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아티스트들의 창작연구실, 파리시테레지던시에서 만난 한국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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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신미래의 파리통신
-파리시테레지던시 오픈스튜디오 아티스트 인터뷰
-파리시테레지던시 오픈스튜디오 아티스트 인터뷰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프랑스에는 국제적 규모의 미술 공모, 행사, 아티스트들을 위한 혜택과 시설이 줄비하다. 파리국제예술공동체라고도 불리는 파리시테레지던시 (Cité internationale des arts)는 프랑스의 대표 레지던시 중 하나로, 세계 각국에서 온 작가들의 작품 연구와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심장부 역할을 하고 있다.
시테레지던시는 1965년 펠릭스 브르노 (Félix Brunau)와 그의 아내 시몬 브르노 (Simone Brunau), 파리시와 미술학교 등의 지원으로 설립되었다. 몽마르트와 마레 지구 두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몽마르트시테에는 40여 명의 아티스트들이 작업실 용도로 쓸 수 있는 스튜디오, 마레 지구에는 280여 명의 아티스트들이 거주하며 작업할 수 있는 스튜디오로 구성되어 있다. 회화, 조각, 설치, 사진, 영상, 음악, 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는 총 326개 20㎡~60㎡ 크기의 스튜디오에서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머물 수 있다. 특히 마레 지구 시테에는 작업 공간을 포함하여 부엌, 거실, 화장실, 침실도 함께 구성되어 있어 해외에서 온 작가들이 단기간 체류하며 작업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시테레지던시 입주 형태는 총 세 종류로 보인다. 첫번째는, 레지던시와 협력관계에 있는 재단, 갤러리, 협회 등을 통한 아티스트인 경우이다. 약 135개의 파트너십 기관의 소속 아티스트나, 공모를 통해 선정된 아티스트로, 기관이 장기 보유한 스튜디오에 머물게 된다. 한국에는 가나문화재단, 홍익대학교, 삼성문화재단 등이 있다. 두 번째는, 매해 진행되는 시테레지던시 내 입주 공모를 통해 당선이 되는 경우로, 입주 작가는 스튜디오의 형태와 기간에 따라 유료로 거주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레지던시와 특정 기관이 함께 주최하는 공모를 통해 입상한 장학자로, 창작지원금과 공간의 혜택이 주어진다.
입주 작가들의 작업을 직접 관람하고 소통할 수 있는 오픈스튜디오는 매주 수요일 오후 6시에서 9시 사이에 개방된다. 프론트에서 제공하는 맵에는, 그 주에 오픈스튜디오를 신청한 작가들의 스튜디오 위치가 표시되어 있어, 관람객은 자유롭게 레지던시 내부와 작업실을 방문할 수 있다. 각 작업실의 입구에는, 간단한 음료나 다과, 작가를 설명하는 인쇄물, 조그마한 소품들이 놓여있다. 작가들마다의 다소 귀여운 표식은, 두 팔 벌려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오픈스튜디오를 통해 다양한 입주 작가들을 만나보았다.
조각과 설치미술을 하고 있는 임지빈 작가의 작품이다. 어디서든 눈에 띄는 거대한 크기의 베어벌룬은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작가가 몇 년간 지속해온 ‘에브리웨어 (EVERYWHERE) 프로젝트’의 시작을 가능하게 하였다. 에브리웨어 프로젝트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게릴라성 설치 미술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미술관과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면서, 방문하는 관람객이 다소 한정적이라고 느꼈다. 전시 관람을 위한 특정한 장소, 시간, 거리, 동기 등은 예술을 쉽게 접하기에 한계를 두는 요소였다. 작가는 이에 ‘딜리버리 아트’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직접 다가가는 방식을 택했다. 어디든 설치 가능한 작품의 이동성은 대중의 접근성을 높였고, 길에서 우연히 베어벌룬을 마주한 대중들의 감정에 작가는 깊은 의미를 둔다. 이목구비가 없는 베어벌룬은 텍스트의 의미로써 인상과 표정을 대신하기도 한다. 4-5 글자 수로 제한된 LOVE, HAPPY, GOOD 등의 단어들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따뜻한 감정을 자아낸다. 한편 건물과 건물 사이에, 지하철역에, 공원에 끼어있는 듯한 벌룬은 어딘가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직장인, 사회적 환경과 관계에 스스로를 맞추는 현대인, 고된 삶 속에서도 반복적인 일상을 굳건히 살아내는 사람들. 작가는 우리 삶의 모습을 반영한 작품을 일상적 장소에 놓아둠으로써, 공감과 참여, 소통을 일으키는 작품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시테레지던시에 어떠한 계기로 입주하게 되었나요?
