아가 호흡곤란과 청색증 등 위급 증세를 보여 119구급대가 출동했다.

구급대는 창원, 양산, 부산에 있는 대형병원 5곳에 이송을 요청했으나 의료진 부족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결국 이 영아는 60㎞ 넘게 떨어진 진주 경상국립대병원으로 3시간 만에 이송됐다.

이 지역에서는 지난 22∼24일에도 두부 열상 20대, 옆구리 통증 10대, 어지럼증 70대 등 응급 환자들이 구급차를 타고 50분 넘게 도로에서 뺑뺑이를 돌았다.

전공의 이탈로 지친 의료 현장…병상 축소·환자 불편 가중(종합)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하면서 입원 병상 가동률도 떨어졌다.

충북 유일 상급 종합병원인 충북대병원은 입원 병상 가동률이 70%대에서 40%대로 떨어졌다.

일부 진료 과목은 응급환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응급실과 충북지역 유일의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선 이탈한 전공의 자리를 전문의들이 3∼4일에 한 번꼴로 당직을 서면서 채우고 있다.

비응급 환자 수술 일정은 취소하거나 미뤄졌다.

하루 평균 수술 건수는 약 70건에서 40건으로 43% 준 상태다.

병원 측은 간호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해 환자 수가 적은 입원 병동 2곳을 폐쇄하고 환자들을 다른 병동으로 옮겼다.

여기에 다음 달 1일 입사 예정인 인턴 35명이 임용포기서를 제출하고, 이달 말 레지던트 수료예정자 23명과 근로 계약이 종료되는 전임의 10명까지 병원을 떠나면 진료 차질은 더 심화할 전망이다.

다음 달 근무 예정인 신규 전임의는 5명에 불과하다.

정부가 전공의들의 복귀 마지노선으로 정한 오는 29일을 넘어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지역 필수 의료체계에 부하가 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충북도 공공의료기관인 청주의료원 관계자는 "진료 차질이 지속되면 수도권 병원에 간 지역 환자들은 그나마 진료 사정이 나은 지역 병원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현재 체제로는 이들을 모두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은 중환자실, 응급실, 암 병동을 중심으로 전문의, 전임의, 전담 간호사를 최대한 투입하고 있다.

의료진 상당수가 응급 수술 등에 투입되면서 비응급 수술 일정은 뒤로 밀리고 있다.

정형외과 등 주요 진료과는 신규 외래 진료 예약을 아예 받지 않고 있다.

인하대병원은 18개 수술실 중 10개만 운영, 응급·중증이나 암 환자 위주로 수술하고 있으며 제주대병원도 수술실 총 12개 중 8개만 가동하고 있다.

전남·대전 대학병원들도 수술실과 중환자실 가동률이 20∼30% 줄었다.

전공의 이탈로 지친 의료 현장…병상 축소·환자 불편 가중(종합)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후 9시 기준 지역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병상 가동률은 경북대병원 33%, 영남대병원 27%, 계명대동산병원 40%, 대구가톨릭대병원 42%, 칠곡경북대병원 40% 수준으로 파악됐다.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시작된 지난 19일부터 26일까지 대구지역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을 찾는 하루 평균 응급환자 비율은 평상시보다 39.3% 준 것으로 파악됐다.

울산대학교병원도 수술 및 외래진료 건수가 지난주 보다 약 10% 축소됐다.

지난 20일 이후 울산대병원 소속 전공의 126명 중 83명(약 66%)이 사직서를 제출한 영향이다.

전공의들이 떠난 빈자리를 전임의와 교수들이 채우고 있지만,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남아있는 의료진의 피로도 커져 있다.

이에 울산대병원 응급실에서는 중증응급환자 진료에 집중하기 위해 위급하지 않은 정형외과 환자와 외부 기관 전원 환자를 가급적 받지 않고 있다.

울산대병원에서 운영되는 권역외상센터에서도 이날부터 경증 외상환자는 받지 않고 타 병원을 방문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실제로 이날 울산대병원을 방문한 환자 중 일부는 의사를 만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울산지역 유일 상급종합병원이자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울산대병원이 감당하던 진료 수요는 지역 내 2차 종합병원으로 몰리고 있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남구 울산병원은 응급실 일반병상의 약 40%, 입원 병상의 약 8%만 남아있다.

동강병원에서도 의료진이 없어 성형외과 봉합수술을 못 하고, 울산시티병원에서는 응급 혈액투석이 불가능하다.

전공의 이탈로 지친 의료 현장…병상 축소·환자 불편 가중(종합)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업무가 가중된 간호사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전공의의 빈 자리는 '수술실 간호사'라 불리는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들이 채우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7일부터 '진료지원인력 시범사업'을 실시해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시범사업을 통해 간호사가 수행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는 의료기관의 장이 내부 위원회를 구성하거나 간호부서장과 협의해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전북대병원의 15년 차 간호사는 "전공의는 수술이 끝난 환자가 감염되진 않았는지, 출혈이 없는지 등을 살펴보고 처치한다"며 "하지만 전공의들이 자리를 비우다 보니 이런 업무 일부를 PA 간호사들이 대신 맡고 있다"고 토로했다.

블라인드 등 온라인커뮤니티에는 업무 과중에 따른 대전지역 대학병원 소속 간호사들의 불만의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김도윤 박철홍 김솔 나보배 김상연 이성민 박영서 노승혁 이주형 박정현 박성제 백나용 박세진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