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현대차정몽구재단 클래식 인재 포럼…"콩쿠르 이후 지원 필요"
"클래식 영재, 시스템으로 나오지 않아…'국내 연주계' 필요"
"시스템에 의해서 영재가 나오는 건 아닙니다.

"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23일 현대차정몽구재단 주최로 서울 중구 온드림소사이어티에서 열린 '클래식 인재' 포럼에서 한 말이다.

김 총장은 영재를 어떻게 발굴하고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자 "무엇이 영재고 영재 판별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이같이 말했다.

영재의 특징으로 그는 '창의성'과 '즉흥성'을 꼽았다.

배운 것을 그대로 무대에서 보여주는 학생은 '수재', 한 번도 배우거나 들은 적 없는 해석을 무대 위에서 처음 보여주는 학생은 '영재'라고도 했다.

김 총장은 그러러면서 "영재의 성장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라며 "'영재 강국'이라면서 영재 시스템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영재가 나오는 걸 방해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우려했다.

그는 "다만 영재의 예술교육 목적은 연주를 잘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필요한 무대를 많이 만들어주고 이를 통해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가 특별한 것을 가르쳐서 (제자인 피아니스트) 손열음, 김선욱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포럼에 참석한 장형준 예술의전당 사장, 성악가 사무엘 윤(서울대 성악과 교수) 역시 '영재'라는 호칭이나 지나친 관심이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장 사장은 "우리가 영재라고 부르는 순간에 본인은 부담스러울 것 같다"며 "5년 뒤에 어떤 연주자가 될지 모르면서 (영재라고 부르고, 이후에 보면) 관심은 멀어져 있다"고 말했다.

사무엘 윤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성악 공부를 시작한 자신의 사례를 들며 "성악에서는 영재라는 단어 자체가 어색하다.

이런 지점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클래식 영재, 시스템으로 나오지 않아…'국내 연주계' 필요"
무엇보다 세 사람은 영재에 열광하기보다 연주자들이 평생 음악을 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 총장은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한국을 떠나기 전 남긴 "해답은 K-리그에 있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국내 연주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 총장은 "콩쿠르에서 1등 하고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도 사회인으로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되면 다들 교직으로 돌아온다"며 "자기가 나중에 선생이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솔리스트를 꿈꾸던 사람들"이라고 현실을 전했다.

이어 "'국내 연주계'라는 건 연주만으로 생활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영재들이 다 커서 돌아왔을 때 활동할 수 있는 그런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지금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무엘 윤은 "교직 없이 연주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은 1%도 안 될 것"이라며 "음악가들이 생계 걱정을 하지 않고, 음악으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형성돼야 한다"고 공감했다.

포럼에서는 한국 연주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콩쿠르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세 사람은 콩쿠르 결과보다도 콩쿠르 이후 연주자가 활동 기반을 마련하는 데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과거에는 콩쿠르 입상만으로도 굴지의 에이전시와 계약이 이어졌지만, 콩쿠르 자체가 많아진 요즘은 우승해도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거나 무대에 설 기회를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컴퍼티션 애프터 컴퍼티션(competition after competition)'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며 "콩쿠르에서 입상해도 다음 길을 또 개척해 나가야 하는 상황을 자조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는 "콩쿠르 1등까지는 연주자가 혼자 핸들 할 수 있지만, 그 뒤의 계약 과정까지는 혼자서는 어렵다"며 "이런 부분부터 도움을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 사장은 "콩쿠르에 부합하지 않은 훌륭한 자질 가진 친구들도 있다"며 "이런 친구들을 발견하고, 지휘자에게 소개해주거나 해외 무대와 연결해주는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