"저는 가나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가나 장흥 아틀리에’에 12년째 입주해 있어요. 시테레지던시에는 가나문화재단에서 보유한 2개의 스튜디오가 있고, 저는 다음 작품의 아이디어와 소재 연구를 목적으로 이곳에 3개월간 머물게 되었습니다."
▶외국에서의 체류가 작가님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아무래도 제한된 공간에 계속 있다 보면 생각이 갇히기 마련인데, 새로운 환경에서 작품을 구상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자체가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 작품에 발현이 안 될지라도, 변화하는 시간들이 쌓여 앞으로의 작업에 영향을 준다고 믿고 있어요. 이런 부분은 작업 표현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한국에서 와는 달리 해외에는 제 작업을 모르는 분들이 대다수예요. 한국에서는 제 작품을 이해한 상태에서 전시를 방문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 방면, 여기서는 제 작업을 처음 접하는 대중들의 색다른 피드백들을 받을 수 있어요. 이는 공공미술의 성격을 띤 제 프로젝트에 전체적으로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도 굉장히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예요. 실제로 이전에 파리에 작품을 설치했는데, 한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베어벌룬 얼굴에 눈을 그린 적이 있어요. 작업이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게 되는 순간이었는데, 스트리트 아트의 특징을 한번 더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시테레지던시의 장점은 무엇이 있나요?
"위치가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파리의 중심 마레 지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미술관, 화방 어디든 접근이 용이해요. 또, 시테레지던시에 입주하게 되면 아티스트 증명 카드를 발급받게 되는데, 이 카드로 많은 미술관, 행사 무료 관람이 가능해요. 또 게릴라성 설치 미술을 하는 저에게는 작업 진행이 수월히 진행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프랑스가 공공장소에서의 거리 예술이나, 즉흥적인 퍼포먼스에 많이 관대한 나라이지만, 아무래도 외국인 작가로서 볼륨이 큰 작업을 외부에 설치하는 건 부담이 따라요. 얼마전 파리 시청 앞에서 작품 설치를 할 때는 레지던시 소속 카드를 보여주면서 대략적인 작가, 프로젝트를 쉽게 설명할 수 있었어요. 현장에서의 협의에 도움이 된 셈이죠."
▶시테레지던시에서 진행하신 프로젝트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에서 느꼈던 감정을 표현의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어요. SNS, 미디어를 통해 사회현상,상항, 이미지들이 쏟아지다 보니, 여러 문제가 일상에 동시다발적으로 노출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이런 현상에서 마치 곧 터져버릴 것 같은 불안한 감정을 받았어요. 한국을 떠나 이곳에서 여러 나라의 아티스트들과 소통해 보니, 그들은 전쟁, 테러와 같이 실제로 삶을 위협하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큰 틀에서 보면, 종류가 조금 다른 불안함을 겪고 있는 거죠. 이러한 불안정한 감각들은 제가 늘 표현 소재로 삼았던 벌룬을 통해 다시금 가시화됩니다. 풍선 또한, 이 안에 공기가 들어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고정적이지 않은 형태에서, 연약한 소재에서 언제 터져버릴지 모르는 긴장감을 느끼게 해요. 조형의 형태 변화를 통해,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에 대한 작업을 발전시키고 있어요." ▶작가님이 평소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마감에 가장 집중해요. 저는 조각을 베이스로 작업을 하고 있고, 전부 다 100% 수작업으로 제작합니다. 3D로 그래픽을 만들고 출력하는 방법은 제작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지만, 제가 수작업을 고집하는 이유는 반대로 최대한 수작업 공정에서 나온 것 같은 느낌을 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몰드를 직접 뜨고, 사포질을 하고, 구멍을 메우는 이런 반복적 노동력이 들어간 작업 과정을 존중해요. 한편, 저는 현대인들이 자기 스스로를 치장하고 꾸미면서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려는 성향이 제가 조형의 공정에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이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동차 페인트와 같이 글로시한 느낌을 주어 조형의 완성도에도 많은 신경을 씁니다."
