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향후 5년간 의대 정원을 2000명씩 늘린다는 파격적인 증원안을 내놓은 것은 10년여 뒤인 2035년이면 부족한 의사가 1만5000명에 달할 것이란 분석에서다. 일각에선 2035년 부족한 의사 수가 2만7000명에 이를 것이란 연구도 나오고 있다.1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가 2035년께 추가로 필요하다고 전망한 의사 수는 1만5000명이다. 급속한 고령화, 그동안의 의대 증원 지연 등으로 부족해지는 의사 1만 명에 의료 취약 지역에서 활동하는 의사 인력을 전국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필요한 5000명을 더한 수치다. 정부는 5년간 2000명씩 의대 정원을 늘려 부족하나마 1만 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이다. 의대 증원으로도 부족한 5000명은 은퇴 의사 활용, 인력 재배치 등을 통해 보강하겠다는 방침이다.정부는 2035년 부족한 의사 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 연구팀 등의 의사인력 수급 추계 결과 등을 참고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란 점을 강조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은 2035년 의료서비스 수요에 비해 부족한 의사 수가 2만7232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홍 교수 연구팀도 같은 시점 부족한 의사가 2만 명 수준일 것으로 추정했다.의사 수급을 분석하는 연구는 대부분 연령별·성별 1인당 의료 이용량에 통계청 인구 추계 데이터를 곱해 수요량을 예상한다. 공급량은 의대 정원에 따른 연간 신규 유입 의사 수, 기술 발전으로 인한 의사 생산성 향상, 연령대별 노동량 등 다양한 요인을 반영해 산출한다. 연구진이 설정한 변수값과 미래 가정에 따라 추정치가 달라질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2만 명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증원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한국의 의사 수 부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데이터로도 확연히 드러난다.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3’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국내 활동의사 수는 2.1명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은 3.7명이고, 오스트리아(5.4명) 노르웨이(5.2명) 등은 한국의 2배가 넘는다.복지부에 따르면 5년간 의사 1만 명이 늘어나도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는 2.3명에 그친다. 현재 OECD 평균인 3.7명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의사 수는 8만 명에 달한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해도 2050년까지 도달할 수 없는 수치”라고 말했다.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한 명의 의사에게라도 면허 관련 불이익이 가해진다면 의사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간주하겠다”, “의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어이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발상이다”….최근 1주일 새 전·현직 의사단체 임원들이 국민과 정부를 향해 쏟아낸 발언이다.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젊은 의사인 전공의와 예비 의사인 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이 본격화하자 중장년 의사들을 중심으로 이들을 선동하는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의료계의 과격 발언은 18일에도 이어졌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한덕수 국무총리를 향한 성명에서 “(정부가) 부탁을 가장한 겁박을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의료 대재앙을 맞이할 것이다” 등의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이들은 “정부가 의사를 악마화하면서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며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는 의사들의 자율적인 행동을 억압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고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지난 15일 서울시의사회가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개최한 ‘의대 증원·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궐기대회’에서 자신을 레지던트 1년차라고 밝힌 한 참가자는 “의사가 환자를 두고 병원을 어떻게 떠나느냐 하시겠지만, 제가 없으면 환자도 없고, 당장 저를 지켜내는 것도 선량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시민단체들이 ‘환자 없이는 의사가 없다’며 의사 집단행동을 만류하자 이를 비꼰 것이다. 앞서 의사들은 “지방에 부족한 건 의사가 아니라 민도” 등의 격한 발언을 여과없이 쏟아냈다. 국민 80%가 의대 정원 확대에 지지를 보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의사들이 이처럼 국민이나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20여 년간의 ‘학습 효과’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사들에게 불리한 정책이 추진될 때마다 환자를 볼모로 정부와 싸워 매번 ‘포기각서’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이지현/이영애 기자 bluesky@hankyung.com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해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가 700명을 넘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직서가 수리된 사례는 없지만 정부는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해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기로 했다. 국무총리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전공의들에게 단체행동 자제도 요청했다. 병원을 떠나는 전공의가 늘어나는 가운데 이들이 사직 시점으로 제시한 19일이 향후 정부와 의료계 사이 갈등을 가늠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집단행동 자제 나선 정부한덕수 국무총리는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관련 대국민 담화’를 내고 “의료 공백이 벌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며 “집단행동으로 인한 의료 공백은 국민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삼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밝혔다. 한 총리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의료 개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며 “절대적인 의사 수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의료 개혁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의대 정원 확대는 더 늦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한 총리는 “그간 의료계가 요구해온 내용을 반영한 ‘4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라며 “전공의들의 근무 여건을 개선해 의료 현장의 번아웃을 방지하고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입해 필수의료 수가를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이날 한 총리의 담화문 발표는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빅5’ 병원 전공의들이 사직서 제출 시한으로 제시한 19일을 하루 앞두고 나왔다. 빅5 병원 전공의 대표들은 지난 16일 정부의 의대 증원 확대 추진에 반발해 전원 사직서 제출을 결의했다. 이들은 19일까지 사직서를 내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도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16일 비상대책위원회 임시총회를 열고 20일부터 학칙을 준수해 동맹(집단)휴학 등을 시작하기로 했다. 원광대 의대생 160여 명은 이날 처음으로 집단 휴학계를 제출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17일 첫 비대위 회의를 열고 총파업 등 단체행동을 전 회원 투표로 결정하기로 했다. 19일부터 의료 차질 빚을 듯전공의들의 예고된 집단행동 시한은 20일부터지만 당장 19일부터 의료 현장에서 혼란이 일어날 전망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16일 오후 6시 기준 전국 23개 병원 전공의 715명이 사직서를 냈다. 19일 사직서 제출이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은 19일 오전 7시부터 근무 중단에 들어갈 예정이다. 세브란스병원은 “19일 오전 6시부터 전공의 부재 상황이 예상돼 수술실 운영에 대한 불가피한 조정이 필요하다”며 수술실 운영을 축소하기로 했다. 다른 국내 대형 대학병원들도 대체 인력 배치 방안을 강구 중이다.정부는 비상진료대책을 가동하고 나섰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파업이 현실화하더라도) 상급병원은 입원·중증진료를 중심으로 진료 기능을 유지하고 전국 400곳의 응급 의료기관은 24시간 비상진료체계를 철저히 운영할 것”이라며 “파업 시 병원 운영이 가능하도록 재정 지원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전국의 35개 지방의료원과 6개 적십자병원을 비롯해 보건소 등 공공병원의 진료 시간을 연장하고 비대면 진료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말했다.복지부는 전공의들이 근무하는 주요 수련병원에 전공의 근무 상황을 매일 보고하라는 명령을 추가적으로 내렸다. 업무개시 명령 후 복귀했다가 다시 근무하지 않는 행태를 막기 위한 것이다.황정환/오현아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