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사에 기밀정보 뿌리고, 주식 거래…"해고는 억울하다"는데
업무상 정보를 이용해 회사와 분쟁 관계에 있는 타 회사의 주식을 거래하고 이에 따라 큰 이익을 얻은 직원을 해고한 것이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재판장 송각엽)는 지난 1일 건설업체에서 해고된 김 모 씨(가명)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분쟁사에 회사 내부 정보 알려주고 분쟁사 주식 대량 매입

근로자 6200명 규모의 건설업체 B사에 2002년 입사한 김 씨는 2018년부터 건축자재 구매 업무를 담당했다.

B사는 2017년 협력 업체 K사와 공동주택 입주자 관리 애플리케이션(플랫폼) 시험 운영을 추진해서 신규 입주 5개 아파트 단지에 해당 앱을 적용했다. 하지만 B사가 2018년부터 독단적인 플랫폼 개발에 착수했다. 결국 2019년 K사는 B사에 앱 도용을 중지하라며 ‘불공정하도급거래행위’를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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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사의 사실상 대표인 최 모 씨가 김 씨에게 접근한 것은 이맘때였다. 둘은 2011년부터 만난 ‘사회 친구’라는 게 김 씨의 주장이다.

김 씨는 2019년 최 씨의 소개받은 만난 사람으로부터 K사의 주식 매입을 권유받았다. 이후 K사 대표로부터 5200주를 6500만에 양수받기도 했다. 이 회사는 비상장 회사로 주식 거래는 직접 거래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후에도 1만주를 1억3000만원에 매입하는 등 수천만 원 단위의 거래를 이어갔고 그렇게 매입한 주식은 총 2억740만원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최 씨로부터 돈을 빌리기도 했다.

김 씨는 동료들에게도 매입을 권유했고 1억원어치 주식을 매입한 한 동료도 8000만원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이밖에 B사 구매본부의 다른 직원들도 김 씨의 권유로 투자해 수천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김 씨는 수익을 올린 동료 직원에게 부탁해 회사와 K사 간 분쟁 관련 법무법인 검토 의견서, 특허법인 소견서, 내부 보고서 등 관련 자료를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B사가 K사의 합의 과정에서 책정된 합의금 규모를 알아내 K사에 알려주기도 했다. 최 씨도 김 씨에게 분쟁에 대해 논의했고, 김 씨는 이 과정에서 공정거래 위원회에 다수의 신고가 접수돼 민감한 B사의 상황을 알려주고 B사의 업무 담당 부서에 보내 협상을 해보라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사진은 생성형AI 챗GPT로 그린 그림입니다.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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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의 업무용 컴퓨터에는 K사 관련 폴더가 따로 있었고 이 폴더에는 K사의 발주체계 등 민감한 파일이 암호 해제돼 있었다.

결국 회사는 김 씨를 △고수익 주식거래를 통해 사익 추구 △해당 거래를 다른 직원에게 알선 △이해관계자와 사적 금전거래 △분쟁 관련 회사 기밀정보 수집하고 상대방인 업체를 자문하는 등 이해 상충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해고했다. 함께 주식으로 수익을 본 직원 한명은 정직 3개월 정보를 건네준 직원 2명에게는 견책의 징계를 내렸다. 결국 김 씨는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냈지만, 기각당하자 중노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낸 것.

재판 과정에서 김 씨는 "K 주식을 거래한 것은 일반적 투자”라며 “나는 K 관련 업무의 주무 부서 소속도 아니라 직·간접적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동료들에 대한 주식거래 알선 혐의에 대해선 “업무 관련성 없는 일반 주식거래를 알선한 것”이라며 “회사의 이해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맞섰다.

최 씨와의 관계에도 선을 그었다. 김 씨는 “최 씨는 사회 친구이지 이해관계자가 아니고 최 씨로부터 B사와 K사가 분쟁 관계에 있는 것을 들었을 뿐, 그전에는 알지 못했다”며 최 씨와의 금전거래도 업무 관련성 없는 일반적인 사적 거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민감한 기밀을 건넸다는 징계 사유에 대해선 “최 씨가 'K 앱 도용에 대해 참여인 회사에 내용증명을 보냈으나, 응답이 없어 공정거래위원회에 참가인 회사를 제소하겠다'라고 하길래 분쟁 해결을 위해 다시 한번 대화를 시도해보라'라고 충고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징계 사유에 대해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한 것이다.

법원 "동료에게 비정상적 이익 거래 알선. 이해 상충 맞다"

하지만 법원은 이 씨의 주장을 일축했다. 재판부는 “K사가 김 씨의 업무수행으로 인해 권리 또는 이익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며 “조직과 업무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동료를 통해 K사와 관련된 회사 기밀을 알아보았으며 조언하기도 한 것인데 이는 업무수행 기회를 이용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K사와 그 관계자 최 씨는 김 씨의 이해관계자가 맞다”라고도 판시했다. 법원은 “협력사인 K에 상당한 금액을 투자하여 큰 수익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를 적극적으로 권하고 알선했는바, 김 씨와 K사는 서로 이해관계가 밀접하게 얽혀 있다”며 “김 씨의 회사에서의 지위나 경력에 비춰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을 통해 K에 유리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 씨의 권유로 수익을 본 회사 직원들 간에 투자액, 투자 시기, 투자금 회수 시기가 서로 다름에도 수익률이 44%로 동일한 점도 근거로 들어 “동료 직원들에게 알선해 비정상적인 이익을 취하게 한 것은 참가인 회사의 윤리규정 위반인 이해 상충 행위가 맞다”고 꼬집었다. 그밖에 K로부터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받은 점, 김 씨가 수집한 정보는 최 씨가 B사와의 재협상 과정에서 활용된 것으로 보이는 점을 언급하며 “김 씨는 K사와 B사 사이의 분쟁 중 탐지한 기밀정보를 최 씨에게 알리고, 분쟁에 관해 조언한 것”이라고 판하고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해고 징계, 회사의 과거 행적도 중요

회사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알려주는 게 큰 문제가 안 된다는 인식을 가진 경우가 적지 않다. 주식 역시 일반적인 투자처럼 흔히 하다 보니, 정보의 대가로서 '거래관계'가 얽힐 경우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이 희박한 경우가 많지만, 엄연히 중징계 대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징계 처분 중 가장 무거운 수위인 징계해고는 ‘사회 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책임 있는 사유’를 필요로 한다. 징계 사유가 애매하거나 불확실하다면 해고의 중징계를 내리긴 어렵다. 김 씨 역시 초심 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해고가 과하다는 판단을 받은 바 있다.

이 경우 B사가 승소한 데에는 과거 B사가 보여준 엄격한 인사 처분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징계가 과하다는 김 씨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B사는 과거에도 협력 업체로부터 금품수수와 골프접대를 받은 직원, 특정 업체를 수주업체로 선정해 일감을 몰아주고 금전거래를 한 직원 등에게도 징계해고를 내린 바 있었다”며 “법원은 회사가 유사한 비위행위에서도 엄격한 태도를 유지했다”며 양정이 과하지 않다고 봤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회사 HR 관리나 징계, 인사 업무가 무너질 수 있다”며 “B사의 경우 잘못에 대해 강력하게 징계하는 관행을 이어왔고 법원도 이를 감안해 B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