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분기에 상장사 절반 이상이 ‘어닝 쇼크’를 낸 가운데 반도체·방위산업·발전 기업이 나홀로 선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메모리 업황 회복과 ‘K방산’ 수출 호조, 전기료 인상 등이 호재가 됐다. 증권가에선 이들 업종이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올해 주식시장을 주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이닉스 '3500억 흑자전환'에 훨훨…방산주도 깜짝 실적

HBM 주문 폭주에 반도체 ‘깜짝’ 실적

25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실적 예상치가 존재하는 상장사 236곳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합산액은 28조8297억원으로 집계됐다. 증권사 전망치(37조1400억원)보다 22.3% 줄었다. 통상 4분기는 인건비와 일회성 비용이 반영되면서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메리츠증권이 최근 10년(2013~2022년)간 상장사의 4분기 영업이익을 증권가 예상치와 비교한 결과 평균 18.7%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작년 4분기엔 어닝 서프라이즈를 나타낸 기업 비중이 전체의 16.9%로 전년(18%)에 비해 소폭 감소했다. 증권사 예상 대비 영업이익이 10% 이상 초과된 기업은 39곳, 증권사 예상은 적자였으나 흑자 전환한 기업은 SK하이닉스 한 곳뿐이었다.

증권사들은 SK하이닉스가 4분기 515억원의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전망했으나 실제로는 346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반도체 업황 회복으로 인한 메모리칩 가격 인상과 인공지능(AI) 고부가가치 상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김형태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낸드 메모리 부문의 가격 상승 폭이 시장 기대치를 웃돌면서 어닝 서프라이즈에 기여했다”며 “D램 부문도 DDR5, HBM 수요 강세로 제품 판매가격 상승효과가 컸다”고 했다.

한미반도체도 증권가 예상치(88억원)를 108.7% 웃돈 18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HBM 수요 증가로 주력 제품인 TC본더 수요가 함께 늘어나면서다. TC본더는 HBM의 수직 적층 패키징에 활용되는 장비다.

방산업체도 두각을 나타냈다. 현대로템의 4분기 영업이익은 증권가 예상치를 90.4% 웃돈 698억원, 한국항공우주는 26.6% 상회한 1543억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5.2% 넘어선 2755억원이었다. K2 전차, K9 자주포 등 폴란드 수출 물량이 실적에 반영되면서 실적도 우상향했다.

국제 유가 하락과 전기료 인상 등으로 한국전력과 계열사도 영업이익이 크게 늘었다. 한전의 4분기 영업이익은 증권가 예상을 71.4% 웃돈 1조8842억원, 한전KPS는 84.4% 상회한 592억원을 기록했다. 2022년 4분기 한전이 10조8209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낸 것과 크게 대비된다. 이민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전기요금 인상과 관련한 정치·경제적 변수가 적어지면서 올해 실적도 개선될 전망”이라고 했다.

원가 하락과 판매가 인상 등의 호재로 타이어업체들도 기대 이상의 실적을 보였다. 금호타이어는 증권가 예상을 65.3% 뛰어넘은 1721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한국타이어도 예상치를 46.3% 초과한 492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중국 직격탄 화학·철강은 ‘쇼크’

업종별로는 4분기 화학 업종이 부진한 실적을 보였다. 화학 업종 13개 상장사의 4분기 영업이익 합산액은 687억원으로 증권사 예상치 합산액(6852억원)의 10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올 하반기 국제 유가가 급변동하고 중국 경기 침체가 장기화한 영향이다.

철강 및 비철금속 업체들도 중국의 영향을 피해 가지 못했다. 에프앤가이드가 분류하는 금속·광물 업종 상장사 여섯 곳의 4분기 영업이익 합산액은 3206억원으로 증권사 예상치인 1조1488억원의 27.9% 수준에 불과했다.

작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주가 조작 사태 등으로 충당금을 크게 쌓은 증권사들 역시 4분기 실적이 부진했다. 증권사 다섯 곳의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은 1619억원으로 예상됐으나, 실제로는 204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