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에 설치된 시중은행 ATM기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에 설치된 시중은행 ATM기 모습. 사진=연합뉴스
상장사 저평가 해소 대책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세부 내용 공개까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시장의 주목도가 한껏 높아졌다. 발표를 기점으로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아라' 식의 장세가 펼쳐질지, 살아남은 수혜주들의 추가 상승으로 이어질지가 관건이다. 주식 전문가들과 투자자들은 마지막까지 '수혜주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일 증권사 보고서 제공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달 들어 이날까지 집계된 조회수 최상위 보고서 10개 중 절반인 5개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분석 자료였다. 개인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도 두루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17일 정부가 처음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윤곽을 드러낸 뒤 증시에선 한동안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장세가 강하게 연출됐지만 설 연휴 이후 잠잠해졌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프로그램의 세부 내용을 오는 26일 발표하겠다며 날짜를 특정하자 시장에 다시 저PBR 업종이 반등했다.

수급을 보면 '돌아온 외국인'이 두드러진다. 이달 들어 외국인은 삼성전자 순매수 비중을 줄이고 자동차와 금융 등 저PBR 업종 비중을 크게 늘렸다. 신고가에 이미 도달한 일본과 대만 주식시장에 이어서 우리나라가 밸류업 차기 주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에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써넣도록 해 공시 우수법인 선정시 가점을 부여하고, 주주가치가 높은 기업으로 구성된 신규지수 ETF를 도입하는 게 골자다. 여기에 주주환원을 촉진할 수 있는 세제 인센티브 기본 방향도 담길 예정이다. 이런 계획들은 일본 증권거래소가 수행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정책을 상당부분 참고한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증시부양책의 방향. 자료=KB증권 리서치센터
우리나라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증시부양책의 방향. 자료=KB증권 리서치센터
도쿄 증권거래소 상장사들의 주가 상승은 정부 정책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많다. 법무법인 세종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도쿄증권거래소 상장사 중 PBR 1배 미만인 기업은 2022년 4분기 대비 180곳이 줄었다. 일본 증시에서 PBR 1배 미만을 탈출한 기업이 가장 많은 산업은 산업재와 정보기술(IT), 경기재로 이들 기업은 지난해 4월 이후 지금까지도 일본증시 상승 기여도 상위단을 꾸리고 있다. 금융권의 경우엔 PBR 1배 미만을 벗어난 기업은 많지 않았지만 PBR 개선폭이 컸다.

국내 기업들도 PBR 1배 미만이 유가증권시장의 약 58%를 차지하고 있어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가 큰 상황이다. 세부 내용 발표도 전에 기업들의 향후 밸류업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를 크게 밀어올린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PBR이 낮은 종목이 한 둘이 아닌 만큼 애널리스트들도 종목 파트, 시황 파트 나눌 것 없이 분석 리포트를 내놓고 있다. 이들은 실적 대비 저평가돼 있으면서 배당여력 상방이 열려있는 곳들이 정부의 집중적인 수혜를 받을 것으로 짚었다.

유진투자증권은 배당 측면에서 배당을 늘릴 수 있는 기업이면서 주가가 싼 곳을 권했다. 세아제강현대글로비스, 영원무역홀딩스, 영원무역, 오리온, 티앤엘, JYP엔터테인먼트 등을 예로 들었다. 이들 종목은 최근 3년 연속 이익이 늘거나 현금흐름이 증가했지만, 아직 배당성향이 상당히 낮은 기업들이다. 현재 배당 수익률 기준 주가가 과거 대비 낮은 수준이어서 가격 매력도 크다는 것이다.

강송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에 기업가치 제고계획 요구, 업종별 투자지표 공시 등이 얼마나 실효성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밸류업이 실적이나 펀더멘털 대비 저평가 받고 있는 기업을 타깃으로 하는 것이라면, 이런 기업들에 투자하는 건 손해볼 것 없는 전략"이라며 "정책 시행과 함께 이 기업들이 더 부각될 수 있고, 주주환원을 늘릴 수 있는 기업도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미 많이 오른 금융주의 추가 상승을 점치는 시각도 있었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일본의 경우 정책 시행 이후 당시 PBR 0.5배 수준에 거래되던 일본 은행주들이 현재 PBR이 0.7배를 웃돌고 있다. 주요 3개 대형은행들은 시행 이후 1년 만에 주가가 평균 50% 넘게 올랐다"고 설명했다. 실질적인 영향을 떠나서 일단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에 따른 은행주 수혜 기대가 단기간 안에 쉽게 꺾이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한편 밸류업 세부방안 발표가 증시에선 재료소멸일지 연속적인 상승세로 이어질지를 두고선 증권가 이견이 갈린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인센티브·패널티 등 기업 참여를 유도할 '서프라이즈' 정책이 발표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짚었다.

그런가 하면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4월 총선 이후 정책 모멘텀은 소진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달 말 정책 발표 전까지 기대감이 증시를 끌어올릴 수는 있겠지만 3월 주주총회 논쟁 기업이나 정부 소유 기업, 지주사를 제외하고는 약발이 떨어질 듯하다"고 관측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