▶작가님이 진행해오신 프로젝트 중에서 기억에 남은 작품 활동이 있을까요?
"2021년에 구찌와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브랜드에서 제 작업과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았기 때문에, 제 작품이 어떻게 구찌 100주년과 효과적인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기획이 잘 되었던 프로젝트였어요. 그래서 단편적으로 브랜드의 새로운 컬렉션을 보여주기 보다, 제 작품의 특징을 살려 DDP, 남산타워 같은 서울과 부산의 상징적인 사이트에 작품을 이동하며 설치하고 브랜드의 컬렉션을 함께 보여주는 방식을 채택했어요. 그 후 협업 과정을 다시 티저 캠페인으로 만들어 홍보하였는데, 아트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활용하여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고 생각해요. "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작가들의 시그니처 표현법과 재료가 중요하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탈피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2023년에 진행했던 ‘매일의 모양’이라는 개인전과 같이, 올해도 새로운 주제와 작업 표현을 고민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올해에는 서울에 위치한 스페이스 파운틴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있고, 그 외 여러 프로젝트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파리의 체류 기간 동안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 구나현 작가의 작품들도 만나 볼 수 있었다. 임지빈, 구나현 작가 부부는 개인적 예술 활동을 기본으로 하지만, 협업 작업, 공동 전시를 통해 폭발적인 예술적 시너지를 낸다. 다른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부부는, 서로 작업적 동기를 받고, 예술에 대한 색다른 시각들을 나누며 작품을 더 깊게 발전시켜 나간다. 오랜 제작 과정을 반복적으로 실현해가는 임지빈 작가와 달리, 구나현 작가는 새로운 이야기, 변화가 있는 구성을 지향한다. 작가는 사람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나이 드신 분들의 얼굴을 중심 소재로 작업해왔다. 특히, ‘자연스러움’에서 많은 흥미를 느끼는데, 나이 드신 분들의 인상은 세월의 흔적, 성격, 생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미디어에 나오는 아름답고 완벽한 이미지 보다, 꾸미지 않은 말투, 트림과 방귀도 마다하지 않는 행동들, 어쩌면 조금은 투박해 보이지만 그 상태로 자연스러운 대상에 애정을 느낀다. 이런 작가의 선호는, 작업 표현방식에서도 묻어난다. 작품은 내부와 외부의 자유롭게 오가며, 캔버스와 외부 벽, 어떠한 재료의 경계를 두지 않고 그려진다. 스트리트 아트와 같은 벽화 작업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때때로 벗겨지고, 변색되며 그 형태를 달리한다. 거대한 크기와 작업량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사라져가는 작업이 아깝지 않다고 말한다. 외부 환경에 의해 변화하는 것 또한, 자연스럽게 완성되는 작업의 과정이자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작가가 다시 캔버스로 돌아왔을 때, 작업의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하였다.
사람의 얼굴을 10년간 그려오며, 어느 순간 묘사에 다소 치중된 잘 그려진 얼굴로 완성이 되기도 하였다. 외부에서 작업은 이러한 특성에서 벗어나, 캔버스 상에서도 러프한 느낌의 인물을 그리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큰 붓을 이용한 과감한 터치와 인상의 골격을 전체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은 작가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작업관에 더 가깝다.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익명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내가 아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가 담아낸 보통의 사람들은 내 주변의 사람, 관계, 환경, 사회의 보편적 이야기들을 다시금 바라보게 만든다. 구나현 작가는 올해 후지필름 갤러리 파티클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으며, 그 외 다른 단체전들을 준비하고 있다.
