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포리자 출신 피란민 17명, 십시일반 힘 모아 키이우 도심에 카페 열어
'고향에 목공사 문 연 직후 러 약탈' 막스씨 "바닷가 마을 고향 사람들 찾아오길"
[전쟁2년 키이우에서] 점령지서 전재산 잃었지만…다시 일어서는 피란민들
"목공소를 새로 열었는데, 5일 뒤에 전쟁이 났어요.

러시아군이 비싼 장비와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
눈발이 흩날리던 20일(현지시간) 오전 키이우 시내 독립광장 바로 옆골목의 카페 '하락테르니키'에서 만난 막스는 "전쟁 중에 개업한 이 가게만큼은 끝까지 지키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막스는 2년 전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에서 도망쳐 나온 수백만명의 피란민 중 하나다.

전쟁 발발 5일 전인 2022년 2월 19일 막스는 그가 살던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주(州)의 도시 베르댠스크에 목공소를 새로 열었다.

개업을 자축할 겸 이튿날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우크라이나 서부의 한 리조트로 여행을 떠난 사이 러시아군이 고향으로 진격해왔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많은 돈을 들여 마련한 비싼 장비와 가구들은 모두 약탈당했다.

비워뒀던 집도 마찬가지였다.

전선에서 멀어 그나마 안전한 할머니 집으로 피신한 막스는 아내에게 "아이들과 함께 유럽 다른 나라로 가 있으라"고 했지만, 아내는 가족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전쟁2년 키이우에서] 점령지서 전재산 잃었지만…다시 일어서는 피란민들
그해 4월 일거리를 찾아 키이우로 올라온 그의 가족은 비슷한 처지의 피란민들이 모여 사는 한 아파트에 거처를 잡았다.

이미 많은 시민들이 해외로 출국한 상황이어서 주택이든 상가든 도시가 전부 텅 빈 상태였다.

막스의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베르댠스크에서 전쟁을 맞이한 이들은 대부분 가족과 친구를 잃었다.

두 달간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던 그는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막스를 포함, 같은 뜻을 가진 동향 베르댠스크 출신 17명이 머리를 맞댄 끝에 가게를 열자고 결심했다.

바닷가 고향 마을을 떠올릴 수 있도록 이곳을 찾는 베르댠스크 출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구상이었다.

투자자를 찾는 것이 힘들었지만, 임대료가 바닥을 친 데다 예전에 장사하던 사람들이 버리고 간 장비도 많아서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식탁과 의자 등 가구는 손수 만들었다.

이웃 주민들이 인테리어 공사에 힘을 보탰고, 소식이 알려지자 각종 장비를 기부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그리고 전쟁이 한창이던 2022년 7월 17일 카페가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전쟁2년 키이우에서] 점령지서 전재산 잃었지만…다시 일어서는 피란민들
막스는 "개업 날에 고향 사람들은 물론 다른 손님까지 300명이 몰려왔다"며 "손이 부족해 옆 가게에서 직원들을 빌려오기까지 했고, 결국 준비한 음식이 모두 팔렸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그는 기자에게 베르댠스크 음식인 청어를 올린 빵을 기자에게 권하며 "솔직히 벌이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돈을 보고 시작한 장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직원들에게 월급을 제때 지급하고, 나라에 정정당당히 세금을 낼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며 "문 닫고 나간 가게들이 많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1년 반 넘게 살아남아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막스는 키이우를 제2의 고향 삼아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러시아에 점령당한 고향을 생각할 때면 마음이 쓰리다.

그는 "지금은 전화나 통신이 모두 복구됐지만, 고향에 있는 사람들과는 더는 대화하지 않는다"며 "러시아 쪽 통치를 받다 보니 생각이 너무 달라져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누리던 삶의 방식이 그립기는 하지만, 이제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2년 키이우에서] 점령지서 전재산 잃었지만…다시 일어서는 피란민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