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측, 증거기록 검토 못 했다며 공소사실 인정 여부 안 밝혀
피해자 30여명 직접 방청…재판 앞서 엄벌 촉구 기자회견도

무자본 갭투자로 경기 수원시 일대에서 수백억원대 전세 사기 행각을 벌여 구속된 일가족의 첫 재판이 피고인 측의 증거기록 검토 문제로 공전했다.

'무자본 갭투자' 수원 전세 사기 일가족 첫 재판 '공전'
22일 수원지법 형사11단독 김수정 판사 심리로 열린 부동산 임대 업체 사장 정모(60) 씨와 그의 아내 김모(54) 씨, 아들(30)에 대한 사기 등 혐의 1차 공판에서 피고인 측 변호인은 "변호사 선임계를 내면서 증거 기록 등사 신청을 했으나 검찰로부터 3월 7일 이후부터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이같이 밝혔다.

피고인 측이 이날 공소사실 인정 여부를 밝히지 않아 첫 재판은 결국 검찰의 기소 의견 진술까지만 진행되고 마무리됐다.

정씨 일가 사건에 대한 증거 분량은 2만쪽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변호인이 밝힌 '3월 7일 이후 등사가 가능하다'는 얘기는 검찰도 모르는 얘기"라며 "애로사항이 있었다면 저희 쪽으로 연락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락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피고인들이 지난해 12월에 기소되고 나서 두 달 가까이 허비됐는데 증거를 못 봐서 인정 여부를 밝히지 못하는 게 말이 되냐"며 검찰에 빠른 협조를 당부했다.

정씨 일가는 2021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일가족 및 임대 업체 법인 명의를 이용해 경기 수원시 일대에서 800세대가량의 주택을 취득한 뒤 임차인 214명으로부터 전세 보증금 225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정씨는 대출금이 700억원을 넘는 채무 초과 상태인데도, 구체적인 자금 관리 계획 없이 '돌려막기' 방식으로 임대 계약을 계속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씨의 아들은 부모와 달리 경찰 단계 때부터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받았으나, 지난해 12월 검찰에 결국 구속됐다.

검찰은 감정평가사인 정씨의 아들이 아버지의 요청을 받고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임대 건물을 감정 평가하는 등 2023년 3월부터 임대 업체 소장으로 근무하며 범행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녹색 수의를 입은 정씨 가족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재판을 법정에서 지켜본 30여명의 피해자들은 정씨 등이 나타나자 크게 한숨을 내쉬며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 피해자는 정씨 일가로부터 1억원의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은행에서 빌린 돈만 8천만원"이라며 "경매에 참여하든지 개인회생을 하든지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 일가의 다음 공판은 내달 11일이다.

한편 전세 사기 피해자 모임 '전세 사기·깡통전세 피해자 경기대책위원회' 회원 20여명은 이날 재판이 시작되기 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악성 임대인 엄벌을 촉구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은 일상이 무너지고 하루하루를 출구 없는 절망 속에서 보내고 있다"며 "악성 임대인 정씨 일가를 엄벌해 피해자들이 한 줄기 희망을 갖고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면 한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