시테레지던시는 1965년 펠릭스 브르노 (Félix Brunau)와 그의 아내 시몬 브르노 (Simone Brunau), 파리시와 미술학교 등의 지원으로 설립되었다. 몽마르트와 마레 지구 두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몽마르트시테에는 40여 명의 아티스트들이 작업실 용도로 쓸 수 있는 스튜디오, 마레 지구에는 280여 명의 아티스트들이 거주하며 작업할 수 있는 스튜디오로 구성되어 있다. 회화, 조각, 설치, 사진, 영상, 음악, 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는 총 326개 20㎡~60㎡ 크기의 스튜디오에서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머물 수 있다. 특히 마레 지구 시테에는 작업 공간을 포함하여 부엌, 거실, 화장실, 침실도 함께 구성되어 있어 해외에서 온 작가들이 단기간 체류하며 작업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시테레지던시 입주 형태는 총 세 종류로 보인다. 첫번째는, 레지던시와 협력관계에 있는 재단, 갤러리, 협회 등을 통한 아티스트인 경우이다. 약 135개의 파트너십 기관의 소속 아티스트나, 공모를 통해 선정된 아티스트로, 기관이 장기 보유한 스튜디오에 머물게 된다. 한국에는 가나문화재단, 홍익대학교, 삼성문화재단 등이 있다. 두 번째는, 매해 진행되는 시테레지던시 내 입주 공모를 통해 당선이 되는 경우로, 입주 작가는 스튜디오의 형태와 기간에 따라 유료로 거주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레지던시와 특정 기관이 함께 주최하는 공모를 통해 입상한 장학자로, 창작지원금과 공간의 혜택이 주어진다.
입주 작가들의 작업을 직접 관람하고 소통할 수 있는 오픈스튜디오는 매주 수요일 오후 6시에서 9시 사이에 개방된다. 프론트에서 제공하는 맵에는, 그 주에 오픈스튜디오를 신청한 작가들의 스튜디오 위치가 표시되어 있어, 관람객은 자유롭게 레지던시 내부와 작업실을 방문할 수 있다. 각 작업실의 입구에는, 간단한 음료나 다과, 작가를 설명하는 인쇄물, 조그마한 소품들이 놓여있다. 작가들마다의 다소 귀여운 표식은, 두 팔 벌려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오픈스튜디오를 통해 다양한 입주 작가들을 만나보았다.
가나문화재단 | 임지빈 작가
마레 지구 시테 D동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곰 모양의 벌룬이 보인다.조각과 설치미술을 하고 있는 임지빈 작가의 작품이다. 어디서든 눈에 띄는 거대한 크기의 베어벌룬은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작가가 몇 년간 지속해온 ‘에브리웨어 (EVERYWHERE) 프로젝트’의 시작을 가능하게 하였다. 에브리웨어 프로젝트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게릴라성 설치 미술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미술관과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면서, 방문하는 관람객이 다소 한정적이라고 느꼈다. 전시 관람을 위한 특정한 장소, 시간, 거리, 동기 등은 예술을 쉽게 접하기에 한계를 두는 요소였다. 작가는 이에 ‘딜리버리 아트’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직접 다가가는 방식을 택했다. 어디든 설치 가능한 작품의 이동성은 대중의 접근성을 높였고, 길에서 우연히 베어벌룬을 마주한 대중들의 감정에 작가는 깊은 의미를 둔다. 이목구비가 없는 베어벌룬은 텍스트의 의미로써 인상과 표정을 대신하기도 한다. 4-5 글자 수로 제한된 LOVE, HAPPY, GOOD 등의 단어들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따뜻한 감정을 자아낸다. 한편 건물과 건물 사이에, 지하철역에, 공원에 끼어있는 듯한 벌룬은 어딘가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직장인, 사회적 환경과 관계에 스스로를 맞추는 현대인, 고된 삶 속에서도 반복적인 일상을 굳건히 살아내는 사람들. 작가는 우리 삶의 모습을 반영한 작품을 일상적 장소에 놓아둠으로써, 공감과 참여, 소통을 일으키는 작품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시테레지던시에 어떠한 계기로 입주하게 되었나요?
