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 사직 사흘째…공공병원서도 응급 처치 못받아
[르포] "신생아들은 시간이 생명인데…" 진료현장 혼란에 발동동
"의사들 눈에는 멀쩡해 보여도 나는 아파 죽겠어요!"
전공의 집단 사직 사흘째인 22일 오전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치료받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린 한 70대 여성 환자가 분통을 터트렸다.

식당으로 출근하다 눈길에 미끄러져 낙상 사고를 당한 그는 통증으로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이 병원이 제일 가까워 급하게 차를 타고 왔는데 진료해줄 의사가 없다고 돌아가라고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민간 병원은 물론 서울대병원이 운영하는 시립 공공병원인 보라매병원 역시 전공의 일부가 진료를 거부하면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작업 중 쇠막대기에 무릎을 크게 부딪쳐 피를 흘린 김모(55)씨가 거즈를 동여맨 채 뒤이어 응급실에 들어갔지만 역시 처치를 받지 못했다.

김씨는 "일하다가 다치면 종종 이 응급실에서 치료받았는데 오늘은 안에 환자도 없는데 받아줄 수 없다고 다른 병원에 가라고 했다"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급실에서 나온 이들은 안에 의사 두 명 정도만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병원 면회 라운지에서 만난 염모(56)씨는 "아버지가 호흡기 질환을 앓고 계셔서 장기 입원 중이었는데 어제 돌연 전원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급작스러운 통보에 휴가를 내고 병원에 온 그는 "요양병원은 아무래도 (치료가 잘 이뤄질지) 걱정이 된다"고 털어놨다.

[르포] "신생아들은 시간이 생명인데…" 진료현장 혼란에 발동동
이른바 '빅5'에 속하는 서울 대학병원들에서도 진료 차질이 이어지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특히 어린아이가 아파 병원을 찾은 보호자들은 초조함에 발을 동동 굴렀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에서 만난 박모(40)씨는 생후 17일 된 조카의 귀에서 이상소견이 발견돼 이날 검사를 한 뒤 결과까지 확인하기로 했지만 전공의들이 자리를 비워 결과는 다음에 들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박씨는 "파업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결과 확인은 고사하고 진료도 언제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더라"라며 "신생아들은 시간이 생명 아닌가.

답답하고 불안하다"고 울상을 지었다.

다른 한 여성도 일행에게 "아이들만이라도 진료는 받게 해야 할 것 아니냐"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암병원은 오전 9시가 되기 전부터 이미 환자와 보호자들도 북적였다.

외래항암약물치료센터에는 침대 병실을 이용하려면 3시간을 대기해야 한다는 안내판이 붙었다.

식도암 수술을 하고 외래 치료를 받는 서모(56)씨는 "전공의 파업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아침 7시 30분에 왔는데 두 시간을 기다리라고 한다"며 "평소보다 환자는 적어 보이는데 대기 시간은 훨씬 길다"고 지친 기색을 보였다.

주위에 있던 다른 한 보호자는 항암치료를 받는 가족을 기다리며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주사를 못 맞을까 봐 전날 와서 숙소를 잡고 아침에 병원에 온다.

우리도 아침 일찍부터 왔다"고 귀띔했다.

[르포] "신생아들은 시간이 생명인데…" 진료현장 혼란에 발동동
전공의들의 근무지 이탈로 환자들이 피해를 보게 되면서 비판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에 3개월마다 방문한다는 박모(89)씨는 "혹시라도 진료가 취소될까 봐 걱정돼 정상적으로 운영되는지 연락해보고 왔다"며 "나도 아들이 의사지만 의사들이 이렇게 환자 생명을 가지고 데모를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됐다고 본다"고 쓴소리했다.

서울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만난 혈액암 환자 이모(47)씨도 "파업 때문에 아예 진료를 못 받을까 봐 아침까지도 불안했다"며 "다행히 진료를 받게 됐지만 가뜩이나 아픈 환자를 심리적으로 코너에 몰아넣는 이 상황이 정상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건복지부는 21일 오후 10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을 점검한 결과 소속 전공의의 74.4%인 9천27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22일 밝혔다.

근무지 이탈자는 소속 전공의의 64.4%인 8천24명으로, 하루 전보다 211명 늘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