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의사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13일 서울의 한 대학에서 전공의들이 복도를 지나가고 있다.  김범준 기자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의사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13일 서울의 한 대학에서 전공의들이 복도를 지나가고 있다. 김범준 기자
‘3월엔 가급적 수술 등을 받지 말라.’ 의료계 구전되는 불문율 중 하나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가 대거 교체되면서 대학병원 등엔 업무 숙련도가 높지 않은 의사가 많이 유입된다. 평소보다 의료 수준이 떨어질 수 있으니 가급적 병원 방문을 삼가라는 의미다.

올해는 이런 ‘주의 기간’이 길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대학병원 계약이 끝나는 2월 말께 후속 계약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면서다. 정부는 의료사고특례법 제정 절차에 들어가는 등 의료계 설득을 위한 ‘당근책’ 마련에 속도를 높였다.

‘집단행동’ 불씨 남긴 전공의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온라인으로 진행한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집행부 대다수가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는 안건이 가결됐다고 13일 발표했다. 전공의협의회는 국내 대학병원 인턴, 레지던트 등이 속한 대표 단체다. 박단 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지금이라도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2000명 의대 증원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재논의하길 바란다”고 적었다. 전공의 사이에선 당장 집단행동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이 팽팽하게 엇갈린 것으로 알려졌다. 긴 시간 여러 안건이 논의됐지만 이들이 발표한 것은 비대위 체제 전환과 박 회장을 제외한 집행부 사퇴뿐이었다. 참석한 대의원 194명 중 175명이 해당 안건에 찬성했다. 정부 방침에 반대하기 위한 투쟁 동력은 남겼지만 구체적 행동 수칙은 공개하지 않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2월 말~3월 초 현장 이탈 가능성도

전공의들이 집단휴진 등에 앞장서면서 직접 처벌 대상이 되는 것보다 ‘준법투쟁’이나 ‘대학병원 계약 거부’ 등으로 영향력을 보여주는 편을 택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단체행동에 들어가면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개별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인턴에서 레지던트로 넘어가는 시기와 레지던트에서 전문의(펠로)로 넘어가는 시기에 각각 병원과 근로 계약을 쓰게 된다”며 “이 기간 계약하지 않고 자동으로 근로계약을 해지하는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고 했다.

인턴은 1년 과정이 끝난 뒤, 레지던트는 3~4년 과정이 끝난 뒤에 각각 병원과 계약을 맺는다. 이런 손바꿈은 2월 말에서 3월 초께 이뤄진다. 일선 대학병원은 이 기간 인력 공백의 대응책을 어느 정도 마련해둔 상태다. 그간 순차적으로 메워진 인력 중 일부가 의료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으면 누적된 현장의 피로도는 3월 말께 집중될 것으로 의료계에선 내다봤다. 전공의들의 ‘자발적 퇴사’가 현실이 되면 이 시기 의료대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최대한 설득하고 대화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당근책 속도 높이는 정부

15일 동네의원 의사들이 주축인 대한의사협회가 궐기대회를 예고한 데 이어 의대생들도 13일 임시총회를 열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올해 1월 의사 국가시험이 이미 끝났기 때문에 ‘시험 거부’까지 이어지진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앞서 발표한 필수의료 4대 개혁 패키지 마련에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 가시적인 변화로 의사들을 설득하겠다는 의미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사고 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해 ‘의료사고특례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당초 오는 4월에 발표할 계획이었던 대학별 의대 정원 배정안을 3월에 발표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의사 반발에도 증원 확대를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