"저는 가나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가나 장흥 아틀리에’에 12년째 입주해 있어요. 시테레지던시에는 가나문화재단에서 보유한 2개의 스튜디오가 있고, 저는 다음 작품의 아이디어와 소재 연구를 목적으로 이곳에 3개월간 머물게 되었습니다."
▶외국에서의 체류가 작가님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아무래도 제한된 공간에 계속 있다 보면 생각이 갇히기 마련인데, 새로운 환경에서 작품을 구상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자체가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 작품에 발현이 안 될지라도, 변화하는 시간들이 쌓여 앞으로의 작업에 영향을 준다고 믿고 있어요. 이런 부분은 작업 표현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한국에서 와는 달리 해외에는 제 작업을 모르는 분들이 대다수예요. 한국에서는 제 작품을 이해한 상태에서 전시를 방문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 방면, 여기서는 제 작업을 처음 접하는 대중들의 색다른 피드백들을 받을 수 있어요. 이는 공공미술의 성격을 띤 제 프로젝트에 전체적으로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도 굉장히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예요. 실제로 이전에 파리에 작품을 설치했는데, 한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베어벌룬 얼굴에 눈을 그린 적이 있어요. 작업이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게 되는 순간이었는데, 스트리트 아트의 특징을 한번 더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시테레지던시의 장점은 무엇이 있나요?
"위치가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파리의 중심 마레 지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미술관, 화방 어디든 접근이 용이해요. 또, 시테레지던시에 입주하게 되면 아티스트 증명 카드를 발급받게 되는데, 이 카드로 많은 미술관, 행사 무료 관람이 가능해요. 또 게릴라성 설치 미술을 하는 저에게는 작업 진행이 수월히 진행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프랑스가 공공장소에서의 거리 예술이나, 즉흥적인 퍼포먼스에 많이 관대한 나라이지만, 아무래도 외국인 작가로서 볼륨이 큰 작업을 외부에 설치하는 건 부담이 따라요. 얼마전 파리 시청 앞에서 작품 설치를 할 때는 레지던시 소속 카드를 보여주면서 대략적인 작가, 프로젝트를 쉽게 설명할 수 있었어요. 현장에서의 협의에 도움이 된 셈이죠."
▶시테레지던시에서 진행하신 프로젝트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에서 느꼈던 감정을 표현의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어요. SNS, 미디어를 통해 사회현상,상항, 이미지들이 쏟아지다 보니, 여러 문제가 일상에 동시다발적으로 노출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이런 현상에서 마치 곧 터져버릴 것 같은 불안한 감정을 받았어요. 한국을 떠나 이곳에서 여러 나라의 아티스트들과 소통해 보니, 그들은 전쟁, 테러와 같이 실제로 삶을 위협하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큰 틀에서 보면, 종류가 조금 다른 불안함을 겪고 있는 거죠. 이러한 불안정한 감각들은 제가 늘 표현 소재로 삼았던 벌룬을 통해 다시금 가시화됩니다. 풍선 또한, 이 안에 공기가 들어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고정적이지 않은 형태에서, 연약한 소재에서 언제 터져버릴지 모르는 긴장감을 느끼게 해요. 조형의 형태 변화를 통해,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에 대한 작업을 발전시키고 있어요." ▶작가님이 평소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마감에 가장 집중해요. 저는 조각을 베이스로 작업을 하고 있고, 전부 다 100% 수작업으로 제작합니다. 3D로 그래픽을 만들고 출력하는 방법은 제작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지만, 제가 수작업을 고집하는 이유는 반대로 최대한 수작업 공정에서 나온 것 같은 느낌을 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몰드를 직접 뜨고, 사포질을 하고, 구멍을 메우는 이런 반복적 노동력이 들어간 작업 과정을 존중해요. 한편, 저는 현대인들이 자기 스스로를 치장하고 꾸미면서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려는 성향이 제가 조형의 공정에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이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동차 페인트와 같이 글로시한 느낌을 주어 조형의 완성도에도 많은 신경을 씁니다."
▶작가님이 진행해오신 프로젝트 중에서 기억에 남은 작품 활동이 있을까요?
"2021년에 구찌와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브랜드에서 제 작업과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았기 때문에, 제 작품이 어떻게 구찌 100주년과 효과적인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기획이 잘 되었던 프로젝트였어요. 그래서 단편적으로 브랜드의 새로운 컬렉션을 보여주기 보다, 제 작품의 특징을 살려 DDP, 남산타워 같은 서울과 부산의 상징적인 사이트에 작품을 이동하며 설치하고 브랜드의 컬렉션을 함께 보여주는 방식을 채택했어요. 그 후 협업 과정을 다시 티저 캠페인으로 만들어 홍보하였는데, 아트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활용하여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고 생각해요. "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작가들의 시그니처 표현법과 재료가 중요하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탈피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2023년에 진행했던 ‘매일의 모양’이라는 개인전과 같이, 올해도 새로운 주제와 작업 표현을 고민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올해에는 서울에 위치한 스페이스 파운틴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있고, 그 외 여러 프로젝트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파리의 체류 기간 동안 함께 작업을 하고 있는 구나현 작가의 작품들도 만나 볼 수 있었다. 임지빈, 구나현 작가 부부는 개인적 예술 활동을 기본으로 하지만, 협업 작업, 공동 전시를 통해 폭발적인 예술적 시너지를 낸다. 다른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부부는, 서로 작업적 동기를 받고, 예술에 대한 색다른 시각들을 나누며 작품을 더 깊게 발전시켜 나간다. 오랜 제작 과정을 반복적으로 실현해가는 임지빈 작가와 달리, 구나현 작가는 새로운 이야기, 변화가 있는 구성을 지향한다. 작가는 사람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나이 드신 분들의 얼굴을 중심 소재로 작업해왔다. 특히, ‘자연스러움’에서 많은 흥미를 느끼는데, 나이 드신 분들의 인상은 세월의 흔적, 성격, 생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미디어에 나오는 아름답고 완벽한 이미지 보다, 꾸미지 않은 말투, 트림과 방귀도 마다하지 않는 행동들, 어쩌면 조금은 투박해 보이지만 그 상태로 자연스러운 대상에 애정을 느낀다. 이런 작가의 선호는, 작업 표현방식에서도 묻어난다. 작품은 내부와 외부의 자유롭게 오가며, 캔버스와 외부 벽, 어떠한 재료의 경계를 두지 않고 그려진다. 스트리트 아트와 같은 벽화 작업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때때로 벗겨지고, 변색되며 그 형태를 달리한다. 거대한 크기와 작업량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사라져가는 작업이 아깝지 않다고 말한다. 외부 환경에 의해 변화하는 것 또한, 자연스럽게 완성되는 작업의 과정이자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작가가 다시 캔버스로 돌아왔을 때, 작업의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하였다.
사람의 얼굴을 10년간 그려오며, 어느 순간 묘사에 다소 치중된 잘 그려진 얼굴로 완성이 되기도 하였다. 외부에서 작업은 이러한 특성에서 벗어나, 캔버스 상에서도 러프한 느낌의 인물을 그리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큰 붓을 이용한 과감한 터치와 인상의 골격을 전체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은 작가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작업관에 더 가깝다.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익명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내가 아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가 담아낸 보통의 사람들은 내 주변의 사람, 관계, 환경, 사회의 보편적 이야기들을 다시금 바라보게 만든다. 구나현 작가는 올해 후지필름 갤러리 파티클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으며, 그 외 다른 단체전들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